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노동법률]고은실 홍익대 일반대학원 회화과 초빙교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1988)과 <프랙탈 거북선(Fractal Turtleship)>(1993)을 소개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층 로비 나선형의 계단 중앙홀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있다. 한국 5층 탑 형태의 철 구조물에 1003대의 검은색 삼성 텔레비전을 쌓아놓은, 화려한 영상과 소리를 뿜어내는 비디오 설치작품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와 개천절을 기념해 최신의 삼성전자 TV모니터를 협찬받아 만들어졌다. 지름 750cm, 무게 16톤, 높이 1,850cm의 원추형 탑의 거대 철골구조 위에 25인치 TV 195대, 20인치 103대, 14인치 93대, 10인치 552대, 6인치 60대로 총 1003대 TV모니터를 5층 탑 형식으로 기단과 옥개부분을 포함해서 7단으로 구성했다. 백남준은 작품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영상 이미지를 제공하고 구조물의 설계와 제작은 건축가와 다른 사람들이 했다. 바닥 슬래브를 뚫고 암반층까지 내려가 기초공사를 했다. 현재는 작품에 사용된 세계적으로 단종된 CRT모니터의 수집과 수리·복원, 재생기술 조사와 신기술의 검토 및 모니터, 배선, 분배기, 소프트웨어 교체작업 등 전반적인 기술검토의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고 내년에 전시가 재개될 예정이다.
영상 이미지는 세 개의 채널로 구성돼 있어 1, 2, 3층 영상이 같고, 4, 5층에 같은 영상이 상영된다. 이미지들은 식별이 어렵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음악과 시끄러운 소리가 혼합돼 들린다. 사람의 한쪽 눈이 화면 전체를 덮거나,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이 연주를 하는가 하면, 느리게 몸을 돌리고 있는 두 명의 춤추는 댄서, 샬롯 무어맨의 쇄골, 피아노 건반, 서양 여성, 한복 입은 여인들, 올림픽 경기마크, 구, 회오리, 원뿔, 원형 고리, 열쇠 구멍 형태, 하트 무늬, X형태 등이 보인다. <다다익선>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모더니즘의 모토인 'The Less, The Better(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산출하는)'와 상충된다.
두 번째 작품은 대전시립미술관 1층의 넓은 중앙홀에 위치한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이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기념해 93엑스포 재생 조형관에 설치한 비디오 작품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을 본떠서 백남준이 제작했다. 거북선의 몸체에는 정면 400cm, 높이 350cm, 길이 670cm 크기로 텔레비전, 기계들, 인형, 장식품 오브제들이 8층으로 빼곡히 쌓여있다. 거북선 머리에는 원형 형광등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바람이 나와 오색 리본을 펄럭여서 마치 입에서 연기를 뿜는 것 같다. 거북선 전체 윤곽은 LED 빨강, 노랑, 초록, 보라, 파랑의 삼색 네온 일자형광등이 세트로 깜박이며 네 개의 노가 양쪽에서 앞뒤로 계속 노를 저어 움직인다. 거북선의 양쪽 거대한 날개에서는 각각 14인치 텔레비전 40대씩 총 80대 화면 위에 다양한 영상 이미지가 시각적이고 계속 움직이고 있어 색색의 움직이는 노와 함께 거북선이 마치 날고 있는 듯이 보인다.
▲ 백남준, <프랙탈 거북선>, 1993
거북선의 몸통은 전체적으로 갈색과 고동색 톤의 오브제 집적물이다. 총 348대의 텔레비전과 100여 개의 물건으로 이루어지는데, 1920년대 텔레비전들과 전화기, 축음기, 폴라로이드 카메라, 토스터기, 라디오, 자동차, 피아노, 박제 거북, 수족관 등이 조합돼 있다. <프랙탈 거북선>의 오브제들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 때의 서양과 일본의 생활가전제품들로 구성돼 있다. 당시에는 최신의 물품이었겠지만 현재에는 골동품들로 보인다. 틀만 남은 60개 이상의 기계 프레임 속에는 가전 집기들, 인형들, 생활 장식품들이 들어있어 편안하고 친근한 가정집 장식품들로 보인다. '李舜臣'(이순신), '거북선'과 함께 '白南準'(백남준) 자신의 이름을 흰색 물감으로 사인하고 피아노 건반 위와 깃발 위에 다채로운 회화드로잉으로 전통문양을 그려서 이 작품이 예술작품임을 보여준다. 영상 이미지들은 세 종류(미술, 자연, 인공물)로 구성돼 있다. 서로 연관성도, 내러티브도 없는 컴퓨터 화면보호기를 연상시키는 읽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가거나 매우 느린 영상들을 대조하여 보여준다. <프랙탈 거북선>은 보존과 전력 절약을 위해 하루 4시간만 켜 놓는다.
거북선 뒤편에는 기계실의 소박한 커다란 두 개의 나무문이 있다. 거북선이 사람에 의해 관리, 조종되는 사물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대로 놔둔 것으로 여겨진다. 기계실 내부는 전체 틀을 형성하는 목조구조물 틀, 무거운 텔레비전 모니터 세트들의 뒷면들과 전기선들, 스위치들을 소박하고 단순하게 그대로 노출하고 있어서 작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백남준의 노동 현장인 작업실 혹은 사적 공간에 들어가 서 있는 듯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기계도, 영상도, 예술작품도 모두 사람이 조작, 관리, 보존하고 있다. 이 거대한 비디오 설치작품은 예술가가 만들었고, 기술자와 관계자들이 지속적인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다.
<다다익선>은 블라디미르 타틀린(V. E. Tatlin)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1920)을 차용해 만들었는데, 이 탑은 노동자들 개인의 협동을 고취해 결속된 경제적, 정치적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한 시각적 이미지였다. 백남준은 한국인 개개인들의 결속과 우수성이 모여 한국의 전통, 현재 문화, 미래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생각된다. 타틀린의 탑이 엘리베이터 기계를 타고 오르는 빌딩으로 설계된 것인 반면, <다다익선>은 관람자가 계단을 걸어 오르며 감상한다는 점에서 주체가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 예술의 주제이다.
<다다익선>과 <프랙탈 거북선>은 백남준이 추구한 비디오아트의 주체가 결국 사람임을 보여준다. 역사와 억압적 제도와 사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을 현혹하는 기계, 기술 문명과 매스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사용해 소통의 매체로 탈바꿈시키는 것도 예술가, 결국 사람임을 보여준다. 사람이 주체가 돼 참여하고 개입해서 세계가 바뀌고 자신의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계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서,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프레임에 피드백 회로를 이용해 입력된 영상을 비선형적으로 변형, 합성하는 비디오를 만들었고, 이를 방송과 예술작품에 사용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비디오 이미지를 창조했다. 백남준의 미술은 기술을 이용해 비결정성, 우연성을 넣어 시각 문화의 소비자인 수용자, 관객, 사람이 매스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사용해야 함을 강조하며 보여준다. 백남준은 그의 비디오 설치작품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라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류의 유산도, 문명도, 과학도, 예술작품 자체도 결국 주체적 인간에 의한 패러다임이기에, 결국 사람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