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LO협회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사)한국ILO협회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동희 기자 dhlee@)
 
디지털 전환, 플랫폼 노동 확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증가 등 급격한 노동시장의 변화로 국제노동기준은 고용관계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 대상으로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한국도 보호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ILO협회는 전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한국ILO협회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한국에서의 ILO협약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 교수는 현재 한국의 '일하는 사람 보호'가 어디까지 왔는지, 국제노동기준과 비교했을 때 한계는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노동시장이 격변하면서 프리랜서, 플랫폼 종사자, 긱워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일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이들이 기존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 고용 불안, 노동권 배제 등 위험에 노출되자 국제노동기구(ILO)는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ILO는 1998년 '노동 기본원칙과 권리 선언' 이후 각국 회원국이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핵심 노동기준의 권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박 교수는 "이는 전통적 근로계약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 등 경제 활동의 다양한 주체 역시 노동권, 사회보장 및 안전망의 보호 대상이라고 선언한 것"이라며 "ILO가 보편적ㆍ지위 중립적(Statue-neutral) 보호의 국제 규범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ILO는 한발 더 나아가 2022년엔 기본권 선언을 개정해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기본권에 추가했다.
 
한국 역시 급변하는 노동시장에 발맞춰 보호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움직임은 크게 사법적ㆍ입법적ㆍ정책적 세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법 밖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ㆍ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례가 쌓이고 있다. 2006년 이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할 때 실질적 종속성,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ㆍ감독 여부 등 '사실 우선 원칙'이 사법적으로 확립됐다. 최근 판례에서는 대학입시 학원강사, 타다 드라이버, 페이닥터, 아이돌보미 등 다양한 일하는 사람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입법적으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산재보헙법 적용, 노무제공자에 대한 고용ㆍ산재보험법 적용이 이루어졌다. 최근엔 소위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ㆍ3조가 개정되면서 사용자 범위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됐다.
 
정책적인 움직임은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는 '일하는 사람 보호를 위한 노동기본법(일터 기본법)' 제정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고용형태나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의 노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노동자 추정 제도' 도입도 국정과제에 담겼다.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한다면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자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다. 근로자임에도 근로자가 아니라고 오분류된 근로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정부는 ILO 제190호 괴롭힘 방지 협약도 비준하겠다고 밝혔다. 협약 비준 추진을 통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된 폭력ㆍ괴롭힘 금지 규정을 모든 일하는 사람으로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박 교수는 "ILO와 한국은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 보장'이라는 대원칙에서 보호 범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며 "ILO는 협약ㆍ권고라는 국제규범의 형성 및 집행력 강화를 바탕으로 고용상 지위를 불문한 지위 중립적(status-neutral) 보호를 확립하고 있으며, 한국은 특례 제도 도입, 판례 확대, 개별 법률의 부분적 개정 등 단계적ㆍ사례별 대응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진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동향은 모두 ILO가 제시하는 보편적 권리보장과 지위 중립적 보호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지만, 보호 대상이 여전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특례적 노무제공자, 플랫폼 노동자 등 이원구조적 단계에 머물고 있고, 개별 특례의 축적 또는 판례 의존성이 강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한국이 법제도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근로자와 비근로자의 경계를 넘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ILO가 요구하는 국제적 수준의 핵심 노동권과 사회보장을 지위 중립적ㆍ보편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통합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 특례 확대나 사법적 판례 축적을 넘어서, 헌법상 노동권의 실질적 구현을 목표로 포괄적인 일하는 사람의 노동기본법 입법과 현장 집행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