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화학 여수공장이 있는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전경(사진=뉴시스)
 
남해화학에서 직접생산공정을 담당한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법원은 업무가 남해화학과 밀접하게 연동돼 하청업체에게 업무 재량권 없었다고 보면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재판장 정회일)는 5월 29일 남해화학 여수공장 하청업체 근로자 A 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하청 관리자' 있었지만…원청 지휘ㆍ감독 '인정'
 
소송을 제기한 하청 근로자들은 남해화학 여수공장 하청업체 소속으로 반응로 분석, 필터 운전, 석고수 처리, 중화 석고 생산업무를 담당했다. 하청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도급 근로자가 아닌 파견 근로자여서 계약기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남해화학에게 직접고용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하청 근로자들의 손을 들었다. 남해화학 여수공장에 하청업체 관리자가 선임돼 있었지만 법원은 원청의 지휘ㆍ명령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하청업체가 현장관리자를 선임해 여수공장에서 근무하게 했지만 실제 업무 지시는 남해화학 근로자들이 담당해 왔다"며 "하청업체는 실질적인 지휘ㆍ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청 근로자들은 남해화학 근로자와 섞여 교대조에 배치됐고, 재량권 없이 상세하게 정해진 업무수행방법에 따라 업무를 해 왔다"며 "업무 수행에 대해 남해화학 담당자에게 수시로 보고하고 매일 작업현황을 기록해 결재를 받은 점을 고려하면 남해화학의 상당한 지휘ㆍ명령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하청업체의 사업이 남해화학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하청의 업무가 밀접하게 연동돼 있어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업무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남해화학 근로자의 휴가 등으로 업무 공백이 발생하면 하청 근로자가 대신 공정에 투입된 점을 볼 때 원하청이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루어 공동 작업을 담당했음이 인정된다"고 했다.
 
'독자 임금 지급ㆍ단협'에도 불파…"당연한 의무일 뿐"
 
하청업체가 근로자들에게 독자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법원은 하청업체에게 근로조건에 대한 독자적인 결정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하청업체가 소속 근로자에게 독자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이는 사용자가 당연히 실시하고 부담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한 것일 뿐"이라며 "이것만으로 독자적인 결정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청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남해화학의 순환근무 원칙에 의해 결정됐고 하청 근로자가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남해화학의 승인이 필요했다"며 "근로조건 결정권이 사실상 남해화학에게 있었다"고 판단했다.
 
하청업체에게 독자적인 전문성과 기술성이 없는 점도 불법파견의 증거가 됐다. 법원은 "하청업체가 남해화학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특별한 전문성과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았다"며 "남해화학이 하청에게 고유하고 특화된 업무를 도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은 하청업체가 독립적인 기업조직과 설비를 갖추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하청 근로자들의 작업 수행에 필요한 작업 도구는 모두 남해화학이 제공했고, 작업장ㆍ대기실ㆍ샤워실도 남해화학의 시설을 사용했다.
 
재판부는 "하청 근로자들이 사용하는 시설ㆍ장비ㆍ작업 도구를 모두 남해화학이 소유했다"며 "하청이 남해화학이 도급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고유의 기술이나 특별한 자본을 투입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이번 판결로 남해화학은 간접공정, 연구소에 이어 직접공정에서도 불법파견 리스크를 안게 됐다. 2023년 9월 대법원은 남해화학 여수공장에서 비료 포장, 삽차 운전, 차량 정비 등 간접공정 업무를 수행하던 하청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을 인정했고, 같은 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은 남해화학 기술연구소에서 시료 채취ㆍ분석 업무를 담당하던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불법파견 리스크가 확대되자 남해화학은 지난해 11월 여수시, 고용노동부 여수지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여수지역지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여수시지부와 '도급업체 고용 문제 재발 방지를 위한 여수지역 상생 공동 협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12월 비정규직 10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남해화학은 진행 중인 법적 다툼은 이어 나갈 방침이다. 이번 판결에 불복한 남해화학은 지난달 19일 항소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