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7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재적 300인 중 재석 179인, 찬성 177인, 반대 2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 이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종사자 등이 급증하면서 '근로자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여전히 뜨겁다. 새로운 고용형태가 늘어날수록 근로자성 판단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노동법률은 지난달 25일 '근로자성 분쟁 리스크 완전 정복'을 주제로 웨비나를 개최했다. 웨비나는 이미소 노무법인 HRS 공인노무사가 맡아 진행했다. 이날 웨비나에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과 사용자성,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과 사용자성을 나눠 분석하고 최근 판례의 동향을 정리했다.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 핵심은 '종속노동성'
우리나라 노동시장엔 현행 근로기준법상 전통적인 의미의 사용자와 근로자가 있고, 여기에 걸쳐 존재하는 제3의 영역이 있다. 이러한 제3의 영역은 노무제공자, 특수고용형태종사자, 플랫폼 종사자 등으로 불린다. 제3의 영역에 포함되는 고용형태가 급증하면서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혹은 사용자인지 판단하기 위한 법적 분쟁 역시 늘어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사용자인지를 판가름하는 핵심 기준은 '종속노동성'이다. 종속노동성이 없어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대법원은 2006년 법리를 수정해 제3의 영역에서 근로자로 판단하는 범위를 확대했다. 종전에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ㆍ감독'이 있어야만 종속노동성을 인정한다는 엄격한 요건을 뒀지만, 2006년 판결 이후 '상당한 지휘ㆍ감독'으로 완화됐다.
이 노무사는 법원이 '상당한 지휘ㆍ감독'의 기준으로 ▲취업규칙, 인사규정 적용 여부 ▲근로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 지시 ▲근무시간, 근무장소 등 지정 및 구속 여부 ▲출퇴근 통제 및 근로자의 구속 여부 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특수고용형태종사자의 종속노동성을 인정한 판결 중엔 한국전력공사 위탁업체 위탁검침원 사건이 있다. 이 노무사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위탁 검침원들의 업무는 피고인 한국전력의 사업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며 "법원은 적정한 업무 수행을 위해 상당한 지휘 감독을 하고자 하는 유인이 컸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노무사는 "한국전력은 위탁 검침원들에게 업무 처리 지침을 만들어 업무의 방법이나 절차를 상세히 정했다. 또한 실적을 평가해 계약을 연장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했고 업무량을 조정하기도 했다"며 "따라서 대법원은 한국전력이 위탁 검침원에게 품질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한 통제가 사실상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했고, 위탁 검침원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봤다"고 말했다.
종속노동성이 인정되도 독립사업자성이 높게 나타난다면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독립사업자성은 기술적ㆍ조직적ㆍ경제적 독립성을 의미한다. 법원은 ▲비품ㆍ원자재, 작업 도구 등 소유 여부 ▲제3자의 고용에 의한 업무 대행 여부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 등 위험 부담 여부 등을 판단기준으로 보고 있다.
이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면서 독립사업자성을 살핀 판결로 백화점 위탁 판매원 사례를 소개했다. 대법원은 백화점에 입점한 발렌타인의 위탁 판매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했고, 삼성물산의 위탁 판매원은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직종이지만 근로자성 판단이 엇갈린 사례가 나온 것이다.
이 노무사는 "삼성물산의 경우 매출액에 연동해 수수료를 지급했고, 발렌타인의 경우 매출에 따라 계산된 수수료를 기존 연봉에 일정한 비율로 지급했다"며 "법원은 삼성물산은 판매 실적에 따라 지급된 것으로 근로 제공의 대가로 보기 어렵다고 봤고, 발렌타인은 고정급을 지급하면서 수수료를 제공했기 때문에 노동력 등에 대한 대가로 제공한 것이라고 봤다. 같은 직종이라도 독립사업자성에 따라 근로자성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기법상 '진짜 사용자', 판례는 묵시적 관계도 인정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직접적인 상대방, 즉 고용계약서를 작성한 사업주만이 사용자로 인정된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다단계 도급, 파견, 플랫폼 노동과 같은 다양한 고용구조가 등장하면서 '누가 진짜 사용자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한층 복잡해졌다.
특히 대기업과 하청업체가 얽힌 다층적 외주 구조, 플랫폼 등은 표면적으로는 계약이 복잡하게 나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이나 본사가 직접적인 사용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은 1999년 판례를 시작으로 외형상 도급계약이라 하더라도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휘ㆍ감독권을 행사하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이후 판례는 사용자성의 인정 범위를 점점 넓혀 왔다.
사용자성의 범위를 넓힌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현대미포조선 사건다. 이 노무사는 "이 사건에서 원청은 하청 소속 근로자들에게 채용, 승진, 징계에 관해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했고, 근태도 점검했다"며 "법원은 하청업체가 사업 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독립적인 사업주가 아니라 원청의 사업 부서에 불과하다고 판단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사례"라고 말했다.
플랫폼 종사자의 사용자성 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타다 드라이버 사건이다. 쏘카는 타다 드라이버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VNC라는 하청업체를 통해 타다 드라이버를 공급받았으나, 대법원은 타다 드라이버의 사용자가 쏘카라고 판결했다.
이 노무사는 "타다 드라이버 사례는 쏘카가 사용자로서 직접적인 지휘ㆍ감독을 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사실상 지휘ㆍ감독을 했다고 판단한 판결로, 대법원은 쏘카가 사용자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 같은 대법원의 논리가 다른 플랫폼 종사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지, 플랫폼 노동이 아닌 다른 영역에도 이렇듯 완화된 논리를 적용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외형상으로 도급계약이라도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근로자에게 직접 지휘ㆍ감독하면 법원은 언제든지 원청을 사용자로 본다"며 "특히 하청업체가 사업적 독립성이 없거나 인력ㆍ장비ㆍ권한을 원청에 의존할수록 리스크는 커진다"고 강조했다.
노조법상 근로자ㆍ사용자성, '실질 지배력'으로 확장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는 헌법상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 더 넓은 범위를 보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사용자와의 종속적인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지만,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는 '임금 등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법원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는지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 사업자가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 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ㆍ전속적인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 노무사는 "법원이 '특정 사업자'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시하고 있지만,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기 위해 특정 사업자의 존재가 반드시 전제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중 플랫폼 종사자, 비전속적 대리기사 등 특정 사업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거나 심지어 구직 중인 경우에도 노조에 가입이 가능해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요 판례에서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 개념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2024년 1월 CJ 대한통운이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받아 주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하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대했다.
이 노무사는 "해당 판례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 있다면 계약서에서 명시적으로 사용자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로서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경우 교섭 당사자로서 사용자성이 확대될 가능성은 더욱 크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 제정으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성이 확대돼 법적 분쟁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법원의 최근 판례 동향을 살펴보면 노란봉투법 입법을 통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 범위로 명시하게 되면 분쟁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