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고없는 일터,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에서 첫 신호탄이 될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한 법인에 영업이익의 최대 5%의 과징금을 무는 등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중대재해 발생하면 강력 제재 예고
 
고용노동부는 15일 '노동안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경제적 제재를 강화한다.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법인에 대한 과징금을 도입한다. 과징금은 사고가 발생한 법인의 영업이익의 최대 5%까지 나올 수 있고, 하한액은 30억 원이다. 정부는 영업 적자가 나더라도 하한액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사망자 수ㆍ발생 횟수에 따라 차등해 부과한다. 부과된 과징금은 산재 예방에 다시 투자된다.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곳은 공공입찰도 어려워진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동시에 2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최대 2년 간 공공입찰 참여가 제한된다. 이를 연간 3명 이상 사망 시 3년간 제한되는 것으로 바뀌어 공공입찰 참여 제한이 더욱 강력해질 예정이다.
 
투자 시 중대재해 발생 리스크가 반영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한다. 안전보건공시제를 도입해 재해 현황, 재발 방지 대책, 안전보건 관리 체제, 안전 투자 등을 공시하도록 한다.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하고, 이후 300인 이상 사업장에 확대될 방침이다.
 
영업정지 요청 요건은 완화될 전망이다. 현행법은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하면 건설사에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지만, 노동부는 '연간 다수 사망'을 요건에 추가하고 사망자 수에 따라 영업정지 기간을 강화할 예정이다. 현재는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2~5개월 수준이다. 이를 ▲2~5명(3개월) ▲6~9명(4개월) ▲10명 이상(5개월)로 나눠 연간 사망자 수가 증가할수록 영업정지 기간이 늘어난다.
 
등록 말소 또한 추진한다.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2회 받은 후 다시 영업정지 요청 사유가 발생한 건설사는 등록이 말소될 수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을 개정해 등록 말소 사유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동부 장관이 등록 말소를 요청한 경우'를 추가할 예정이다.
 
작업 중지 명령도 확대된다. 노동부 장관이 명령하는 작업 중지 요건에는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의식불명 등 중대한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내외 중대산업사고 우려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 등이 추가된다.
 
산재 예방 위해 전폭 지원…2조723억 투입
 
노동부는 단순히 법인에 제재를 가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예방을 위한 지원 또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산재 예방을 위해 2026년 2조723억 원을 투입해 소규모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재정을 비롯해 인력, 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10인 미만 사업장에 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와 품목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 또한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사고 비중이 높은 외국인 노동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을 위한 예방책도 마련한다. 외국인 노동자 사망 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한 외국인 고용제한 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강화한다. 또한 배달 라이더에게는 유상운송 보험가입, 안전교육 의무화 등을 통해 고령 노동자에게 친환경적인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
 
노동안전 확산을 위해 인프라 또한 확대한다. 지자체에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예방적 감독을 수행할 수 있는 근로감독 권한을 부여한다. 뿐만 아니라 감독과 수사 강화를 위해 2028년까지 산업안전감독관을 3000여 명 증원하는 것이 목표다.
 
노동부는 산재 예방 대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안전한 일터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한다. 위원회에는 노사정 및 전문가를 포함한 15인 내외로 구성될 전망이다. 또한 민관 합동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산재 예방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현장 실태를 상시 모니터링 하는 등 적극적인 예방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고, 산재를 예방하는 것은 노사 모두의 이익"이라며 "산재 예방의 주체로서 노사정이 함께 노력하는 한편 안전관리를 공공기관이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올해를 산재 왕국이라는 오래된 오명을 벗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개최해 노동안전 종합대책의 실천적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안전한 일터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해 민관이 함께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소규모 사업장 대책 미흡"ㆍ사 "엄벌주의 효과 의문"
 
이번 대책에 대해 노사 모두 아쉬움을 표했다. 노동계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대책 등이 미흡하다고 평가했고, 경영계는 엄벌주의가 중대재해 예방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
 
노동계는 소규모 사업장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외국인 근로자 등 산재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산재 예방 대책이 구체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소규모 사업장과 현장 수요 중심으로 재정 지원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10인 미만 사업장에 예방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예산 증액을 제외하면 정부가 반복적으로 추진해 온 재정 지원 사업을 답습하는 수준"이라며 "약 270만 개소 이상 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안전시설과 장비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이번 종합 대책은 산재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다수 과제가 법 개정 사항이라 중장기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고 일부는 미흡하다. 대책이 현장에서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정부와 노동계의 긴밀한 협의와 점검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이주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는 것이 대책으로 제시됐으나 전속성 삭제, 원청 책임 부여 등의 조건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경영계는 사후처벌 강화에만 집중한 대책 내용을 비판했다. 한국의 안전보건관계 법령의 사업주 처벌 수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지만, 산재 감소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한국은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산재 감소 효과는 미미했다"며 "이번 대책과 같이 강력한 엄벌주의 기조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인가에 대해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정부가 산재 예방의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은 처벌 중심의 정책을 탈피하고 기업의 자율적인 안전관리 체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를 요청한다"며 "정부의 산재 예방 정책은 산재 취약 사업장 및 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에 집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