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현장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조합법 2조 시행령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이재헌 기자 jh59@)
 
원청 사용자성을 다투고 있는 하청 노조들이 '원하청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규정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 시행령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시행령이 제시한 교섭단위 분리가 사측의 교섭 지연 전략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노동부가 원하청의 자율 교섭을 지원하고 노란봉투법의 안착을 위한 추가적인 노동조합법 개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현장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조합법 2조 시행령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란봉투법 시행령을 평가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열렸다.
 
앞서 지난달 노동부는 '개정 노동조합법 하위 법령 브리핑'을 열고 노란봉투법 시행령 입법을 예고했다.
 
시행령은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제시하고 예외적으로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시행령이 규정하는 교섭단위 분리 기준은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 ▲계약 형태ㆍ고용 형태 ▲노동조합 조직 범위 ▲기존 교섭 관행 ▲이해관계 공통성 및 이익대표 적절성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당사자의 의사다. 교섭단위 분리가 이루어지면 분리 단위별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노조를 확정한다.
 
하청 노조들 "시행령이 하청 교섭 발목 잡을 것"
 
하청 노조들은 원하청 간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정한 시행령이 교섭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행령이 교섭단위 분리를 규정하고 있지만 하청 노조가 교섭단위 분리 절차에 돌입했다는 이유로 원청이 교섭을 미루며 시간을 끌 것이라는 우려다.
 
강인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조선하청지회가 시행령에 따라 원청과 교섭하려면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해야 하지만 이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로 분리 신청 자체가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범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도 "노동부는 교섭단위 분리를 이용하면 된다고 설명하지만 분리 신청 결과가 나올 때가지 교섭이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조합법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하나의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를 전제로 만든 제도"라며 "이 제도를 원하청 노조에게 적용하는 시행령은 교섭 절차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노동조합법 개정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청 노조가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하더라도 제한적으로만 인정돼 교섭의 어려움이 클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신하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대법원은 교섭단위 분리가 엄격한 요건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소극설에 따르고 있다"며 "교섭단위 분리가 생각처럼 쉽게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하청 교섭창구 단일화가 원칙이 되면 하청 노조의 교섭에 대한 절차적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측이 어용노조를 활용해 하청의 교섭을 막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 부지회장은 "원청 노조가 어용노조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빌미로 하청 노조의 교섭을 방해할 수 있다"며 "시행령이 확정돼 원하청 교섭창구 단일화가 원칙이 되면 하청 노조는 원청 노조가 어용인지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도 "시행령이 확정되면 회사가 어용노조를 설립하려는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이로 인해 현장의 노노 갈등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시행령ㆍ교섭창구 단일화' 폐기 주장
 
하청 노조들은 노동부의 노란봉투법 시행령이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수석부지회장은 "시행령은 지난 7월 현대제철의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법원 판결보다 크게 후퇴한 내용"이라며 "판결이 하청 노조 간 교섭창구 단일화만 거치면 된다고 보고 있는데 노동부가 시행령으로 원하청 노조 간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도 "법원이 확인한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노동부가 다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밑에 묶어두려고 하고 있다"며 "노동자의 교섭권이 후퇴하지 않도록 시행령의 내용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부지회장도 "노동부가 시행령을 통해 원청이 하청 노조와의 교섭을 회피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줬다"며 "하청 노조 입장에서는 판결보다 퇴보한 시행령의 폐기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 부지회장은 시행령 폐기에서 나아가 노동조합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까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부지회장은 "하청 노조가 실질적인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노동조합법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며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인 노동3권을 막고 있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를 위해 노동계가 투쟁에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노동부의 후속 조치가 법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경우 노동부가 역사적 책임을 져야할 상황까지 올 수 있다"며 "시행령에 대한 상당한 우려들이 나오고 있는 만큼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율 교섭 지원ㆍ노조법 추가 개정' 목소리도
 
전문가들은 노동부가 노사 간 자율 교섭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위원장은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노동부가 원하청 노사의 자율 교섭 관행을 창출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노조와 정부는 원하청 교섭 구조를 유형화하고 모범 사례를 선제적으로 창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사측이 사용자성 부정을 이유로 교섭에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며 교섭을 해태할 수 있다"며 "노동부는 사측의 교섭 해태에 대한 신속하고 강력한 행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도 "노동부는 노란봉투법 시행일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는 하청 노조들이 실질적으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지원해야 한다"며 "노동부는 하청 노조와 원청의 교섭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추가적인 노동조합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 교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하나의 사업장 내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노동조합법이 한 번 더 개정될 필요가 있다"며 "법 개정을 통해 원하청 관계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적용되지 않음을 명시하거나 하청 노조 간 교섭창구 단일화만 거치면 된다고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