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고용노동부가 지난 2023년 1월 9일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살펴봤다. 이 자료에 제시된 진단과 처방에 대체로 동의한다. 또한 제시된 세부 정책과제들도 몇 개 빼고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일부 쟁점이 되는 것도 당사자 요구를 수용해 숙의 과정을 제대로 밟는다면 합의가 가능한 수준과 형태로 다듬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자료를 읽으면서 현 정부가 노동조합에 대해 '자기충족적 편견'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만약 그렇다면 노사정 갈등의 점진적 심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노동조합에 신규 가입한 노동자들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꺾고 불만과 분노를 키우게 될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니, 노동 규범 개선이니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험난해질 것이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해보겠다.
우선 정부가 노동조합에 대해서 편견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앞서 언급한 정부의 자료는 가장 우선적인 추진 목표로 '노동개혁의 완수'를 제기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우선 전략으로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내걸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런데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제일 먼저 추진해야 할 정책 프로그램으로 '5대 불법·부조리 근절'보다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와 '(노조의) 불법·부당한 관행 개선'을 앞세운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정부가 지정한 5대 불법·부조리는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불공정 채용 ▲직장 내 괴롭힘이다. 하나 같이 지난 몇 년간 공론장을 달궜던 사회 이슈다. 법치의 칼날과 저울이 이런 문제보다 '노동조합의 회계 장부'와 '노동조합 가입 강요'에 먼저 적용돼야 할 이유가 뭘까? 2021년 말 기준 임금체불액은 약 1조3000억 원이고, 2016년 직업능력개발원이 추정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연간 손실은 4조7800억 원가량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노동조합이 이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피해를 가져오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걸까?
둘째, 정부가 경제 활력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관행과 경직적인 노동 규범을 문제 삼는 것은 긍정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그런데 '노사갈등 시 과도한 정부 의존'이라 표현하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불합리한 관행으로 몰고 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에는 크게 우려한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 화물연대 화물기사의 파업을 겪었다. 전자는 정부가 조정자로서 개입해 노사 합의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했고, 후자는 법과 원칙을 앞세워 거리를 두고 규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의 사례 이후에는 정부도 성과로 내세우는 '조선업 상생협의체'가 발족해 하도급 구조 개선, 인력난 해소 등의 문제해결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후자의 사례로 인한 갈등은 노동현장에서는 봉합됐으나 법원과 국제노동기구로 장을 옮겨 진행 중이다. 각각의 사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노사 당사자의 자율적 문제해결 행동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노사갈등에 대한 정부 개입보다 무관용 대응이 낫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현 정부의 계획은 노동조합을 잠재적인 불법행위자 혹은 거리를 둬야 할 대상으로 전제하고 작성된 측면이 있다. 만일 실제로 그렇다면, 그리하여 이러한 전제적 인식이 점진적으로 발현돼 노정관계가 악화한다면, 정부는 정책 목표 달성에 있어 심각한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노동조합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노동시장에서 발휘하고 있는 공익적인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2017년 논문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와 달리 2013년 이후에는 임금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을 규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황선웅 부경대학교 교수의 2017년 논문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지역단위 비조합원의 평균임금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지역 내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포인트 오르면 비조합원 평균임금이 5%가량 증가하는데, 이로부터 영향을 받는 이들은 주로 청년, 고령자, 여성, 중소기업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노동조합을 정책 과정에서 배제한다면 이러한 순기능은 약화될 것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라는 정부의 핵심 목표 달성 또한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전투적 노사관계라는 낡은 관행과 비생산적인 규범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약 293만3000명으로 2017년 말보다 약 84만5000명이 늘었다. 100인 이하 중소기업 노동자, 중장년 여성 노동자 등의 조합원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졌다. 이들 신규 조합원 대부분은 국민경제의 건강한 발전을 바라는 탈이념적인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감시하고 정치사회적 참여 기회를 제한한다면 신규 조합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노사관계를 생산적이고 공익적으로 재편할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나아가 정부 당국과 노동조합 상급단체 간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면 이들 또한 상급단체의 지침에 따라 정치투쟁의 장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최소화돼야 할 전투적 노사관계의 관행은 다시금 재활성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정부의 태도와 행동이 낡은 관행과 비생산적 규범이 성장하는 텃밭과 자양분을 제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결국 정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하라. 특히 최근에 신규 조합원이 된 이들이 일하다가 고개를 들고 성난 얼굴로 돌아보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