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에 위치한 인천광역시의료원 전경(사진=인천광역시의료원)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인천광역시의료원의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이사회 의결 없는 단체협약의 효력'이 쟁점이 된 사건으로, 법원은 "이사회 의결이 없다는 이유로 단체협약 효력을 다툰다면 노사 합의하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했다.
 
2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인천제2민사부(재판장 신종오)는 인천광역시의료원에서 퇴직한 A 씨 등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및 퇴직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측 항소를 기각했다. 원고 패소한 1심을 유지한 판결이다.
 
'최대 15% 삭감' 임피제 도입…1심, '적법' 판결

인천광역시의료원은 지난 2016년 단체협약을 체결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임금을 1차 년도(58세)에 95%, 2차 년도(59세)에 90%, 3차 년도(정년60세)에 85%를 지급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소송을 제기한 A 씨 등은 의료원의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했다며 무효라고 주장했다.
 
1심은 의료원의 임금피크제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1심은 의료원의 임금피크제가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하고, '정년보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고령자고용법 목적에 맞게 도입됐다고 판단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한 근로자들의 불이익도 크지 않다고 봤다. 1심은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임금 감축 등 근로조건의 불이익 정도가 큰 것은 사실인데, 의료원은 임금피크제 대상 근로자들의 임금감액률을 1차 년도 5%, 2차 년도 10%, 3차 년도 15%로 정하면서도 종전과 달리 매년 임금협약에 따른 임금인상과 호봉상승에 따른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의료원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다음해에 정년퇴직자예정자 대상으로 '공로연수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공로연수제도는 퇴직 이후의 재취업 활동이나 노후설계 등을 위해 최장 6개월 동안 출퇴근 및 근로제공의 의무를 면제해 주는 일종의 공로휴가 방식의 특별휴가다. 1심은 "이는 임금피크제로 발생하는 불이익을 완화하는 대상조치로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사회 의결 없었으니 무효" 새 주장 나와
 
이어진 2심에서 A 씨 등은 이사회 의결 없이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것을 문제삼았다. A 씨 등은 "임금피크제는 '인사ㆍ보수ㆍ복무 등에 관한 규정의 제정 및 개정에 관한 사항'으로서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며 "단체협약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임금피크제는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법원에서 대한석탄공사,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현 국가철도공단), 한국노동교육원,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공기업, 준정부기관에서 이사회 의결(주무부장관 승인) 없이 체결한 인사, 보수에 관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여럿 나왔다.
 
그러나 2심은 이번에도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2심은 앞선 대법원 판결의 경우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의 특수성이 반영된 판결이기 때문에 지방의료원엔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2심은 "인천광역시의료원은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과 그 설립 근거, 목적, 특성 등을 달리하는 지방의료원이고,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이사회 의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노사 간에 체결된 단체협약 등의 효력이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2심은 "지방의료원법 규정 내용을 보더라도, 보수 등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경우 무조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거나 이사회 의결 없이는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취업규칙 등의 효력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무엇보다 노사 간의 주된 관심 중 하나인 보수 등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는 단체협약이 노사 합의로 체결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방인 원고들 또는 회사가 이사회의 의결이 없다는 이유로 그 효력을 다툴 수 있다고 본다면, 노사 합의하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무원보다 노동3권을 더 넓게 보장받는 지방의료원 직원의 지위가 오히려 더 열악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에서 의료원 측을 대리한 김한나 법무법인 율사서재 변호사는 "노사 양측에서 대표성을 갖고 합의한 단체협약을 이사회 의결이 없었다는 이유로 효력을 부인하는 건 양측 대표성을 형해화하는 것"이라며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특별한 효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존중하고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법원도 이번 판결을 통해 확인시켜 줬다"고 말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