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글로벌 탤런트 페어(GLOBAL TALENT FAIR)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가 AI 모의면접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 전반에 도입되면서 근로자의 채용, 평가, 성과 관리 등 기업의 인사노무 영역에서도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인사노무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AI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적이고 차별적인 정보가 수집돼 근로자에게 잘못된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점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유럽연합(EU) 등 몇몇 해외 국가에서는 AI 활용에 대한 규제를 제도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AI 활용에 관한 기본법인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조성에 관한 기본법(인공지능기본법)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1월 22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인공지능기본법은 '채용과 관련한 개인의 권리ㆍ의무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판단 또는 평가'를 고영향 인공지능으로 분류하고 이 경우 이용 사업자에게 투명성 확보 의무 및 안전성, 신뢰성 확보 조치 이행 의무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 미국
 
미국은 AI를 활용한 채용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관련 규제가 마련됐다. AI 채용에 대한 규제를 시행 중인 대표적인 주(州)는 '일리노이주'와 '뉴욕시'다.

일리노이주는 2020년 1월부터 AI를 통한 채용 절차를 규제하는 법(Artificial Intelligence Video Interview Act)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AI를 활용해 지원자의 영상을 분석할 경우 사전에 지원자에게 이를 고지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한, AI 작동 방식과 평가 기준에 대한 정보도 지원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만약 지원자가 면접 영상 삭제를 요청할 경우 기업은 이에 따라야 한다. 이후 법이 개정돼 2022년부터는 AI 사용에 따른 인종 및 민족적 차별 가능성을 분석하고 보고하는 규정이 추가됐다. 기업은 AI 분석 결과에 대한 데이터를 상무경제기획국에 제출해야 한다.

뉴욕시는 2023년부터 자동화된 고용 결정 도구(Auto-mated Employment Decision Tools, AEDT)에 대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AEDT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 후 1년 이내에 편향성 감사를 받아야 한다. 편향성 감사 결과는 기업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또한, 채용 과정에서 AEDT가 활용된다는 사실을 지원자에게 사전 통지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반복 위반할 경우 벌금 액수가 증가한다. 뉴욕시는 AI 시스템이 인종, 성별, 민족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엄격한 감시 체계를 운영하고, AI가 고용 과정에서 공정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 연방 차원에서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행보가 있다. 먼저, 2023년 10월 바이든 행정부에서 AI 기술의 책임 있는 개발과 사용을 규제하는 첫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110)을 발표했다. 미국은 이 행정명령을 근거로 AI로 인한 고용 변화를 주기적으로 보고받을 수 있다. AI 기술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근로자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이외에도 ▲AI 기술이 새로운 직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교육을 조정하는 방안 마련 ▲AI 사용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지침 요구 ▲AI 도입으로 인한 근로시간 관리 및 감시 투명성 확보 등의 내용이 담겼다.

미국에서 2023년까지 수차례 발의된 알고리즘 책임법안(Algorithm Accountability Act)도 주목할 만하다. 이 법안은 고용ㆍ근로자 관리 분야에서 자동화된 의사결정을 할 경우 검토해야 하는 사항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특히 편견과 차별을 초래할 수 있는 요소를 주의해야 한다.

2024년 4월엔 미국의 연방노동부가 지방노동청을 위한 임금과 근로시간에 대한 공정노동기준법(FLSA)의 규정 및 기타 연방기준의 현장 집행지침[U.S. Department of Labor Wage and Hour Division (WHD), Field Assistance Bulletin No. 2024-1, April 29, 2024]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AI 시스템이 근로자의 자판 입력, 마우스 클릭, 인터넷 사용 등을 추적하는 방법으로 근로자 근로 수행 여부를 결정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올해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110)을 폐지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1월 23일엔 '미국의 AI 리더십을 위한 장벽 제거(Removing Barriers to American Leadership in Artificial Intelligence)'를 새로운 행정명령으로 발표했다. 이 행정명령은 AI 개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연방기관이 이 행정명령과 상충되는 정책을 검토한 뒤 수정하거나 폐지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2. 유럽연합(EU)
 
유럽연합(EU)은 2024년 8월 세계 최초로 AI법(AI Act)을 발효했다. EU의 AI법은 AI의 안전성에 대한 규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지만, 노동 영역에 대한 규정도 찾아볼 수 있다.

AI법은 AI를 ▲금지된 AI시스템 ▲고위험 AI시스템 ▲제한적 위험 AI시스템 ▲최저위험 AI시스템으로 구분한다. 이때 '금지된 AI시스템'에 인종, 정치적 의견, 노동조합 가입 여부, 개인의 종교적 또는 철학적 신념, 성적 지향성 등을 확인하거나 추론하기 위한 생체 인식 분류 시스템이 포함돼 있다. '고위험 AI시스템'엔 채용, 승진, 계약의 종료, 직무적합성평가, 성과 및 근태에 대한 모니터링 및 평가와 관련된 AI시스템이 포함돼 있다. 또, 고위험 AI시스템에선 공급자와 운용자 양자 간의 정보 제공 및 설명 의무, 즉 투명성이 요구된다.

AI법은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AI시스템을 사용할 때 근로자 집단에게 이를 알려야 하는 것은 물론, 근로자에게 더 유리한 규범을 유지하고 도입할 것을 인정하고 있다. 또 근로자에게 더 유리한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것 역시 인정하고 있어 근로자 참여성을 보장한다.
 
3. 스페인
 
유럽의 개별 국가 중에선 스페인의 '노동법상 알고리즘 및 AI 규제'를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은 2021년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이 도입한 AI시스템이 근로자 관리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근로자대표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를 진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 노동법을 개정했다. 기업위원회(Comité de empresa)는 사용자가 도입한 AI시스템이 근로자의 권리에 미칠 영향을 평가할 수 있고, 사용자가 이를 사전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 특히 기업은 AI 알고리즘을 사용해 근로자를 평가할 경우 그 기준과 절차를 근로자대표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다만 기업에 알고리즘 소스 코드 자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AI 활용에 대한 스페인 노동조합의 대응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페인의 전국 규모 노동조합인 UGT는 AI 활용과 관련해 노사 간 단체교섭 시 권장사항을 발표했다. UGT는 단체교섭 시 노사 양측이 ▲AI가 노동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 ▲투명성과 검증을 통해 해결되지 않을 경우 편견이나 차별을 피할 수 없다는 점 ▲근로자대표와의 정보 소통 및 협의 ▲AI의 적절한 사용을 보장하기 위한 기준 마련 등에 상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UGT는 알고리즘이나 AI가 완전하지 않다는 걸 인식하고 AI 오작동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사관리상 차별과 편향성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 독일
 
독일은 2021년 6월 '종업원평의회현대화법(Betriebsrätemodernisierungsgesetz)'을 발효했다. 독일에서 기업의 AI 활용과 관련한 규제를 입법화한 대표적 사례다. 종업원평의회현대화법 발효로 기존 '사업조직법(Betriebsverfassungsgesetz)'이 개정됐다. 법에 따르면 기업이 AI를 도입하려는 경우 종업원평의회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사용자는 종업원평의회에 AI 사용 계획을 알려야 한다.
 
5. 일본
 
일본에서는 AI 기술 도입이 고용, 임금 등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AI 기술 도입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집단적 노사 협의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대신 비공식적인 소통이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근로자 대상 설명회를 통해 고용 불안과 기술에 대한 불신을 완화하고 있으며 AI 기술 운영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 노사 간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기사 도움>
- 미국, EU, 스페인 : 노호창 호서대 법경찰행정학과 교수
- 독일, 일본 :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기사는 노사발전재단과 공동 기획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