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0 17:13:16 수정 : 2018-04-30 14:44:58

[기자메모] 2018년판 노조파괴의 망령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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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호 vol.324]
돌아온 노조 파괴의 망령

 
삼성의 몸을 빌려 노조 파괴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에 띄는 것은 노무 업계에서는 입에 이름을 담는 것도 금기시 되던 창조 컨설팅까지 다시 들먹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 내부에서 노조파괴를 기획한 사람이 창조 컨설팅 노무법인 출신 변호사라는, 구체적인 소문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이 외에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보좌관 출신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외부에서 삼성에게 노조파괴 자문을 해 준 것이 유력하다는 한 노무사의 실명도 업계 물밑에서 돌고 있다.
망령의 재등장이라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함께, 그렇게 노무 업계가 노조파괴의 어두운 그늘에 다시 들어서는 것 같았다.
 

80년 무노조 청산, '노조파괴' 이슈 덮나?

 
하지만 역시 삼성은 '달랐다'. 문제가 됐던 사업장의 근로자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돌렸다. 유례없는 이슈가 돼야 마땅한 이 사례는 오히려 삼성이 "무노조 신화를 포기" 한다는 점에 포커스가 몰리는 모양새다. 진보 매체는 물론, 민주노총 역시 "삼성에 또 하나의 가족, 민주노조를 선물하자"며 '센스 있는' 환영을 표시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80년 무노조 경영 포기라는 거대 이슈가, 노조 파괴에 나섰던 삼성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저 삼성'에 드디어 노조가 들어간 것만으로 승리라는 만족감일까.

이 기간 동안 삼성이 그런 방식으로 무노조를 유지했다면 '계속범'으로 오히려 더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며 더 밝혀내고 더 가중해서 처벌해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 '빠르고 신속하고 확실한 사과' 앞에서, 거기에 만족한 피해자 앞에서, 그렇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면죄부를 얻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예전 노조파괴 사례에서는 '양형에 고려할만한' 사유가 있었다. 노사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사업장이 많았고, 강성노조가 있는 사업장이 대부분이었다. 경영권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 초조한 사주의 잘못된 선택이 빚은 비극으로 볼 구석도 있다.

하지만 삼성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근로자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기본적인 노동3권까지도 싹을 잘라내려는 시도를 하다 적발됐기에 어떻게 보면 더 강한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적어도 '노조파괴' 관련해서는 삼성을 둘러싼 분위기는 극단으로는 치닫고 있지 않다.

 
노동계 놀란 가슴, 전문가를 향하다

 
속칭 '노조파괴자', '노조파괴 부역자'들의 이름이 업계를 돌면서 노동법 전문가들도 불안한 시선으로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는 모양새다. 물론 국가의 공인을 받은 전문 자격증으로 반 헌법적 행동을 한 전문가들은 물론 지탄 받고 처벌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얼마 전 발전노조가 국회에서 5개 발전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한 노무법인이 발전사 자문을 통해 편향적이고 편법적인 컨설팅을 했다면서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해당 컨설팅 문건 폐기를 요구하는 일이 일어났다.

같은 날 오후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강병원 민주당 의원과 김명환 위원장도 참석한 채 열린 토론회에서는 민주노총 소속 한 연구원이 그 노무법인의 실명을 거론했다. 그 법인이 맡았던 컨설팅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런 법인의 대표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의 구성원이 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을 목도했다.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제외 사유를 광범위하게 해석해 정규직 전환을 최소화하는 의견을 내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슈가 되자, 결국 고용노동부가 해당 노무법인과 거래한 기업들 까지도 조사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궁금함에 해당 자료 원본을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해 살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법이나 탈법이라고 할 만한 사항은 찾기 어려워 보였다. 굳이 마지막 부분에 "불법파업 대응책"으로 붙인 내용이 노동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듯하다.

전환 예외 범위를 광범위한 해석을 한 것도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전환심의위원회는 노사공 각계 대표로 조직이 됐거나 다수 전문가가 들어온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와 어긋나는 의견을 낸 사람이라는 이유로 참여 자격 자체를 논하는 것은 조금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최근 분위기도 그렇고 노조파괴로 노동계가 받은 쇼크가 어마어마하다보니, 그런 날카로운 반응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앞으로도 노동전문 변호사나 노무사들도 꾸준히 두려워하고 고민해야 할, 과거로부터 내려온 원죄(?)다. 다른 분야와 달리 진영이 확실히 구분되는 분야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노조파괴 불법 컨설팅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겠지만, 전문 자격사의 정당한 노무컨설팅까지 위축되는 상황이 온다면 노사관계의 건전한 형성이나 힘의 균형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위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 노무법인의 실명까지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전문가들만 대속(代贖, redemption)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전문가들도 신뢰를 되찾으려는 자발적인 자정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씁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불현듯 든다. 
곽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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