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피해자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며,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엔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대다수 사건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호 조치와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피해자의 요구가 지나치게 과한 탓에 주변인이 고통 받는 경우도 있다. 관련 사례는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기 이전 단계부터 신고 후 관련 조치가 끝난 이후의 단계에서까지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1. 신고 이전 단계

(1) 대화의 중심이 항상 본인의 피해사실이어야 하는 피해자

본 사례 속의 피해자는 상사로부터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고, 그 정도가 동료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피해자가 상사로 인해 겪은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동료들은 피해자를 위로하고 신고를 권했다. 대신 신고해 주겠다고 나선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신고는 하지 않은 채 계속 본인의 피해사실을 동료들에게 호소하기만 했다. 피해자의 행동은 상사가 다른 부서로 이동해 가해행위가 중단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동료들은 매번 모든 대화의 주제가 피해자의 사건이 되는 것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대화 중 주제를 바꿔 보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나, 항상 대화의 끝은 피해자의 피해 경험이었다. 결국 동료들은 피해자와의 대화 자체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지지가 피해자의 사건 극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지지를 무한정으로 베풀어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좋은 얘기도 여러 번 들으면 지치기 마련이다. 게다가 동료들은 피해자를 위한 상담사가 아니다. 하지만 본 사례의 피해자는 오랫동안 동료들에게 관심을 과도하게 요구하며 그들을 마치 감정 쓰레기통처럼 대했다.

(2) 본인은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하면서 타인이 가해자를 멈춰주길 기대하는 피해자

본 사례는 고충처리를 담당하는 면담자들로부터 몇 차례 확인된 사례다. 피해자 본인은 익명으로 남아있는 채로 다른 사람이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멈춰주길 바라는 유형이 확인됐다. 이들은 본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매우 꺼렸기 때문에 정식으로 신고하는 일이 없었다. 또한 어떤 일이 발생했었는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가해자가 본인의 신원을 알게 될 수 있다며, 사건 내용을 전혀 공유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일방적으로 가해자를 멈춰달라고만 요청한 것이다.

정식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충처리 담당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돼 있다. 심지어 가해자가 어떤 행위를 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가해행위를 멈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설명해도 피해자들은 고충처리 담당자가 자신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고,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만약 고충처리위원이 피해자의 요구대로 무작정 가해자에게 가서 가해행위를 중단하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가해자는 정식 신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가해자로 몰렸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가해자가 고충처리위원이 누명을 씌운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고충처리위원이 가해자보다 직급이 낮고 권력이 적다면 고충처리위원이 가해자의 새로운 괴롭힘 상대가 될 수도 있다. 다른 동료 앞에서도 고충처리위원은 마땅한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가해자라는 누명을 씌운 사람이 된다. 해당 사례와 같은 피해자의 요구는 고충처리위원에게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신고 접수 및 처리 단계

(1) 조언한 고충처리위원을 2차 가해자로 몰아간 피해자

신고 접수 단계에서 피해자에게 발생한 가해행위와 상황을 잘 정리해 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괴롭힘을 겪은 것이 분명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괴롭힘을 겪었는지, 증인이 될 만한 사람은 누구인지 잘 제시하지 못한 탓에 피해를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사례 속에서 고충처리위원은 피해자가 상담을 하러 왔을 때 괴롭힘을 겪었다는 증거가 있다면 잘 정리해 두라고 권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고충처리위원에게 본인의 증언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며 화를 냈고, 고충처리위원을 2차 가해자로 신고했다. 상담의 원인이었던 1차 가해자에 대한 신고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렸다.

피해자가 1차 가해자가 아닌 타인에게 트집을 잡으며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는 일은 간간이 발생하는 일이다. 피해자에게 1차 가해자는 매우 두렵고 쉽게 대적할 수 없는 상대다. 신고를 결심했어도 여전히 그들의 보복이 두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피해자 내면에는 가해자로 인한 분노와 원망이 쌓여있다. 갈 곳을 잃은 그 분노와 원망을 본인에게 대갚음하지 않을 것 같은 제 3자에게 터트리는 것이다.

고충처리위원이나 조사관은 피해자에게 사건 정황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들과 마주한 피해자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될 수 있다. 물론 고충처리위원과 조사관도 감수성을 갖도록 교육훈련을 받을 필요는 있다. 하지만 본 사례처럼 피해자가 일반적인 조언에조차 과도하게 분노하며 1차 가해자에 대한 것보다 더 큰 원망을 쏟아낸다면 아무리 높은 감수성을 가졌어도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조언자를 비서처럼 취급한 피해자

도움을 주려는 조언자(노조 임원)를 비서처럼 취급한 피해자 사례도 있다. 사건 초반, 조언자는 사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사측을 압박하며 동시에 피해자 구제 방안을 다른 노조 임원들과 논의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피해자는 수시로 조언자에게 전화를 걸면서 어떤 조치를 하라고 지시하듯, 따지듯 요구하길 반복했다.

결국 다른 임원들 사이에서도 피해자의 과도한 요구와 부적절한 요구 방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앞장서서 피해자를 돕고 있던 조언자도 피해자에게 '내가 당신 비서인 줄 아느냐'라고 말할 정도였다. 피해자의 요구에 지친 노조는 의욕이 훌쩍 꺾인 채로 사건 대응에 임했다.

3. 사건 처분 이후 단계

(1) 가해자를 수년간 재택근무하도록 요구한 피해자

가해행위에 대한 징계는 행위의 경중에 준해 타당한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징계 수위가 과하면 도리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모 사업장에서 피해자는 괴롭힘 피해를 인정받았다. 이후의 후속조치로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완전한 분리즉 사업장 내에서 서로 얼굴을 볼 일이 아예 없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업장은 가해자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했고 그 기간이 5년을 훌쩍 넘어섰다. 즉 가해자는 그 기간 동안 유배형에 처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 3년간 유급휴직을 요구한 피해자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에는 신고한 피해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어선 안 된다며 그 기간을 3년으로 권고한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괴롭힘 신고 이후 3년간의 유급휴직을 요구한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의 요구를 받은 사측은 자문을 받은 뒤 3년의 유급휴직이 타당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피해자에게 알렸다. 하지만 피해자는 고용부 매뉴얼을 들먹이며 요구를 철회하지 않았다. 또한 노동청에 사업장을 신고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3) 업무 실적 점수를 나눠준 동료들을 험담하는 피해자

피해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사측의 부적절한 대처로 재차 피해를 겪었다. 그 피해가 직접적으로 지속된 기간은 반년 정도였고, 그 후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 같은 증상을 겪으면서 고통 받았다. 즉 회사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같은 부서의 동료들은 이런 피해자를 배려해 본인들의 몫이던 실적 점수를 피해자에게 나눠주었다. 피해자가 근평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만큼의 점수였다.

하지만 피해자는 동료들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동료들에 비해 본인의 점수가 적다며 불평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동료들이 자신들끼리만 점수를 많이 챙기고 본인의 점수는 적게 줬다며 험담했다. 피해자가 사실상 부서 업무에 기여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점수를 많이 받은 것이었으나 만족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이런 태도는 피해자를 도우려고 한 다른 동료들의 마음도 멀어지게 했고, 부서 내에서도 피해자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4) 지점별 전 직원 신고를 반복하는 피해자

피해 사실이 입증된 피해자를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킨 사업장에서 겪은 일이다. 피해자는 새로운 지점에 있는 모든 동료들을 가해자로 신고했고다른 지점으로 이동됐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신고 행위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소속 지점의 업무는 마비되다시피 했다.

피해자가 동료 운이 좋지 못해서 반복적으로 가해자가 많은 지점에 배치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첫 사건 이후 피해자의 신고 내용은 괴롭힘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모호한 것들이었다. 피해자가 괴롭힘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괴롭힘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인 범위라는 기준부터 충족해야 한다. 국내외 판례 모두 그 점에 동의하고 있으며, 해외의 판례에서는 극도로 민감한 피해자 개인에게 맞출 수는 없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본 사례의 피해자는 먼저 겪은 괴롭힘으로 인해 극도로 민감해져 다른 사람들의 중립적인 언행조차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괴롭힘이라고 착각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피해자에게 맞춰 주변인을 모두 가해자로 낙인찍을 수 없으며, 그 자체가 누명을 씌우는 행위가 된다. 게다가 피해자가 이런 상습 신고를 반복한다면 양치기 소년처럼 나중에 진짜 괴롭힘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호소를 믿어주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상습 신고한 본인이 아닌 다른 피해자도 그 여파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4. 피해자 역시 지켜야 할 선은 있다

피해자에게는 주변인의 도움과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주변인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자를 돕는 문화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작정 피해자를 도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주변인에게도 엄연히 본연의 삶과 업무가 있으며, 피해자를 돕는 것이 조력자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로는 피해자의 행동이 주변인에게 직간접적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피해자의 과도한 요구와 방향성을 잃은 분노로 피해가 발생하면 그때부터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한 명의 피해자가 이기적이고 상식을 넘어서는 요구를 함으로써 발생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다른 피해자들에게까지 덧씌워질 수 있다. 처음에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도우려 했던 동료들도 한 피해자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마음이 돌아서고, 이후에는 다른 피해자조차 도우려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이기적인 피해자의 사례가 꾸준히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뿐만 아니라 그 권리를 적절하게 행사하는 방법도 깨닫게 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는 본인의 보호받을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상식적인 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 선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위 사례들에서처럼 피해자가 오히려 사업장의 폭군이 되고 주변인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