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5 관광 일자리페스타에서 관람객들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직을 시도하는 경력자 10명 중 3명은 다시 신입 자리에 지원하는 '중고신입'인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중고신입 확대가 청년 평생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턴 채용을 확대하고 대학 교육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줄어드는 채용시장, 늘어나는 중고신입
 
채용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기업이 중고신입을 선호하면서 중고신입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 9월 매출액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21곳 중 62.8％는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57.5％)보다 5.3％ 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다.
 
채용시장이 중고신입을 선호하면서, 중고신입 지원자 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4일 채용 플랫폼 캐치가 최근 3년간 이직을 시도한 경력자 8371명의 지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약 26%(2193명)가 신입 자리에 채용 지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정모 목원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부분의 기업은 일반 신입보다 중고신입을 선호하는 분위기인데, 이같은 중고신입 선호 현상은 신입을 육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라며 "또한 직업 시장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상대적으로 경력이 적더라도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맞춤형 인재를 고용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직장인들 또한 같이 일하는 동료로 '중고신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잡플래닛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일반 신입보다 중고신입 후배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93.4%에 달했다. '소통이 수월할 것 같아서(38%)'와 '업무 스킬이 풍부할 것 같아서(28%)'가 주요한 이유였다.
 
'경력 있지만 신입', 평생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그러나 중고신입을 선호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고신입 선호 현상과 중고신입 확대가 국가 생산성 저하와 청년의 평생소득 감소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발간한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을 주제로 한 이슈노트에 따르면 중고신입 채용 문화로 인해 사회 초년생이 30년 동안 경제활동에 참여한다고 가정할 때, 생애 총 취업 기간은 21.7년에서 19.7년으로 2년 줄었다. 중고신입 채용이 국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회 초년생의 평생 소득 기대치도 떨어졌다.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기대하는 평생 소득의 현재 가치는 3억9000만 원에서 3억4000만 원으로 약 13% 줄었다. 생애 총취업 기간과 평생 소득 기대치가 떨어진 이유는 경력직과 중고신입 고용이 늘어난 탓이라는 분석이다.
 
'진짜' 신입이 취업하기 어려워지는 현실도 고민거리다. 취업 경험이 없는 비경력자(1.4%)의 취업 확률은 경력자(2.7%)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은행은 "기업의 중고신입 선호 현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도록 막는 요인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신입을 육성하는 것도 기업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중고신입 선호는 곧 신입사원 양성과 육성 책임을 기업이 벗어던지겠다는 뜻"이라며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전력만을 찾게 되면 인턴십 과열과 대학 교육 왜곡을 불러올 수 있고 결국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턴 채용 확대ㆍ대학교육 전문화 등 다방면 접근해야
 
중고신입 선호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인턴 채용 확대, 대학교육 전문화 등 다방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고신입 선호 현상을 사회 변화 차원에서 포용하되,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 모두가 일경험 기회 확대와 직업훈련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교수는 "첫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주거비와 기대소득 간 불균형, 직무급제 논란 등 사회 구조적 요인이 청년들의 경력 이동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며 "중고신입 현상을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인턴십을 통한 직무 이해도 제고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공공기관 청년인턴과 민간기업 인턴십 기회를 확대해 청년들이 최소 1~2년은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런 직무 경험이 조직 적응력과 장기근속 가능성을 높일일 수 있다. 특히 민간기업 인턴십 기회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차원의 인턴십 제공이 필요하다. 정부 주도의 일경험 프로그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의 인턴십과 직무 체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며 "특히 중소기업의 복리후생, 근무환경을 알릴 수 있는 '행복한 일터 인증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고용 브랜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중고신입 수요 증가는 단순히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와 교육체계 전반의 문제"라며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직업훈련의 질을 높이고, 청년층이 다양한 기업에서 장기적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공지능(AI)이 직무 전반에 쓰이면서 구직난이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대학 교육을 통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 교육을 통해 중고신입이 아니어도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기업이 AI로 인해 인력을 줄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구직자들은 AI로 대체할 수 없는 비판적 사고력과 상상력을 기르고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건 AI가 해낼 수 없는 영역"이라며 "이런 역량을 갖춘 인재라면 기업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중고신입 문제 역시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권 교수는 "삼성은 여전히 대규모 공채를 유지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있지만, 신입사원 육성을 사회적 책임으로 보고 우수 인재 양성을 이어가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며 "기업이 신입 육성의 책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경쟁력이 된다. 기업들이 중고신입을 채용해 육성의 책무를 외면하는 풍토 또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