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본사(사진=뉴시스)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 목적으로 설립한 대항노조와만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면 적법한 노조에게 과거 근로조건에 대한 교섭권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7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3일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이행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소 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에버랜드)은 에버랜드노동조합과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가 있는 복수노조 사업장이었다. 회사는 에버랜드노조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에버랜드노조와 지회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쳤고, 에버랜드노조가 교섭대표노조였다.
 
지회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회사에 매년 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지회에게 교섭권이 없다며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지회는 에버랜드노조가 지회 지배ㆍ개입을 위해 만들어진 대항노조라며 자신들에게 교섭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회는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 이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회사의 손을 들었다. 법원은 과거 근로조건은 단체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소급해 준수할 수 없어 회사에게 교섭 의무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회가 교섭을 요구하는 임금, 근로시간, 산업안전보건 등은 단체협약을 체결해도 소급 준수가 불가능한 것들"이라며 "법률관계를 사후적으로 변경해달라는 청구는 노동조합법상 단체협약 유효기간,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 소멸시효 제도와 어긋나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은 에버랜드노조의 설립이 무효임을 인정한 민사 판결과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형사 판결을 근거로 삼았다.
 
지회는 에버랜드노조를 상대로 노조 설립 무효 확인 소송을 청구했고 2022년 대법원에서 설립 무효가 확정됐다. 또한 대법원은 검찰이 삼성그룹 전ㆍ현직 임원 12명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서 에버랜드노조가 부당노동행위 목적으로 설립됐다는 걸 인정해 유죄 판결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심은 "에버랜드노조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목적으로 설립된 대항노조임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회사에게 교섭을 청구할 수 있는 유일노조는 지회뿐이었다"며 "기존 단체협약의 효력 유무와 무관하게 지회는 회사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2심은 1심과 달리 과거 근로조건에 대해 교섭이 불가능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교섭을 통해 기존보다 유리한 단체협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회가 회사에 교섭을 청구할 소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결론이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과거 근로조건에 대한 지회의 교섭 청구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은 적절하다"며 "지회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적법하게 교섭을 요구했으나 대항노조인 에버랜드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교섭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선행 단체협약의 효력 여부와 관계없이 과거 근로조건에 대한 교섭권이 인정된다는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선행 단체협약이 무효일 경우에만 과거 근로조건에 대한 교섭권이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기존 단체협약의 효력과 무관하게 과거 근로조건에 대한 교섭권이 인정된다고 본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이번 사건에서 대항노조인 에버랜드노조와 회사가 맺은 단체협약은 효력이 없어 회사에게 과거 근로조건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했다.
 
지회 측을 대리한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에버랜드노조가 대항노조라는 것이 앞선 민ㆍ형사 판결로 확인된 상황에서 과거 근로조건에 대한 지회의 교섭권이 인정된 것은 당연한 판결"이라며 "대항노조의 선행 단체협약은 당연히 무효이고 회사는 지회와 과거 근로조건에 대해 다시 교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교섭대표노조 제도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현행 교섭대표노조 제도는 회사가 인원수가 많은 대항노조를 이용해 적법한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쉽게 박탈할 수 있는 제도"라며 "교섭대표노조 제도를 폐지하고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면서 근로조건의 통일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교섭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