▲한국지엠(사진=뉴시스)
 
한국지엠이 직영 정비센터 폐쇄, 물류 하청 도급계약 해지를 통해 몸집 줄이기에 나서면서 철수설이 재점화되고 있다. 회사 측은 철수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노동계는 철수가 현실화될 수 있다며 정부에 선제적 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직영 정비 폐쇄ㆍ하청 해지…몸집 줄이는 한국지엠
 
한국지엠은 지난달 7일 직영 정비센터 폐쇄를 결정했다.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 10월 15일 '직영 정비센터 활성화 TF' 실무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지만, 지난달 7일 회사가 노조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직영 정비센터 매각과 폐쇄를 발표했다.
 
당시 실무협의체에 참여한 정재헌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사무노동실장은 "회사가 노조와 사전에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직영 정비센터를 폐쇄했다"며 "직영 정비센터 폐쇄는 고객 불안감을 키우고 신차 출시 후 AS문제를 발생시키는 등 종합자동차 회사로서의 한국지엠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지엠의 몸집 줄이기는 직영 축소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지엠은 물류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인 우진물류와의 도급계약도 해지했다. 우진물류는 한국지엠의 도급계약 해지를 이유로 지난달 28일 회사를 폐업하고 소속 근로자들을 집단해고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사업장에 게시했다.
 
한국지엠지부는 한국지엠의 도급계약 해지 결정이 지엠세종물류센터에 금속노조를 설립한 것과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7월 우진물류 근로자들은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엠부품물류센터지회를 설립했다.
 
지회는 이후 회사와 열 차례 교섭했지만 임금에 대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회사에 파업을 예고했다. 하청 근로자들의 파업 예고에 우진물류는 물론 한국지엠까지 나서서 파업 철회를 요구했다.
 
지회에 따르면 지난달 7일 한국지엠 상무 A 씨가 우진물류에 방문해 "진짜 사장이 나오라 해서 왔다. 지회가 파업에 돌입하면 한국지엠과 우진물류의 도급계약이 지속될 수 없다"며 "파업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회는 파업을 철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한국지엠은 우진물류와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우진물류는 지난달 29일 도급계약 해지를 이유로 소속 근로자들을 집단해고 했다.
 
정 실장은 "지엠세종물류센터는 1년에 영업이익이 2000~3000억 원이 나는 알짜 사업"이라며 "한국지엠이 노조 탄압과 외주화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위해 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매출액 증가에도 몸집 줄이기…철수 신호?
 
한국지엠의 몸집 줄이기는 지난 10년 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한국지엠의 영업이익은 2021년 3760억 원 적자였지만 2022년 흑자로 전환된 뒤 지난해에는 1조3572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영업이익 흑자에도 한국지엠은 투자를 줄이고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한국지엠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신규 투자활동으로 볼 수 있는 유형자산 취득을 계속 축소하고 있다. 2021년 5286억 원이었던 유형자산 취득은 지난해 1738억 원까지 감소했다.
 
한국지엠의 사업부 축소와 자산 매각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지엠은 2018년 10월 한국지엠에서 연구개발법인을 분리해 GMTCK를 설립했다. 한국지엠은 연구개발을 포함한 종합자동차회사가 아닌 생산만 담당하는 회사로 축소됐다.
 
2019~2021년엔 한국지엠물류센터 세 곳(인천, 제주, 창원)을 폐쇄했다. 현재 한국지엠의 물류센터는 우진물류가 담당하던 지엠세종물류센터만 남은 상황이다. 2022년에는 부평승용2공장을 폐쇄했고, 부평물류센터 부지와 부천기술교육원 부지도 매각했다. 한국지엠이 최근 5년 간 자산매각으로 올린 수입은 4811억 원에 달한다.
 
한국지엠의 자산 매각과 투자 축소 기조가 이어지면서 노동계에서는 한국지엠이 철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일 금속노조가 개최한 '철수설을 넘어 지속 가능한 한국지엠 발전 방안 토론회'에서 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원장은 "한국지엠은 지난 7년에 거쳐 지속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이행하고 있다"며 "한국지엠의 행보는 불확실한 철수설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명백한 철수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토론회에서 박태현 산업통상부 자동차과 과장은 "한국지엠 측은 지금 당장 철수를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철수설에만 매몰되기보다는 노사가 힘을 합쳐 격변기에 회사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힘을 합칠 때"라고 말했다.

노동법률은 철수설에 대한 한국지엠 측 입장을 확인했지만, 한국지엠은 별도의 입장을 낼 수 없다고 답했다.
 
새협상, 지금부터 준비해야…'전문가 TF·SPC 설립' 제시
 
2018년 정부와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81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해 2027년 말까지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합의한 2027년 말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는 지금부터 정부가 새로운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은 "2018년 합의가 2027년 말에 종료돼 2028년에는 새로운 협상 국면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이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지부장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TF를 만들어 새로운 협상을 조기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 지부장은 "TF 기구를 빨리 출범해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정부, 산업은행, 노조의 입장을 종합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전문가들의 관점을 들으며 대응해야 끌려가지 않는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 다각화를 위해 지엠과 산업은행이 출자해 별도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지금처럼 한국지엠이 대부분 북미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관세 문제로 인해 한국지엠의 지속가능성이 없다"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엠과 산업은행이 출자해 지엠이 진출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에 수출을 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진 SPC를 설립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노조의 철수 우려를 듣고 있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다만 합의 과정을 서로 잘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지엠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반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