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한 협력업체 근로자의 도장 업무, 내수출고 업무가 불법파견 판단을 받았다. 다만, 2차 협력업체 소속으로 생산관리 업무를 한 근로자에 대해선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내수출고 업무 중 일부가 아닌 '전반'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첫 사례로 꼽힌다.

또한, 간접 생산공정에서 불법파견을 다툴 경우 근로자의 계쟁기간별로 구체적으로 입증하란 법원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같은 업무에 대한 근로자파견관계를 다퉈도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내놓고 있다.

'도장ㆍ내수출고' 업무는 근로자 측 손

10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재판장 정현석)는 지난 6일 현대차 울산공장 1ㆍ2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55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소송을 낸 근로자들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도장 업무, 내수출고 업무, 생산관리 업무 등을 수행했다. 이들은 1ㆍ2차 협력업체 소속이었지만, 2년 넘게 사실상 현대차에 파견된 근로자처럼 일했던 만큼 현대차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법원은 도장공정 업무를 한 1차 협력업체 근로자와 현대차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도장공정은 차체에 도료를 칠하는 공정을 말한다.

도장공정은 컨베이어시스템에 따라 진행됐고 도장공정 설비는 중앙통제실에서 통제했다. 도장공정에서 주요 작업의 경우 현대차 근로자와 1차 협력업체 근로자가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도장업무를 담당한 원고들은 현대차가 정한 생산계획 및 컨베이어벨트 속도에 따라 도장공정 중 일부에 참여해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했다"며 "이는 현대차로부터 작업량, 작업방법, 작업순서, 작업장소, 작업시간 등을 직접 개별적으로 지시받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내수출고 업무를 한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불법파견도 인정됐다.

내수출고 업무는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로부터 도급받은 업무 중 하나로, 현대글로비스는 이를 다시 협력업체에 도급했다. 내수출고 업무는 생산 완료된 자동차를 판매하기 전 단계에 이루어지는 업무다.

2차 협력업체 근로자가 PDA 스캐너로 차량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면 차량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데, 현대차는 PDA 스캐너 사용방법이 담긴 매뉴얼을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제공했다.

또, 2차 협력업체 근로자는 현대차 근로자의 아이디를 이용해 현대차 전산관리시스템에 접속해 차량 정보를 파악했다. 이를 통해 세차장 투입 업무 등을 수행했고, 이 업무 결과 역시 곧바로 전산관리시스템에 반영됐다.

법원은 "현대차는 전산관리시스템을 통해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업무 수행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근로자가 업무 중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현대차의 담당자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현대차가 시간대별 생산대수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불출 등 생산관리 업무는 인정 못 받아

다만, 이번 판결에서 2차 협력업체가 수행한 생산관리 업무는 불법파견 인정을 받지 못했다.

생산관리 업무는 제품의 생산 순서에 맞게 부품을 정리해 공급하는 공정으로, 서열, 불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열은 자동차 부품을 올리는 팔레트에 정해진 순서대로 부품을 배열하는 작업이고 불출은 서열된 부품을 작업장으로 운반하는 업무다. 현대글로비스는 내수출고 업무와 마찬가지로 생산관리 업무를 협력업체에 도급했다.

2차 협력업체 근로자는 서열모니터와 바코드리더기를 이용해 서열된 부품을 점검하고 팔레트 등을 각 생산라인에 불출했다.

법원은 "서열모니터 등은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순서로 서열이 완료된 팔레트 등을 컨베이어 벨트 부근으로 불출할 것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불출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ㆍ명령적 요소 역시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서열ㆍ불출 업무는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적시에 공급해 주는 물류공정의 성격도 가진다고 볼 수 있어 서열ㆍ불출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과 현대차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직ㆍ간접적인 지휘명령이 관련 증거들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내수출고 업무 '전반' 인정한 첫 사례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법원이 내수출고 업무 중 '전반'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조세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내수출고 업무 안에서도 여러 가지 세부 업무들이 있는데, 업무 전반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건 이번 판결이 사실상 첫 사례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내수출고 업무를 담당한 원고들은 ▲출고 전 검사업무(PRS 업무) ▲상차조합 업무 ▲TAG 업무(품질검사를 통과해 통제소 대기장으로 이송돼 온 차량에 전산관리를 위한 태그를 부착하는 업무), ▲세차 업무 ▲시번호판 부착 업무 ▲고객안내 및 SD카드 투입 업무 등 내수출고 업무 전반을 수행했다. 원고들의 수행 업무가 불법파견을 인정받으면서 내수출고 업무 전반에 대한 불법파견이 인정된 것이다.

지난 7월 같은 법원 제48민사부에서 현대차에서 내수출고 업무를 한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이 인정된 바 있지만, 7월 판결은 내수출고 업무 중 PRS 업무 등 일부만 다퉈진 경우였다.

생산관리 업무의 경우 이번 사건에서 불법파견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지난달 나온 파기환송심과는 다른 판단이다. 앞서 지난달 23일 서울고등법원은 서열ㆍ불출 등 생산관리 업무를 수행한 2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해선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관련 기사 : [단독] "현대차 2차 협력업체 '서열ㆍ불출 업무' 불법파견" 파기환송심 결론

두 사건 모두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한 사건이지만, 각 원고들의 계쟁기간(근로자파견관계를 놓고 법적으로 다투는 기간)이 달랐다. 이번 사건의 생산관리 담당 원고들의 계쟁기간은 대략 2003~2016년경까지였다. 파기환송심 사건에선 약 2008~2010년까지였다. 과거엔 계쟁기간별로 판단하기보다 공정별로 불법파견을 판단했지만, 최근엔 계쟁기간을 나눠 불법파견을 판단하는 추세다.

즉, 같은 업무라도 계쟁기간에 따라 소속 협력업체 등이 달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같은 협력업체일지라도 구체적으로 담당하는 업무나 근무 상황에 따라서도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또, 원청의 지휘ㆍ명령의 정도가 다르거나 근로자 측의 입증 수준에서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조 변호사는 "협력업체들도 운영 시기에 따라 발전해 나가면서 생산관리 업무에 관여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며 "근로자파견관계를 볼 때 수급업체에 전문성ㆍ기술성이 있는지, 수급업체가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으로 근로관계 실질을 보는 만큼 재판부 입장에선 앞으로도 계쟁기간별로, 업체별로 입증하라는 요구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