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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2-06-13 07:35:00

    수정 : 2022-06-13 07:39:46

구본주(1967-2003)의 “아빠 왔다(I’m Home)”

2022-06-13 07:35:00



구본주(1967-2003)의 “아빠 왔다(I’m Home)”
[2022년 6월호 vol.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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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주, <미스터 리 (Mr. Lee)>, 1995, 철 530×230×60㎝ 

    [월간 노동법률] 고은실 홍익대 일반대학원 회화과 초빙교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얼굴은 측면에서 눌려 찌부러지듯 길쭉해지고, 무릎은 비정상적으로 꺾인 채 허겁지겁 서류 가방을 들고 잘 빗어 넘긴 머리에 넥타이를 휘날리며 시간에 쫓겨 출근길을 내달려가는 모습. 달려가느라 목은 학처럼 앞서가고 어깨는 경직돼 무겁고 숨을 헉헉거리느라 입은 헤벌어지고 동공은 놀란 듯 커져 있다. 팔을 뻗고 다리를 벌려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듯, 놓치지 않으려는 듯, 쫓기는 건지 쫓는 건지 모른 채 죽어라 눈치 보며 달려가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의 샐러리맨을 과장되고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머리는 길게 늘어나 숫자 1처럼 됐고, 지탱하는 목은 가냘프다. 지위와 업무, 직책 같이 비대칭적으로 과도한 사각형 틀의 철로 만든 양복은 거대 몸통의 형태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지만 격식만 있을 뿐 속은 텅 비어있다.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크게 벌린 입은 다물 줄 모르고, 날리는 머리는 격식과 품위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비정상으로 보이고 공허하다. 사람의 존재감보다는 동상처럼 보이는 이 왜곡과 과장이 직장인의 삶의 모습과 실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외환위기, 기업의 줄도산, 명예퇴직으로 거리에 쫓겨난 가장들. 아버지들에 대한 연민, 가장의 비애가 마치 뭉크의 <절규>와 같이 와 닿는다.


    ▲ 구본주, <생존의 그늘(The Gloom of Existence)>, 1997, 브론즈 170×100×200㎝

    늪인지 맨홀인지 알 수 없는 땅속에 잠긴 머리 벗겨진 중년의 남자는 살기 위해 눈을 치켜뜨고 바깥의 돌아가는 상황을 불안하고 소심하게 염탐하고 있다. "정리해고 때 잘리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줄을 서야 살아남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샐러리맨의 모습"이라고 작가의 아내는 설명한다. "가장이면서 마누라에게는 돈 벌어오라고 구박받고, 집밖 회사에서는 잘릴까 봐 눈치를 보는 힘 빠진 아버지의 모습이다." 비명이나 SOS조차 외칠 수 없었던 외환위기 시절의 힘없는 아버지와 가장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무기력한 소시민의 모습에 사랑과 애정을 담고 숨을 불어 넣었다. 새벽이면 조바심을 내고 출근했다가 지친 몸으로 귀가해서 초췌한 몸과 마음을 다 추스르지도 못하고 다시 출근하는 직장인, 월급쟁이의 모습이다. 


    ▲ 구본주, <눈칫밥 삼십 년(To Eat a Person's Salt for 30 Years)>, 1999, 나무·철 70×70×20㎝

    구본주(1967-2003)는 9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을 투영한 독창적 구상조각으로 MBC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1993), 모란미술대상전 작가상(1995)을 받았다. 주목받던 젊은 작가였으나 교통사고로 37세에 타계했다. 그의 죽음은 예술가에게 일용노동직 기준을 적용해 배상금을 산정하려 했던 보험사와 유가족 사이에 소송이 벌어지면서 예술가의 상황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구본주는 현실주의 리얼리즘 조각으로 시대정신과 사회문제를 따뜻함과 애정으로 담아냈다. 시대를 관통해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시대적 성찰을 유도한다. 그는 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당하는 아버지를 주제로 나무, 쇠, 청동, 흙으로 사실적인 세부 표현을 바탕으로 길쭉하게 늘리는 형상 왜곡을 통해 입체감, 긴장감을 높였다. 인물상은 인체보다는 계급성을 드러내는 정장을 입고 있으며 공감할 만한 생생한 현실의 표정을 짓고 있다.


    ▲구본주, <별이 되다>, 2003, 설치

    그의 유작 <별이 되다>는 천 개의 다른 형상의 샐러리맨 조각들을 폴리코트에 야광 안료를 섞어 만들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설치하려고 한 작품이었으나 작가가 세 개의 조각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기에 유족과 제자, 동료들이 완성한 작품이다. 영웅이 돼보지 못 한 사람들을 영웅처럼 하늘 높이 띄워서 영웅화하도록, 우러러보도록 만든 작업이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네가 바로 네 삶의 영웅이고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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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실

     홍익대 일반대학원 회화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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