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6 13:23:22 수정 : 2018-04-02 08:52:33

[기자메모]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헌법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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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호 vol.323]
개헌안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자유한국당의 표현에 의하면 '쪼개팔기식' 발표로 3일 동안 웬만한 이슈는 압도하며 정치적 홍보라는 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

여러 항목이 있지만 노동 분야만 따로 살펴 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노동 쪽에서 이 정도까지 개헌이 필요한가"에 대립이 첨예하다. 특히 쟁의권과 관련해 '권리의 증진'을 위한 쟁의가 가능하도록 추진하는 내용을 두고 재계나 보수 성향 인사들은 물론, '진보 성향'으로 잘 알려진 노동계 관계자 몇몇도 "노동쟁의 관련 규정만 살짝 바꿔줘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부분을 굳이 헌법에 규정해야 할 부분인지는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다"고 평가하는 것을 목도했다.

노조의 파업권을 확대하고 싶었다면 노동관계법률 개정으로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헌법에 '권리의 증진'이란 모호한 단어를 넣는 것은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취지는 이해할만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회적 이슈가 된 철도파업이나 언론파업은 자회사 설립이나 방송 중립성을 이유로 이뤄졌다. 근로조건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불법 파업 문제가 불거졌지만, 결과적으로 철도공공성 약화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고 블랙리스트도 발견되면서 노조의 주장이 일부 옳다는 점도 밝혀졌다. 현 여권 입장에서는 이런 '합당한' 움직임이 불법이 되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취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파업으로 해결하는 게 맞는지, 또 특히 헌법적 차원에서 열어주는 게 옳을지를 묻는다면 딱히 답을 내놓기 어렵다. 어떤 사항을 헌법에 두느냐, 법률에 두느냐는 추후 상황 변동이 있을 때 민주적 합의를 거쳐 개선하는 절차에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결국 '핵심적 가치'가 아니라면 헌법에 담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편 얼마 전 국회에서 극적인 합의가 도출된 '주 40시간 제한'과 관련한 합의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결론의 만족도나 그 세부 규정 방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 여론 등 종합적인 고려를 통해 여야가 과감한 양보 끝에 절충안을 통과시켰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런데 이번 개헌안은 그런 과정을 소원하게 두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이번 정부의 개헌안 발표가 '전선'의 확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노동 쪽만 해도 최근 최저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 등 강력한 정책 실행으로 여러 갈등 관계가 형성된 가운데, 개헌안 실패 시 엄청난 후폭풍이 올 수밖에 없다. 과연 전부 수습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제도에 큰 문제없다면 현실 개선이 우선이다.

 
바이마르 헌법은 모든 근대 헌법의 '이상향'으로 일컬어진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 독일을 점령한 하버드대 출신의 미군 병사가 바이마르에 도착해서 "국가사회주의의 발원지"라며 감격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적에게도 칭찬받은' 바이마르 헌법이지만, 과연 현실에 발을 디딘 헌법이었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이다. 미군 병사가 독일에 점령군으로 들러 감격할 수 있었던 것은 바이마르 헌법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법제라도 척박한 현실 토양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국민의 삶과 완전히 괴리될 뿐이다. 법제는 도구에 가깝다. 쓸 만한 도구가 있다면 더 좋은 도구로 바꾸는 것보다 도구를 우선 잘 사용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그런 면에서 우리 법의 노동권 보호 수준이 부족하냐는 점에서는 의심이 간다. 저명한 노동법 학자인 하경효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노동법은 그 내용만 놓고 평가를 한다면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며 "전반적인 틀이나 내용은 잘 갖춰졌다고 평가한다"고 생각을 밝힌바 있다. 물론 그는 "입법내용이 잘 돼 있는 것과 그것이 실제 노사영역에서 잘 작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사 영역에서 작동에 문제가 있을 뿐 법제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면, 노동 현실과 노동 법제의 괴리는 당연히 현실 개선으로 풀어야 함은 자명하다.

 
■헌법이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지만, 현실과 함께 가야

 
헌법은 원래 정치성과 이념성을 가진다. 당연히 '살아있는 권력'의 정치적 판단이 넓게 개입되는 정치투쟁의 산물이다. 인류는 가치를 배제한(가치중립적) 헌법은 결국 민주주의의 기본도 훼손하게 된다는 점을 배웠고, 이제는 헌법에서 가치 판단과 지향이 필수라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과 함께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규정도 다소 섣부른 감이 있다. 비정규직이나 성별차별 같은 전반적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관련 내용을 둘러싼 개별 논의는 시작단계다. 남녀고평법이나 비정규직법에 규정된 차별금지조항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개별적 가치를 헌법에 넣는 것은 의미도 크지 않고 자칫 분쟁 확대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독일의 학자 뢰벤슈타인은 헌법을 명목적 헌법과 규범적 헌법으로 구분했다. 명목적 헌법은 헌법이 실현되는 데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아 기능하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노동 쪽에 제한한 해석이지만, 그런 면에서 이번 개헌안이 현실을 좀 더 세밀하게 반영해명목적 헌법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곽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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