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1-11-02 16:54:00 수정 : 2021-11-29 16:28:05

공채가 사라지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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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호 vol.366]

▲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월간노동법률]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무원 아니면 은행

며칠 전 모교 언론사의 후배와 인터뷰를 가졌다.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년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3년 전, 청년정치를 소재로 청년정치크루 멤버들과 함께 책을 집필했는데 마침 그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봤단다. 부끄러운 흑역사 같아서 후딱 절판한 책이었는데 그걸 봤다니 고마우면서도 민망했다.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친 뒤, 이번에는 내가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봤다. 주된 화두는 취업이었다. 취업이야 늘 힘들었지만, 2010년대 이후 기업의 해외 진출과 자동화가 가속화되며 사무직 일자리가 더욱 줄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했다. 문과대학 중심인 우리 학교로서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답변은 예상한 대로였다. 인문계생이 바라볼 만한 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기업들이 속속 공채를 폐지하면서 다들 '멘붕'에 빠졌다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단다. 기업 중에서는 그나마 인문계 인력을 선발하는 은행이나 아직 공채를 남겨둔 삼성이 유일한 희망이다. 국내 일자리가 씨가 마르니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기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학교 안에서 '소수어과'로 칭해지던 베트남어나 인도네시아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그럼에도 취업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 이제는 '바늘구멍'이라던 좁은 취업 문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범용 인재의 퇴장

공채가 사라지고 있다. SK그룹도 올해 하반기를 마지막으로 신입사원 정기공채를 폐지했다. 내년부터는 계열사별로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직군의 인력을 선발한다. 이로써 5대 그룹 중에서는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이 모두 공채를 없앴다.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이 공채를 폐지하고 직무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채용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1957년 삼성물산에서 처음 시작한 신입사원 정기공채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채용문화다. 산업화 시대, 국가 경제가 급성장하며 기업 역시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게 됐다. 기업들은 정기적으로 대규모 인원을 선발하는 공채를 통해 그 인력을 충원했다.

이 당시 채용의 특징이 있다면 '범용 인재'를 선호했다는 점이다. 범용은 '여러 분야나 용도로 널리 쓰인다'는 의미로, 달리 말하면 기업의 특성에 맞추어 어디에든 갖다 쓸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선발 후 진행되는 수개월간의 교육은 그 기업의 가치를 내재한 인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다. 회사를 위해 한 몸 바치던 삼성맨, 현대맨들은 그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공채를 폐지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쓸모를 다했기 때문이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시장 변화가 빨라지면서 범용 인재로는 거기에 대응하는 게 어려워졌다. 현대차그룹이 2019년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며 '직무 역량'을 강조한 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추어 바로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찾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것 또한 이러한 변화에 일조한다. 정년이 보장되던 시절에는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무난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시됐다. 설령 일을 좀 못하더라도 회사가 미래를 보장해줬다. 하지만 이는 연공서열제와 결부돼 필연적으로 고비용·저효율을 낳았고,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직무 역량이 출중한 '스페셜리스트'를 선발하는 게 훨씬 경제적인 방법이 됐다. 그 결과 직원들이 느끼는 직무 전문성과 자기계발의 압박도 증대됐다. 공채형 인재가 발붙일 자리가 점점 좁아진 셈이다.

진정한 공정은 일자리 양극화 해소

공채 폐지가 취업준비생들에게 기회일지, 재앙일지는 아직 모른다. 수시 채용이 이직을 통한 단계적 성장을 가능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압박이 커지는 건 확실하다. 앞길은 깜깜한데 누구 하나 명쾌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많은 취준생이 수시 채용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는다. 과연 공채만큼 투명하고 정직하게 채용이 진행될 것이냐는 물음이다. 그들은 수시 채용을 통해 낙하산 채용, 이른바 부모 찬스가 횡행할 것이라고 본다. 그런 염려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입시와 취업 과정에서 알음알음 자행된 반칙과 불공정을 너무 많이 봐 온 이들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미래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 남아있다면 그 우려를 불식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를 좁히고 차별을 해소하는 일이다. 10월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는 156만7000원으로 2004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확대됐다. 비정규직 비율 역시 38.4%로 200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걸 두고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청년들은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공채에 그토록 목을 매는 건 그게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 관문을 넘느냐 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갈린다. 이 사회가 수십 년에 걸쳐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렇게 보면 결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인지도 모르겠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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