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5년 7월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 시행으로 인한 기업 현장의 혼란을 덜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침(안)'을 발표했다.
 
지침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실질적 지배력' 개념의 모호성을 해결하기 위해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핵심 판단기준으로 제시했지만, 실질적 지배력의 모호성을 완전히 해결하진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으론, 애초 법 자체가 가진 불분명성으로 인해 노동부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기 어려웠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결국 해석지침이 나온 이후에도 현장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실질적 지배력, '구조적 통제'로 판단
 
26일 노동부는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침(안)'을 행정예고했다. 이번 지침은 2026년 3월 10일 시행되는 개정 노동조합법의 현장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제도 안착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법 개정으로 사용자 개념이 확대되면서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그 범위에 있어서 사용자로 인정된다. 현장에선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혼란이 큰 상황이었다.
 
이에 지침은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실질적 지배력 판단을 위한 핵심 판단기준으로 제시했다.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는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의 결정을 구조적으로 제약해 하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을 본질적ㆍ지속적으로 제한하는 경우'에 인정된다.
 
노동부는 "원하청 생산라인이 단계별로 밀접하게 연계돼 있거나 작업공정이 상호의존적인 경우 구조적 통제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하청이 독립된 설비를 갖추고 제품이나 부품을 생산하는 통상적인 물량 도급 관계에서는 구조적 통제가 인정될 가능성이 적다"고 설명했다.
 
이때 도급계약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적 통제가 인정되는 건 아니다. 도급계약 관계에서 원청이 도급 목적 달성을 위해 하청에 납기ㆍ품질을 요구하거나 거래조건을 협상하는 등 계약이행과 관련해 요구하거나 협의ㆍ조정하는 건 구조적 통제로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하청의 사업이 원청의 사업에 편입된 정도 ▲경제적 종속성 등은 앞서 제시한 구조적 통제의 보완적 지표로 고려한다. 다만, 이 징표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용자의 실질적ㆍ구체적 지배를 쉽게 부정해선 안 된다는 단서를 붙였다.
 
근로조건별 사용자성 인정 예시도 담아
 
지침은 현장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노동안전 △작업환경 △복리후생 △근로시간 △임금ㆍ수당 등 근로조건별 사용자성 고려 요소에 대한 예시도 함께 제시했다.
 
노동안전은 원청이 작업공정ㆍ안전절차 등 전반적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지배ㆍ통제하는 경우 이에 대한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원청 근로자와 하청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고, 시설ㆍ장비 등 관리의 책임이 원청에 있어 하청이 단독으로 위험요인을 제거하거나 안전설비를 설치하는 등의 구조적 개선이 어려운 경우엔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
 
작업환경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가 사용하는 사무공간ㆍ창고ㆍ휴게공간 사용 가능 구역, 이용시간, 사용 인원 상한 등 구체적인 기준을 정했을 때 하청이 그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다면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
 
통근버스, 휴게시설, 사내복지시설, 성과급, 학자금 등 복리후생의 경우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이용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거나, 사용 기준 설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에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시간은 원청이 생산계획, 작업일정, 근로시간, 휴게시간, 연장근로 등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거나 승인권을 행사하는 경우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이 높다.
 
임금ㆍ수당은 원청이 투입 근로자의 수, 근로시간 등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임금인상률을 직접 제시하는 등 하청의 재량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엔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
 
노동쟁의 대상도 확대…'사업경영상 결정' 판단기준 나와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한 것도 이번 개정 법의 핵심 중 하나다. 개정 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노동쟁의 대상에 새롭게 포함했다. 이로 인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침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은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ㆍ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지침에 따르면 기업 합병, 분할, 양도 등 사업경영상의 결정 자체만으로는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ㆍ구체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반대로,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ㆍ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은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따라 '고용조정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엔 노조가 고용보장 요구 등에 관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개정 법은 '근로자 지위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 지위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는 노동관계 당사자 간 고용형태 변경, 징계, 승진 등에 관한 원칙ㆍ기준ㆍ절차의 설정ㆍ변경 등을 둘러싼 분쟁상태를 말한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의 신설 또는 기준 변경 요구 △징계ㆍ승진 제도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기준 마련 및 변경 요구 △정년 연장과 관련된 기준 설정 요구 등 이익분쟁이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된다.
 
전문가들 "지침으론 한계…현장 혼란 지속"
 
이번 지침은 지난 8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 법이 통과하고 약 4개월 만에 나온 결과물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침으로 현장의 혼란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법률 자체가 갖고 있는 해석상 모호성은 애초 노동부가 다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지침으로 현장에서의 모호성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노동부에 허용된 운신의 폭 안에서는 현장 노사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현장의 숙제로 남았다. 지침이 실질적 지배력 판단을 위해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지만, 이 역시 모호한 개념을 덧붙인 거라 해석상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지침이 제시한 구조적 통제라는 개념은 법 규정에 없는 표현인데, 이마저도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에 원청 사용자성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노동부가 사용자성 예시를 들긴 했지만, 예시로 들기 편한 상황만 가정한 것이라서 큰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하기 위해 구조적 통제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은 당초 노란봉투법 취지에 일정 부분 부합한다고 본다"면서도 "그렇다고 모호성을 다 해소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노동부가 어느 정도 범위를 축소한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간 하급심에선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이 여럿 나왔다.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할 때 활용될 ▲하청의 사업이 원청의 사업에 편입된 정도 ▲경제적 종속성 등도 법원 판결에서 가져온 지표들이다. 그런데 지침은 이 지표들을 구조적 통제에 대한 '보완적' 지표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김용문 변호사는 "그간 원청 사용자성 판결에선 무엇이 핵심적인 지표고, 보완적인 지표인지 구별해 규정해 놓지 않았었는데, 노동부가 지침에서 보완적 지표라고 정한 것"이라며 "그간 판결에 따르면 원청 사업에 편입된 정도는 상당히 중요한 지표로 해석될 수 있는데 지침에선 보완적 지표가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김상민 변호사는 "원청 사업에 편입된 정도와 경제적 종속성은 사실 광범위한 내용이어서 노동부의 이번 해석처럼 보는 것이 맞을 수 있지만, 경제적 종속성의 경우 사용자성 판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부분을 보완적 지표로 정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원청 사업에 편입된 정도와 경제적 종속성을 보완적 지표로 낮춰 버리면 원청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노동부의 지침대로라면 원청 사용자성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진정도급계약이 얼마 없을 거란 우려도 나왔다.
 
송강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도급계약을 체결하면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외형을 갖출 수밖에 없는데, 이를 실질적 지배력 판단기준으로 삼게 되면 원청 사용자성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진정도급계약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하청이 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 못하는 노동안전, 복리후생 같은 걸 원청이 어느 정도 책임지고 챙겨줘야 한다고 권장해 왔는데, 이번 지침에서 노동안전, 복리후생을 사용자성 고려요소 예시로 언급해버려서 이제 원청이 조금도 관여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노동안전과 복리후생 정도는 원청이 개입해도 진정도급을 부정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 거라고 걱정을 덜어줬어야 했는데, 지침은 이를 원청 사용자성 고려요소로 삼아버렸다"고 덧붙였다.
 
직접고용 쟁점, 지침에서 왜 빠졌나
 
노동부가 이번 지침에서 제대로 매듭 짓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즉 직접고용이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근로조건(교섭의제)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지침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의 신설 또는 기준 변경(직접고용) 요구가 노동쟁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노동쟁의는 교섭을 전제로 한다. 직접고용이 노동쟁의 대상이 된다는 건 직접고용이 교섭의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미 현장에선 쟁점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이지만, 노동부는 이에 대한 답을 끝내 지침에 담지 않았다.
 
김용문 변호사는 "지침이 직접고용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교섭의제 대상이 되는지는 나중에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나와야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직접고용 여부는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 입장에서는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하고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청 노조가 교섭의제로 요구해서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지침에 대한 행정예고는 26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20일간 이루어진다. 노동부는 행정예고 기간 동안 노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침의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권창준 노동부 차관은 "개정 노동조합법은 원하청의 상생 성장을 위해 대화 자체가 불법인 상황을 해소하고 불법파업과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그리고 극한투쟁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서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번에 예고된 해석지침(안)은 이러한 입법 취지를 반영하려는 것으로 과거와 달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예고기간 중 다양한 현장 의견에 귀 기울이고 토론 등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개정 법 시행까지 두 달여 남은 상황에서 해석지침이 최종 확정되더라도 현장의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혼란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노사가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노사는 워낙 스스로 만드는 룰에 약해서 남들이 만들어 준 룰 위에서만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침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제 현장은 혼란이 있다고 징징거릴 게 아니라 노사가 함께 스스로 룰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며 "잘 활용한다면 노사 모두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희ㆍ이재헌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