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12 15:34:40 수정 : 2019-03-04 14:30:32

[분석] 영국 헤르메스, 택배 기사 근로자로 인정...단협으로 '최저임금, 연차휴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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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호 vol.334]



영국에서 가장 큰 택배업체 중 하나인 헤르메스가 소속 택배 운송 기사들에게 최저임금과 휴일근무 수당을 보장해 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월 3일, 헤르메스는 기사들이 소속된 산별 노조인 GMB와 단체협약을 맺고, 소속 운전사 1만5,000명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즉 기존 계약대로 남거나, 헤르메스의 노동자(Worker)가 돼 최저임금과 휴일근무 수당 등을 받을 수 있거나, 두가지 권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들에게 '노동자성'을 부여하는 사상 최초의 단체협약으로 알려졌다. GMB는 영국 산별노조로 조합원수만 60만명이 넘는다.
 
그간 영국 택배 운송 기사들은 법적으로 '노동자'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휴가급여, 병가급여, 연금, 최저임금 또는 차별 금지 등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번 합의에 따를 경우, 헤르메스 소속 노동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 기사에게는 최대 28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지며, 최근 인상된 영국 최저임금(8.55파운드, 우리 돈 1만2,300원 정도)을 적용 받게 된다. 다만 노동자(Worker)신분을 택할 경우에는 헤르메스가 정한 가장 효율적인 노선으로 운행해야 하는 제한을 받게 된다.
 
반면 기존 근로관계 유지를 원하는 택배기사는 원래 조건대로 일할 수 있다. 즉 자영업자 신분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프리미엄 요금제를 적용받고, 노선을 자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영국은 근로자를 크게 4분할 수 있다.
우리는 근로자 아니면 사업주로 이분화 하지만, 영국은 더 세분화 돼 있는 셈이다. 근로자는 독립계약자, 파견근로자, 일반근로자(employee), 노동자(worker)로 나뉜다.
일반근로자는 우리나라의 근로자에 해당하며, 노동자는 유럽연합법에 따라 최근에 생성된 개념으로, 근로계약 아래서 일하는 자를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개념이다. 노동자는 일반근로자 수준은 아니지만 근로조건에서 법적 권리를 상당부분 보장받는다.
영국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은 일반근로자보다는 주로 노동자로 인정 받는 주장을 펼친다.

- <유럽노동법해설>(외교부) 참고

 


 
 
■긱 이코노미 종사자, 노동자(Worker)인가 두고 논쟁 확대


 
이번 헤르메스와 GMB의 협약의 배경에는 노사 간 벌어진 소송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MB는 2017년 1월부터 헤르메스를 상대로 소송을 계획했다. 실제로 GMB는 택배기사가 자영업자라고 주장하는 회사에 맞서, 그 해 크리스마스 기간을 끼고 20일동안 업무를 중단하면서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18년 1월, 고용법원에서 65명의 헤르메스 기사들이 노동자(Worker)로 인정받아 최소임금과 유급휴가 등을 얻어내 자영업자 지위를 벗어났다. GMB 관계자는 이 판결을 두고 "취약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인 사법 개입"이라며 "비슷한 계약 하에 일하고 있는 1만 5,000여명의 기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헤르메스 사측은 판결 직후 법원 결정에 항소를 시사했지만 곧 GMB와 대화에 들어갔고, 그 결과 이번 협약이 체결된 것. 이번 합의로 헤르메스는 항소를 포기했고, GMB도 더 이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 우버도 영국 내 소송에 휘말렸다. 이미 "운전자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고용항소법원 판결이 지난해 12월 20일에 나온바 있다. 이 판결을 내린 고용항소법원은 1심 격인 고용법원이 내린 "우버 운전기사는 노동자에 해당하므로 유급휴가와 최저임금이 보장된다"는 판단이 옳다고 인정하며, 재판관 2대 1의 의견으로 우버의 항소를 기각 바 있다.
 
이에 대해 우버 대변인은 "재판관 만장일치도 아니었으므로 상고법원 승인을 받아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우버의 법정 다툼은 프랑스에서도 발생했다. 지난 1월, 프랑스 고등법원은 우버 운전사가 제기한 항소사건에서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심 법원은 우버 운전사는 자영업자에 해당한다면서 우버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판결이 뒤집힌 것.
 
이처럼 소송전을 이어나가는 우버와 달리 헤르메스는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결정으로 다른 긱 이코노미 산업에서도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영국 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단체협약 형식으로 노동자 인정... 긱 이코노미 고용형태에 충격 줄까 

 
한편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헤르메스가 기존 계약 형태를 유지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급여나 경로 선택 자율권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기사들이 고용될 권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대표적인 공유경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또 다른 단체인 IWGB(Independent Workers Union of Great Britain, 독립노동자연합) 노조 사무총장 제이슨 모이어-리는 "이번 헤르메스와 GMB의 단체협약은 소위 긱 이코노미에서 노동조합이 쟁취해 낸 승리"라면서도 "다만 노동자로 인정받아 온전한 법적 권리를 쟁취할 수 있는데도 '선택권'을 얻어낸 데다, 노동자로 얻을 수 있는 권리 중 일부만 확보한 것은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대표적인 택배 운송 기업이자 긱 이코노미 노동자 비중이 큰 헤르메스에서 단체협약으로 노동자로의 권리를 부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헤르메스 최고 경영자인 마틴 드 랭은 BBC 등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택배기사들의 의견을 경청해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공하려 노력했다"며 "다른 회사들도 이런 모델 도입을 고려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약을 이끌어 낸 팀 로치 GMB 사무총장도 "헤르메스가 보여준 방식은 긱 이코노미가 반드시 착취 경제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다른 고용주들도 이 같은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협약은 노조와 단체협약 형식으로 체결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노동자성 판단이 아직 애매한 상황에서 노조를 통해 단체협약을 맺은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긱 이코노미를 대표하는 기업이자 음식물 배달업으로 유명한 '딜리버루' 소속 배달원들은 지난해 12월, 영국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단체교섭권을 가질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영국에서 고용계약에 따른 소송은 고용법원을 거쳐 고용항소법원으로 가거나, 지방법원을 거쳐 고등법원으로 가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영국 고등법원은 IWGB와 Trade Union이 배달원들과 함께 "식품 배달 업체들은 배달원들과의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한 것.
 
딜리버루 배달원들은 노조를 통해 업체와 근로조건과 기한, 휴일을 논의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 확보를 원했지만, 법원은 이들이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노동자'로 볼 수 없다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IWGB도 즉시 항소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영국에서도 긱 이코노미를 두고 논쟁과 소송이 난무한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헤르메스는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해 준 셈이니, 이런 행보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영국 기업들이 바짝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최근 특고 근로자 논쟁이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곽용희 기자 kyh@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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