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투자증권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7월, 이미 대법원이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서울고법이 기존 판단대로 정리해고가 적법하다고 재차 판결한 점에서 흔치 않은 판결로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재판장 한창훈)는 지난 4월 27일, 한화투자증권 해고 노동자 윤 모씨등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항소를 기각하고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며 한화투자증권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2012년 경영악화로 신규채용 축소, 희망퇴직 실시 등을 통해 인력 축소 작업을 시작했다. 2013년 후반에는 결국 대규모 감원을 위한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노사협의회를 통해 최종 34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해 통보했다. 이 중 27명은 희망퇴직을 신청했지만, 나머지 7명은 정리해고 수순을 밟게 됐다.

이에 정리해고 대상자인 윤 모씨 등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고, 노동위원회도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회사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회사는 정리해고 전후로 정규직 55명, 계약직 59명, 임원 6명을 신규 채용하고 승진인사를 단행했으며, 일부 부서에 대해서는 경영 성과의 대부분을 성과금으로 지급했다"며 "또 대규모 감원에도 불구하고 교육비 예산은 유지해 결과적으로 직원 1인당 교육비 지출 규모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즉, 회사가 경영상 긴박한 정리해고 필요성이 있었는지,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은 정리해고가 부득이 필요했는지 좀 더 자세히 심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해 원심 판결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에서 나온 파기 환송이기에 결국 노동자 측의 승소 취지로 결론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자료: 한화투자증권 해고노동자 제공

 

서울고법, 대법원 판단 반박... "신규채용은 대체불가능한 변호사나 입사 유예자들일 뿐"

서울고법은 예상과 달리 이번 '환송후 판결'에서 대법원이 설시한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를 보강 제시하며 조목조목 반박해 눈길을 끈다. 먼저 신규채용이 늘어난 것은 "변호사나 지방근무직원이나, 이미 입사가 예정됐던 유예자들이므로 대체가 불가능한 인력들"이라고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또 성과급 지급에 대해서도 "회사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고 그룹차원에서 계열사 경영평가에 따라 매년 1회 지급되는 금원"이라며 "우수인재 이탈 방지, 정리해고로 침체된 분위기 일신을 위해 예년보다 유리한 조건의 성과급 지급은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1인당 교육비 증가에 대해서도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업 경쟁력 제고와 역량강화가 필수적이고, 교육비를 유지한 것만으로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외에도 '환송전 판단'에서는 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추가 판단을 내려 눈길을 끈다.

이 사건 해고노동자인 윤 씨 등은 지난 재판 과정에서 회사가 ▲정리해고가 발생한 2014년에 약 60억원을 배당한 점, ▲리프레시 휴가제도를 도입해 계열사 상품권을 구매하거나, ▲정리해고 직후 취업규칙을 변경해 (연차휴가 외의 추가 휴가인) 정기휴가를 폐지하고, 폐지된 정기휴가에 대해서 보상비 31억을 직원들에게 한번에 지급한 사정,▲ 경영상 위기상황이라는 2012~2013년에 자기 주식을 취득한 점을 근거로 "정리해고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해고회피 노력에 대해서도 윤씨 등은 "회사가 전보배치를 제안하거나 기회를 부여한 바도 없고,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단축이나 일시휴직, 순환휴직을 실시하지도 않았다"며 "애초에 약속한 감원 목표를 넘겼다는 점도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은 증거"라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경영상황 악화 막기 위한 자구책 두고 '긴박한 경영상 위기' 없다고 판단할 수 없어"

하지만 서울고법 재판부는 회사의 재무제표에 따를 경우 2012년부터 2년동안 누적 적자가 1,000억원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했다.

재판부는 "(한화투자증권은) 2년동안 재무제표 기준으로 다른 증권사에 비해 영업이익경비율은 높고, 자기자본이익률은 매우 낮다"고 지적해 경영상 위기가 있었다며 "2014년에 60억을 배당한 것은 정리해고 이후 주주총회 결의에 기한 것이므로, 경영상황 호전과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외에도 ▲리프레시 휴가제도 자체가 역시 결과적으로 연차휴가보상금 절감을 위해 도입된 제도였던 점, ▲정기휴가제도 폐지는 결국 연차휴가 사용을 촉진해 연차휴가 미사용 보상금 지급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고, 보상금 자체도 근로자들로부터 정기휴가 폐지 동의를 얻기 위해 쓴 비용으로 보이는 점 ▲자기 주식 취득은 계속된 주식가치 하락으로 인한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애초 감원목표 인원수를 초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구조조정 감원은) 계약직 직원이나 개인사정으로 퇴사한 인원을 제외하고, 인위적인 인력구조조정 실시의 의한 감원만을 의미한다"는 취지로 판시해 해고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단 반박한 '놀라운' 판결? 해고근로자 "상식을 벗어난 판결" 허탈감 드러내

이번 사건은 흔히 찾아보기는 어려운 판결로 보인다. 국내 대형 로펌의 노동팀 파트너로 재직 중인 이 모 변호사는 "놀라운 판결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재차 파기환송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는 "파기환송된 고등법원 판단이 재차 파기환송된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맡은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역시 "파기환송 되더라도 대법원이 판단하지 않은 쟁점을 새롭게 판단해서 같은 결론을 낸 원심 판결은 있지만, 대법원이 이미 판단한 쟁점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견해를 유지한 2심 판결문은 드물다"며 "이미 상고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고 근로자들은 이번 판결문을 들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 소송제기 당시에는 7명이었으나 1, 2심 패소로 5명이 중도 포기해 현재 윤씨를 포함해 총 2명만 남은 상황이다.

윤씨는 "재차 대법원에 상고를 했을 때 심리불속행 기각이 되거나 자칫 대법원 마저도 외면할까 두렵다"며 "구조조정이란 정규직 직원만을 대상으로 한다거나, 금감원 공시자료를 무시하고 기업쪽 단체인 금투협의 인력현황자료만을 인정하는 등 대법에서 판단하지 않은 모든 부분에서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친기업적이고 해괴한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곽용희 기자 kyh@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