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노동법률)

지난달 법원은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의 집단탈퇴 금지 규약에 대한 정부의 시정명령이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노동법률이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정부 시정명령이 노조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87호)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와 눈길을 끈다. 법원이 결사의 자유 협약과 노동조합법의 해석에 대한 판단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김준영)는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 규약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5일 "결사의 자유 협약 3조와 노동조합법 21조는 상호 모순되거나 저촉되지 않는다"며 "노조 하부 조직의 집단탈퇴와 조직형태 변경을 금지하는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은 오히려 근로자와 기업별 노조에 준하는 실질을 갖춘 하부조직(노조의 지회ㆍ지부 등)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취지에 해당해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시정명령, ILO 협약 위반?…금속노조 소송전 돌입

금속노조는 총회를 통한 노조 집단탈퇴는 불가하다고 규정한다. 지회나 지부 단위가 스스로 총회 투표를 거쳐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면 사실상 산별노조를 집단으로 탈퇴하는 결과를 낳는다. 산별노조는 규약을 통해 이러한 형태의 집단탈퇴를 금지하고 있다.

서울고용노동청은 지난해 2월 이 규정이 노조의 자유로운 가입과 활동을 보장하는 노동조합법 위반이라면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금속노조는 시정명령이 위법하다고 반발했다. 정부가 노조의 규약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이 2021년 정부가 비준한 ILO 결사의 자유 협약(87호)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결사의 자유 협약 3조는 노조가 규약과 규칙을 정하고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는 등 활동할 권리를 보장한다.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간섭을 삼가야 한다.

반면 노동조합법 21조는 정부가 위법한 노조 규약에 대해서는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한다.

"ILO 협약, 노동조합법과 상충 안 해…협약 위반 아냐"

그러나 법원은 결사의 자유 협약과 노동조합법은 상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노조 규약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더라도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이 아니라는 의미다.

재판부는 "결사의 자유 협약 2조는 노조가 규약을 작성할 권리에 어떠한 제한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고 '노조가 규약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가지며 공공기관은 이를 최대한 존중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CFA)가 규약을 작성할 수 있는 단체의 권리를 무제한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도 판단 이유가 됐다.

재판부는 이 점을 인용하면서 "규약이 국가안전 또는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할 때는 규약 작성 권리도 제한될 수 있고 국가는 노동조합 규약이 국내법에 따라 작성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조직 구성원 이익 보호와 단체의 민주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경우에는 행정당국이 규약에 간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의 규약이 단결권을 침해할 경우 행정청은 위법한 규약에 관한 시정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며 "행정청의 시정명령이 과도하거나 자의적인 간섭일 경우 노조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권리가 부당하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노조 조직형태 변경을 통한 집단탈퇴 금지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시정명령은 근로자와 하부 조직이 제약 없이 자유롭게 단결권을 행사하고 단체를 운영하거나 활동을 조직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노조 운영을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으로 노조는 집단탈퇴 금지 효력을 다투는 소송에서 두 번째 고배를 마시게 됐다. 앞서 금속노조가 집단탈퇴를 주도한 전 포스코지회 간부 징계 무효를 다투는 사건에서도 법원은 조직형태 변경을 통한 집단탈퇴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지난 6월에도 서울중앙지법은 노조 하부조직의 조직형태 변경을 금지하는 것은 근로자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왜곡하고 노동조합 조직형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금속노조는 지난달 25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