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0 16:53:56 수정 : 2019-08-21 10:17:05

CEO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수평적 조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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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호 vol.339]


수평적 조직문화로의 탈바꿈


올해 국내 기업의 경영진이 가장 많이 언급한 화두는 놀랍게도 혁신이나 성장이 아닌 조직문화 개선이었다. 과거 국내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CEO들은 조직문화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수 CEO들은 조직문화 개선이 기업의 이익과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수직적인 문화를 토대로 속도감 있는 명령과 지시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조직이 움직여야 혁신할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경영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국내 대기업을 시작으로 조직문화 탈바꿈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00년 CJ그룹이'님' 호칭을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사용했을 때 대다수 기업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직급, 직책을 중심으로 수직적 서열을 강조한 호칭은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T 기업 이외에 아모레퍼시픽, SK텔레콤 등 대기업으로도 확대됐다. 급기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서도 수평적 호칭을 실행하고 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의 피라미드식 직급을 대폭 줄이고 의사소통 활성화를 위해 호칭을 파괴하는 등의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 노력이 기업의 업종, 성장 단계와 무관하게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과거 조직이론 연구는 산업 유형에 따라 조직의 관리 및 의사소통 방식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엔터테인먼트⋅광고⋅패션 등의 분야는 트렌드 파악이 중요하고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빠르기에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중요하지만, 기계⋅전자⋅조선 등 대규모 투자와 R&D를 기반으로 하는 하드웨어 분야는 경영진의 지시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강조하는 수직적 조직문화가 성과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었다. 불변의 사실로 간주되던 연구 결과가 요즘 들어 급격히 파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평적 조직문화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최근 조직이론 연구에서는 산업 유형과 관계없이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이유는 환경의 불확실성이 과거와 달리 대폭 커졌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산업 유형에 따라 환경의 변화 속도는 각기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업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경쟁 환경도 국내에서 글로벌로 대폭 확대됨에 따라 경영자 한 명의 생각이 아닌 다수의 생각과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전환됐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수평적 문화는 생존의 필수 도구가 됐다.
 
수평적 조직문화로 나아가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인재의 요구사항이 연봉에서 문화 등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과거 A급 인재라고 불리던 임직원들은 권한 위임이나 수평적 분위기보다 고액 연봉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국내 기업에 다수의 외국인 인재들이 영입되며 이들의 수평적 조직문화 요구가 꾸준히 늘어났고,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도 자유롭고 유연한 문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1세기를 맞이한 S급 인재는 더 이상 수직적 명령에 순응하지 않는다.
 
수평적 조직문화로 나아가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글로벌 기업의 혁신 능력 때문이다. 삼성이 가장 취약한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에서 막강한 R&D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인텔은 자사의 가장 강력한 장점으로'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늘 첫손에 꼽는다. 더욱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도 항상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유연한 기업문화를 자사의 막강한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반대로 수직적 문화에 의존하는 아시아권 기업들이 혁신에 뒤처지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이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에 힘을 쓰는 이유다.
 
수평적 조직문화는 수많은 연구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입증하고 있다. 필자가 2017년 <지식경영연구>에 게재한 연구에 의하면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가 자신들을 지원해주는 사려 깊은 수평적 의사소통을 발휘할수록 상사를 신뢰하고 조직에 더 깊이 몰입해 혁신적 행동을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리더가 일방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지휘형 의사소통은 상사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조직몰입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언컨대 수직적 의사소통은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외 다수의 연구에 의하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한 기업일수록 노사갈등이 적게 발생하고 수직적인 문화가 정착된 기업일수록 노사 갈등이 대폭 확대된다고 한다. 수평적인 문화의 기업들은 상호 소통이 원활해 경영자와 임직원 갈등이 주로 원만하게 합의되고 조정된다. 그러나 수직적인 문화는 구성원 간 소통을 차단시키고 의견 충돌 시 이를 상하 계급이나 계층 대립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상대에게 적대적인 언행을 유발, 노사관계 및 단체교섭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학계의 조언이다.
 
CEO의 솔선수범이 수평적 문화 조성에 필수적

결과적으로 내⋅외부 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압력 이외에도 수평적 조직문화 자체가 조직에 주는 긍정적 영향력이 워낙 강하기에 대다수의 기업이 수평적 문화 구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 일부 기업은 여전히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에 많은 불평 또는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수평적 문화 조성이 21세기 기업 경쟁과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해도 현장에 있는 경영진은"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얘기, 부하직원들이 실행해야 할 사항"이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직급이나 직책 위주의 호칭을 파괴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위해'님'호칭을 도입한 지 20년이 다 되도록 이를 완벽하게 정착시킨 국내 기업은 아직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현장에서 임원들은 아직'전무님','부사장님' 등의 직급 호칭을 선호하고, 회장님에게'이름+님' 호칭을 사용했다간 큰 불호령이 떨어진다. 문화 조성을 부하(?)직원들만 실행하고 조성해야 한다고 CEO가 생각할수록 국내 기업의 수평적 문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의 CEO, 이른바 회장님들은 지금도 사내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을 자랑한다. 회장님의 전용 엘리베이터에 임직원들은 절대 탈 수 없고 회장님의 의견에 건설적인 반론은커녕 토를 달 수 없는 것이 국내 기업의 뼈아픈 현실이다. 수많은 기업이 2000년대 이후 실리콘밸리형 조직문화 조성, 스타트업 문화 혁신 등을 외쳤지만 항상 메아리로 그친 이유는 CEO가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솔선수범하지 않고 항상 문서를 통해 하향식(Top-down)으로 구성원들에게 이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글로벌 IT기업에 방문했을 때 해당 기업의 CEO가 임직원들 뒤에 줄을 서서 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내에서 온 방문객들만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보이며 적지 않게 당황했다는 점이다. 정작 글로벌 IT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직원은"CEO와 우리는 맡은 역할이 다르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이지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고 이야기했다. 외국인 임직원과 동일한 발언을 국내 기업의 임직원이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CEO가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수평적 문화는 국내 기업에 정착될 수 없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을 쓴 세계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는"기업 경쟁력은 조직문화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초일류 기업의 공통된 특성은 조직문화, 인재관리 등의 소프트 경쟁력인데 이는 결코 경쟁사가 쉽게 모방하기 힘든 영역이다. 구성원의 동기부여를 위한 수평적 조직문화가 기업의 성장과 생존을 위한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이 톰 피터스가 내린 결론이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다양한 연구가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결론은 항상 동일하다. 수평적인 문화 조성이 내재돼야 조직이 생존, 지속 혁신할 수 있다는 이 불변의 진리에 국내 기업 CEO들이 외면하지 않고 솔선수범해야 수평적 문화가 완전히 뿌리내릴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장기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의 갈등도 완화시키고 모든 임직원들의 주인의식 고취에도 가장 효과적인 솔루션이다. 이제 CEO들이 직접 수평적 문화 실행에 응답할 차례다. 더 이상 실행 없는 외침은 곤란하다.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 現 한국경영학회 및 한국인사관리학회 인사조직 편집위원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ㆍ 한국인사관리학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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