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장재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1. 들어가며

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근로복지공단에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 다목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에게 정신질환이 발생했다는 사실과 정신질환과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당해 정신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근로자의 주장과 달리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도 근로자의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후 근로자가 제기한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소송 등에서 근로자가 승소하는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판결의 결론은 근로복지공단으로 하여금 요양 불승인처분을 취소하고 당해 정신질환에 대한 보험급여를 지급하라는 것이지만, 그 판결 이유에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용자의 판단이 번복되는 경우 사용자 또는 그 소속 근로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당하는 등 후속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 사용자는 근로자가 제기한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 근로복지공단 쪽의 보조참가를 하기도 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위와 같이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소송 판결 사례를 통해 이와 관련해 사용자가 유의해야 할 시사점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2. 서울행정법원 2025. 1. 17. 선고 2022구단71090 판결(확정) :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직장 내 문제로 인한 정서적 스트레스만으로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사례

이 사건 원고 A는 생소한 부서로의 잦은 인사에 따른 스트레스, 업무 배제, 인사고과 등에서의 불이익한 처우,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해 중증도 우울 에피소드 등의 상병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A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다른 근로자들과의 갈등 요인은 일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수준이나 강도 등을 고려할 때 위 상병을 유발할 정도의 직장 내 괴롭힘이나 스트레스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 A의 요양급여 신청을 불승인했다. 이에 대해 A가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판결은 위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봐 A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A에 대한 인사이동이 이례적이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A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기 전까지 업무 배정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으며, 사용자가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부정됐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특히 이 판결은 (ⅰ)A가 50대의 고령임에도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나, 전임자로부터 업무 인계를 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만으로 위 상병이 발생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고, (ⅱ)A의 상사가 정당한 지시를 넘어 폭언이나 모욕적인 언동을 했다는 점을 인정할 객관적인 자료는 없으며, 오히려 대화 녹음에 따라 A가 상사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고 비난하는 발언을 한 점이 인정된다고 하면서 A에게 직장 내 문제로 인한 정서적인 스트레스는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이것만으로 위 상병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3. 서울행정법원 2024. 9. 27. 선고 2023구단50557 판결(확정) : 신고자 스스로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직장 내 문제로 인한 정서적 스트레스만으로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사례

B는 정신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장애인 체험형 인턴으로 입사해 사무보조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사용자는 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B와의 근로계약을 종료했는데, 이에 B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원회는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 거절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B는 복직해 근무하던 도중 사용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으나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후 B는 조현병, 불안장애, 우울증을 진단받고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i)사용자가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했던 것이 부당해고라는 노동위원회 판단은 있었으나 (ⅱ)직장 내 괴롭힘 등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했다. 이에 B가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B의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에서 B는 "직장 내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한 대우와 괴롭힘을 받았고, 이를 신고했음에도 참가인이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판결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B에게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B가 자료 제출 의사가 없다고 밝혔고 그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고용노동청 역시 이와 관련해 B가 제기한 진정에 대해 '해당 없음'으로 종결했던 점을 근거로 B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어 법원은 B에 대한 갱신 거절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노동위원회 판정이 있었지만 근로계약서상 종합 평점 점수 60점 미만일 경우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점이 명시돼 있었고, 수차례의 상담에 따라 B 역시 재계약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었던 점에 비춰 그와 관련한 스트레스 수준이 높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그밖에 법원은 B가 회사 근무 전부터 이미 심각한 조현병 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업무 스트레스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조현병 경과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4. 서울행정법원 2023. 8. 22. 선고 2021구단78315 판결(확정) :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는 판단을 뒤집고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관련 상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사례

카지노 딜러였던 C는 적응장애를 진단받고 요양급여를 신청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은 불승인 처분을 했다. C는 그에 앞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으나, 사용자 및 고용노동청은 직장 내 괴롭힘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소수의견(직장 내 선배와의 갈등 및 괴롭힘, 비공식적 위계 관리가 형성돼 후배 기수를 선배 기수가 규율하면서 불합리한 관행이 존재했음이 확인되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함)이 있었으나 선배와의 갈등 관계에서 일부 주관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인정될 뿐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다수의견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은 불승인 처분을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C의 청구를 인용해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법원은 (i)C가 동료들로부터 별명으로 불렸던 점, (ⅱ)선배들로부터 휴게실에서 화장을 고치는 행동, 음식을 먹는 행동 등을 통제당했던 점, (ⅲ)사업장 구성원들이 가입된 SNS 단체채팅방과 블라인드 게시판에 C를 특정해 비난하는 글이 공개적으로 게시됐던 점 등을 고려해 C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으면서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봤다.

이 판결은 법원 감정의의 감정 결과, C가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취약한 것으로 보이지만(C는 승무원 관련 학과에 입학했다가 엄격한 선후배 문화, 룸메이트와의 갈등 등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고, 자퇴를 한 바도 있었다), 그와 같은 개인적인 소인을 감안하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에 노출됐고, 직장 상사나 선배들로부터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부적절한 직장 내 문화가 C의 상병을 자연 경과 이상으로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근거로 C의 청구를 인용하는 주요 근거로 삼았다.

5. 시사점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소송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가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행정법원 2021구단78315 사건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한 사용자, 고용노동청,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당해 소송에 제출된 증거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존재 여부에 대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의 존부에 대해 다툴 수 있는 입증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2022구단71090 판결 사안의 경우, 직장 상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A가 오히려 상사에게 반말을 하고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발언을 하는 등의 녹음 파일이 있어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고 판단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서울행정법원 2023구단50557 판결 사안은 B가 사용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주장만 했을 뿐, 입증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는 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를 부정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따라서 사용자로서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야 하고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이후에도 이를 계속 보존할 필요가 있다. 서울행정법원 2022구단71090 판결 사안의 경우, A는 오랜 기간에 걸쳐 부서배치, 업무배제, 인사고과에 따른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과정에서 문제됐던 사안에 대한 자료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실시하는 각종 인사명령, 인사평가 등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도 축적·보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2023구단50557 판결 사안의 경우와 같이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과정에서 신고인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빙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장 내에서 업무 및 대인관계로부터 발생하는 다소간의 스트레스로 인한 업무상 재해는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2022구단71090 판결은 A가 50대의 고령임에도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나, 전임자로부터 업무 인계를 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비롯해 대인관계로 인한 정서적인 스트레스만으로는 A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서울행정법원 2021구단78315 판결처럼 근로자가 과거 정신질환을 겪은 적이 있었고,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에 있어서도 당해 직원이 불합리한 선후배 사이의 관행 등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 근로자에게 발생한 정신질환이 개인적인 소인에 따른 것이 아닌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