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5 18:25:25 수정 : 2019-04-01 09:52:54

[현장] 산재 생존자 “내 탓인 것 같아” 죄책감… 산재 트라우마 관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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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vol.335]

▲지난 2017년 5월 2일 오전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이 넘어져 현장작업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사고를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한 근로자들은 산재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크레인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피하라고 소리 질렀는데, 그가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 와이어가 끊어질 때 몸이 잘리는 것을 봤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숙소에 가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정신력으로 이겨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만사에 의욕이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망사고 당시 목격자가 밝힌 내용이다. 한 해 수십 건의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지만, 그때마다 사고처리에 급급한 나머지 노동자의 심리적 부분은 간과되고 만다. 산재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물론, 목격자, 사고 수습자, 간접경험자 모두 사고 이전의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산재 트라우마는 산업재해를 경험한 노동자가 겪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의미한다. 주요 증상 및 특징으로는 ▲사고 장면의 반복적 회상 ▲사고 관련 상황 회피 ▲신경 각성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ㆍ수면장애ㆍ예민한 반응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공황장애ㆍ발작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 주의집중의 어려움은 2차 산재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산재 트라우마 치료는 사고 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산재 트라우마 관리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피해 노동자들의 생계 및 고용 문제와 크게 관련됐기 때문이다. 양선희 대구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은 지난 3월 7일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피해자들이 사고 이후 병가를 받지만, 이후 출근하지 못하거나 출근을 하다가도 곧 퇴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산재를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한 노동자는 안전에 대한 불안과 갑작스런 주변인의 죽음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으로 사업장 복귀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한편, 추후 회사 상황 및 업무에 대한 염려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트라우마, 사측 적극적 협조가 KEY
산재 트라우마는 정신적 충격을 일으킨 사고 현장이 직장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트라우마와 다르다. 피해자들은 매일 출근을 통해 사고 현장에 재노출되고, 재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산재 트라우마 특성상 회사의 협조나 조율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산재 트라우마와 직무 스트레스 해결에 대한 회사의 긍정적 태도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대개 산재가 발상한 사업장은 사고 은폐 및 축소를 시도하고, 사고처리와 공정재개에만 집중한다. 직원들의 심리적 충격에 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인식이 부족한 관리자는 간접 경험 피해자에 대해 사건 발생 당시 없었는데 뭐가 힘드냐고 말하기도 한다. 상담받는 근로자를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 장경희씨는 "얼마 전 산재 트라우마와 관련해 안전보건공단이 소집한 회의에 회사 측 관리자 5명이 나왔다. 거기서 한다는 말이 '노동자는 쓰레기다, 거짓말쟁이다, 늘 쉬려고만 한다'였다"며 "조사 결과 트라우마 치료 대상이 11명이었는데, 그중 6명이 가짜라고 주장했다. 사측의 기본적 인식의 현주소다"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회사의 낙인을 우려해 심리적 트라우마 상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이는 치료 자체를 어렵게 한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정최경희 센터장은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누군가 트라우마 때문에 작업을 못 하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회사는 해당 근로자를 해고할 것"이라며 '트라우마 숨기기' 원인을 꼬집었다.

양 부센터장은 트라우마에 대한 부정적인 환경 조성이 사측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 부센터장은 "사고처리와 공정재개에 급급해 직원들의 심리적 충격에 대해 가볍게 여기는 것은 더욱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고, 신뢰가 무너져 장기적인 부분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측의 사건 은폐-축소 움직임이 산재 관리 시스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에서 상담을 담당하는 이정호 실장은 "사고가 발생하면 산재를 신청해서 산재 요양을 받도록 흘러가야 하는데, 사업장이 계속 은폐를 시도하면서 적절한 치료나 대처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가 (사건이) 크게 드러나게 되면 집중적인 근로감독을 받게 되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업주가 사고 발생을 더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및 위험 사업장 등 근로환경에 상시적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강력한 개입 필요
산재 트라우마를 관리하는 담당자들은 사측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로 지정된 대구근로자건강센터에 따르면 고용부나 안전보건공단에서 트라우마 상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상담을 연계하는 경우 사업주나 회사 관리자가 적극 협조하고, 상담 후 트라우마 관리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반대로 고용부나 공단에서 적극적으로 상담을 연계하지 않으면 사업주나 회사 관리자가 트라우마 상담이 필요하지 않다며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로 정부는 지난 2017년 산재 트라우마 관련 매뉴얼을 제작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업장 규모별로 나누어 상담을 제공하도록 한 매뉴얼은 현장에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두리누리의 장경희씨는 "산재 트라우마 관리 매뉴얼을 만든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모든 사업장에 적용 가능한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에 따르면 사업장 중에서도 1차 상담을 위한 설문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곳도 상당수 존재한다. 또한 같은 재해라고 해도 전후 사정과, 사업장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매뉴얼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사고 후 처리만이 아닌, 산재 예방을 위해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매뉴얼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측의 협조를 강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감정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은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지만, 산재 트라우마는 아직 권고에 미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용주를 강제해야 해결의 단초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정최경희 센터장은 "직업적 트라우마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 발생 예방"이라며 "산재 예방이나 관리에 사업주가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적인 이점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업주를 경제적 요인으로 유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업주가 산재 예방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것은 규제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최경희 센터장은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관련해 규제가 많이 풀어져 있다"며 "특히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의 의무 중 많은 부분이 면제돼 있는데, 이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하는 서울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상담을 담당하는 이정호 실장과의 인터뷰.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이정호 실장이 근로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도 산재 트라우마 상담을 다루나.
-트라우마 사건을 많이 다루는 건 아니다. 대구근로자건강센터가 직업적 트라우마 상담센터다. 대구 센터에서 의뢰가 있으면 해당 사건 트라우마 상담을 진행한다. 지난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때는 대구 센터에서 지원을 요청해서 상담 지원을 나갔다.
 
태안 화력발전소 근로자들의 심리상태는 어떤가.
-센터에서 상담했던 근로자들은 직접 사고를 목격하거나, 사고처리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심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런 사고가 나에게도 생길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또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유독 컸다. 사고가 발생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무력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다.
일부는 상담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부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서 상담하고 조사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또한 마음 밑에 자리한 사고로 인한 죄책감과 불안감을 꺼내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분들의 상처가 더 오래갈 수 있다.
 
산재 사망사고 이외의 다른 트라우마 상담도 있나.
-직장 내 성폭력ㆍ성희롱, 과로사로 인한 자살도 근로자들에게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서울센터는 주로 이러한 사건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
-과로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가족을 상담한 적이 있다. 상담자의 동생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동생이 과로로 고통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회사 측의 부당한 압력, 지나친 과로 요구 등으로 인해 정상적이지 않은 심리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을 밝히려 노력했다. 상담사로서 직접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었지만, 유족 측이 지치지 않도록, 혹은 힘을 내서 지속적으로 활동해나갈 수 있도록 상담을 계속했다.
유족은 노조 및 시민단체와 연계해서 진실을 밝혀 나갔다. 결국 유족들이 느끼기에는 미비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사망 근로자의 산재도 인정받고, 사측의 사과도 받았다.
트라우마 상담이라는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활동이지만, 상담을 받는 분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데 한발 한발 함께했다는 게 보람됐다.
 
상담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산재 트라우마나 중대 재해에 따른 심리적 충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재해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측도 그렇고 근로자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목격하고도 괴롭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
사측의 협조가 부족한 것도 있다. 특히 과로사라고 하면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요구받고, 이에 따른 심리적 어려움을 밝혀내야 하는데, 사측에서 근무기록이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내는데 협조적이지 않다. 직장 내에서 사고가 생기면 개인이 모든 걸 증명해 내야 하는 게 여전히 불합리한 실정이다. 직장 내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지원을 받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생기면 좋겠다. 개인이 모든 걸 밝혀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 직장 내 성폭행도 이슈가 되고 있는데.
-직장 내 성폭행과 관련해서는 개인 상담으로서의 접근과 직무 환경 개선의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 차원에서 정서적인 지지를 하면서 필요시에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노무사와 상담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근로자가 소송에 나서서 법에 저촉된 행위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 지난한 과정에 힘들어하는 근로자도 있다.
센터는 피해 근로자의 바람은 어떤 것인지, 본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지, 가능한 여러 대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노무사와의 연결은 어떻게 이뤄지나.
-센터와 연계된 기관들이 있다. 서울시노동권익센터, 여성분의 경우 가까이에 있는 직장맘센터에 연계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사안별로 원하는 방향에 따라서 연계기관의 노무사와 상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직장맘센터는 자녀가 있지 않은 여성도 이용할 수 있다.
 
트라우마 관리에 필요한 지원은.
-무엇보다 인식개선이다. 신체 건강에 대해서는 당연히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치료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적인 건강과 관련해서 정신의학과를 방문하거나 상담받는 것은 '약하다' 내지는 '다른 사람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정신과나 상담센터를 이용하는 비율도 낮다. 정신건강상의 어려움은 신체적인 고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정신건강상의 어려움이 있을 때 병가를 받거나, 치료할 수 있는 지원책이 강구되면 좋겠다.
지역 차원에서 정신건강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 혹은 정신건강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관을 많이 만들어 줬으면 한다. 현재도 구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구 내 심리센터를 가지고 있는 곳이 있지만, 대기 인원이 매우 많은 것으로 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바로 상담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데, 대기를 하고 한 달 후에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제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을 제공하는 기관과 전문상담사를 확충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근로환경에 대한 상시적인 감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근로감독관 수가 얼마 안 된다고 들었다. 전국 사업장이 수백만개인데, 이 모두를 감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근로감독을 하다가 과로사로 돌아가시는 분도 많다고 들었다. 근로감독관을 많이 뽑고, 근로감독이 원활히 이뤄져서 사업장 내 안전보건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터지는 게 아니라, 평소에 잘 관리해서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로감독이 없더라도 사업장 운영이 잘 돼야 마땅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근로감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인력이 확충되면 좋겠다.
 


임고은 기자 goi@elabor.co.kr 
 
임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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