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가 9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 정의실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재헌 기자 jh59@)

법조계ㆍ법학계에서 사내하청 문제 해결과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노동조합법 정의 규정 개정만으로는 사내하청과 노동3권 보장 문제 해결이 어렵다며 노동조합법 전반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 정의실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정병욱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가 좌장을 맡고 김민기 수원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토론에는 김기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책2본부 부본부장, 조연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 전다운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이 참여했다.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고, 노조 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은 지난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조의 점거 파업을 계기로 지난해 21대 국회 본회의, 22대 국회 본회의를 연달아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사내하청 문제, '사용자 정의 확대'가 답"

거듭된 노동조합법 개정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 판사는 하청근로자들의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정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하는 경우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하청근로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하청근로자의 임금은 원청 근로자의 64.5%였다.

김 판사는 "하청근로자들은 원청 근로자와 기본급은 큰 차이가 없어도 상여금, 특별 급여, 복리후생의 차이가 많다"며 "자녀 학자금 지원, 휴가비, 주택 구입 자금 지원 등 복리후생의 차이도 크다"고 말했다.

하청근로자들의 고용불안 문제도 늘 지적되는 문제다. 고용부 사내하도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청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4.1년에서 15.2년이었지만 하청근로자는 2.5년에서 3.7년이었다. 특히 조선, 철강, 금속제조업의 경우 평균 근속연수가 5배 차이 났다.

김 판사는 "기업이 사내하청을 이용해 위험부담을 안지 않으면서 쉽게 고용 조정을 하고 있다"며 "이것이 하청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고용불안정과 함께 위험의 외주화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김 판사는 "고용부에 따르면 매해 전체 산재사망근로자 중 하청근로자의 비율이 40%에 이른다"며 "특히 건설, 조선의 경우 산재사망근로자 중 하청근로자의 비율이 90%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내하청은 하청근로자들의 작업 장소가 원청의 사업장 내에 있어 하청업체의 자율적 노력만으로는 충분한 재해방지 효과를 거둘 수 없다"며 "현재 구조상 하청근로자에게는 사실상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 판사는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여러 노동 문제를 겪고 있지만 노동3권 행사에는 제약이 많다고 봤다.

김 판사는 "원청은 하청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 않고, 하청근로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결성하는 경우 해당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자 교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청업체도 자신에게 실질적인 근로조건 결정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교섭을 회피해 하청근로자의 노동3권 행사는 제약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청근로자들의 노동3권 행사가 어렵다 보니 한번 하청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장기간 격렬하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극한 대립으로 이어지는 하청 노사분규는 노동조합법이 지향하는 산업 평화를 훼손하고 국민 경제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하이트진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파업 장기화의 원인은 노동조건 결정에 있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교섭을 계속 거부해 원하청 간의 단체교섭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노동시장의 구조가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하청근로자가 처한 현실을 종합해 봤을 때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김 판사의 주장이다.

김 판사는 "사내하청 근로자들에게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통해 근로조건 향상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근로조건 결정 권한이 있는 원청과의 단체교섭이 보장돼야 한다"며 "대통령의 연이은 재의요구권 행사로 입법이 여의치 않지만 입법적인 해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정부가 단결권, 단체교섭권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98호 협약을 비준한 만큼 이에 맞는 노동조합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2021년 ILO 제98호 협약을 비준했다. 국제 협약은 비준되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조 변호사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하청근로자들이 원청 사용자에 대해 노동3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불법화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를 내렸다"며 "ILO 제98호 협약 비준과 결사의 자유 위원회 권고에 따라 노동조합법은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 손배청구권, '노동3권' 위협…제한해야"

노동조합법이 하청근로자들의 실질적인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동조합법 개정안 모두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제한(노동조합법 3조 개정)이 담겼다.

이준일 교수는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광범위한 인정은 노동3권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일 교수는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장 경제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재산권 등 경제적 기본권에 기반하고 있어 보호가 필요하다"면서도 "이것이 광범위하게 인정하면 근로자의 노동3권이 지나치게 침해될 수 있어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준일 교수는 근로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준일 교수는 "헌법이 사용자에게 보장하는 재산권, 직업의 자유만큼이나 근로자에게 보장하는 노동3권도 동등한 헌법적 법익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사용자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지 않고 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 공동책임을 부과하면 조합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해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비례성 원칙과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은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부본부장은 "사용자의 불법행위로 쟁의행위를 한 노동자와 노조에게는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 범위와 대상 축소가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의 실효적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 바꾸는 것 넘어 노조법 전반 개정해야"

이준희 교수는 노동조합법 정의 개정에 대한 이념 논쟁을 벗어나 개별 규정 개정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희 교수는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생산적인 논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의 개정 논의도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준희 교수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자'로 개정하더라도 원하청 노사의 법적 분쟁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준희 교수는 "노동조합법상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자'라는 개정안의 내용은 사법부 해석이 필수적인 매우 추상적 개념"이라며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공포된다고 하더라도 법률이 어떠한 기준을 제시하거나 예측 가능성을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정의 개정이 이루어지더라도 연관 법률과 하위 법률 세부 규정은 개정되지 않아 다양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준희 교수는 ▲종사 근로자인 조합원 확정 문제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 ▲쟁의기간 중 임금 문제 ▲대체근로 투입 허용 범위 문제 ▲경비 원조와 지배ㆍ개입 등 부당노동행위 문제 ▲신분범인 노동조합법 처벌 조항 행위 주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준희 교수는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가 정의 규정만 바꾸는 것에 그치면 노사의 심리적 만족 외에 어떤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할 것"이라며 "정의 규정 개정 시 영향을 받는 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있어야 노동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준희 교수는 하청업체의 다양성을 고려한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준희 교수는 "다양한 전문성을 가지고 성장하는 중소 하청업체, 독자적인 기술력을 축적하며 대기업과 상생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기업들도 현장에 분명히 존재하다"며 "원하청 문제를 일반화해 노동조합법을 개정한다면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가 원청 대기업만으로 단순화되고 기업도 대기업만 생존하는 방향으로 수렴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이준희 교수는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노사 양 진영의 진지한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준희 교수는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가 당위성 논쟁에만 그쳐 구체적인 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를 하지 못하고 끝나면 안 된다"며 "다양한 노동 형태를 담아낼 수 있는 개별 규정 개정과 입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