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산구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사진=뉴시스)

노동위원회에 이어 법원에서도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동조합의 교섭단위 분리 필요성을 인정했다. 금호타이어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사무직노조의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하자 이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노위 판단 이후 금호타이어와 사무직노조가 교섭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쐐기를 박는 판결이 나온 셈이다.

14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송각엽)는 금호타이어가 중노위를 상대로 낸 교섭단위 분리 결정 재심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금호타이어의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에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와 유의미한 고용형태의 차이가 존재한다"며 "사무직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함으로써 달성하는 이익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유지함으로써 달성되는 이익보다 더 크다고 판단되므로, 사무직을 생산직과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사무직노조의 등장…"생산직노조와 별도로 교섭하게 해달라"

금호타이어에는 4개의 노조가 있다. 설립 순서대로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금호타이어노동조합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동조합 ▲금호타이어 현장관리자 노동조합이다.

이 중 교섭대표노조는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다. 회사는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와 38년간 단체교섭을 진행했고, 2011년 금호타이어노동조합이 설립된 후에는 개별교섭을 진행했다. 회사는 2018년부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조와 교섭을 진행해 왔다.

소송은 지난 2022년 8월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동조합이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사무직노조는 2021년 설립된 신생노조로, 사무직을 조직 대상으로 했다.

전남지노위는 사무직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불복한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했으나 중노위 역시 초심 판정을 유지했다.

금호타이어는 중노위 재심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금호타이어는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에 근로조건과 고용형태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아 사무직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할 예외적 필요성이 없고, 교섭대표노조와의 교섭만으로 사무직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해야 하는 단위(교섭단위)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는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예외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에 따라 결정된다.

쟁점은 교섭단위 분리가 필요할 정도로 금호타이어 생산직과 사무직 사이에 근로조건ㆍ고용형태 차이가 있는지, 그간의 교섭관행은 어땠는지 등이었다.

"생산직과 사무직,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 존재"

법원은 교섭단위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둘 사이에 근로조건 차이가 뚜렷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생산직과 사무직은 직군별로 담당 업무 및 근무 장소가 명확히 구분되고, 근무형태와 직위ㆍ직급체계, 임금의 구조와 지급체계뿐만 아니라 연차휴가 보상 방식, 복리후생 등 핵심적인 근로조건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생산직은 단체협약과 생산직 취업규칙 두 가지 인사관리규정의 적용을 받지만, 사무직은 일반직 취업규칙만 적용받았다. 그 결과 둘 사이에 근로조건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 더구나 생산직의 근로조건은 취업규칙보다는 단체협약에 방점이 더 찍혀 있는 상황이었다.

임금체계도 달랐다. 사무직은 기본급, 고정연장수당, 상여금으로 구성된 연봉제를 시행했지만, 생산직은 기본급,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가족수당, 근속수당, 안전수당, 생산장려수당, 야간교대수당, 맞교대수당, 상여금을 반영한 호봉제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특히, 가족수당과 근속수당은 직무의 본질적 차이에 따라 달리 지급돼야 할 것이 아님에도 사무직에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며 "더욱이 사무직에는 2021년부터 성과연봉제가 적용되고 있어 매년 호봉에 따라 임금 상승분이 자동 반영되는 생산직과 달리 성과평가에 따라 직급별 연봉이 삭감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사무직은 정년 5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임금이 10% 하향 조정되는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았지만, 생산직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지 않았다. 만 60세인 정년도 사무직은 만 60세 생월 말일이 기준이었지만, 생산직은 만 60세가 되는 해의 연말이 기준이 돼 차이가 발생했다.

채용 절차ㆍ 조건 모두 달랐다

고용형태에서 나타난 차이도 교섭단위 분리에 힘을 실었다.

법원은 "생산직과 사무직은 인력관리 주체 및 방식, 채용조건 및 세부 절차, 수습기간의 운용 등 인사노무관리 제도가 서로 다르다"며 "여기에 직군 간 인사 교류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에서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에 유의미한 고용형태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생산직과 사무직 모두 채용 시 공개모집 절차를 밟았으나, 생산직은 현장업무 수행능력에 중점을 둔 합숙교육, 직업훈련생 모집 등의 채용 방식을 택했다. 반면 사무직은 인적성 검사를 통해 채용했다.

기본적인 채용 조건도 달랐다. 생산직은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과 관련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했다. 이 중 기능직급을 뽑을 땐 학력을 보지 않기도 했다. 이와 달리 사무직은 채용을 직무별로 세분화하고 4년제 대학 학사 이상의 학력을 우대했다.

재판부는 "회사는 직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채용하고 있고, 생산직이 사무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전체 생산직 인원의 0.5% 내외에 불과해 사실상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의 인사 교류나 혼재 근무, 직무의 통합ㆍ교환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교섭관행 없었지만…"신생노조였기 때문"

사무직노조는 이번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하기 전까지 회사와 단체교섭을 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교섭대표노조에 사무직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한 공문을 보낸 게 전부였다. 

재판부는 "회사와 교섭한 노조들이 사무직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단체교섭을 한 전례는 없어 보이고, 회사와 사무직노조 사이에 교섭관행이 형성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사무직노조가 2021년 4월 신설돼 별도의 교섭관행이 형성될 시간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여 교섭관행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법원은 생산직으로만 구성된 노조가 사무직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노사협의회도 교섭대표노조 중심으로 운영돼 6명의 근로자위원 중 사무직은 한 명도 없었다. 사무직노조는 근로자위원 중 1명을 사무직 대표로 구성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생산직으로만 구성된 다른 노조가 사무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회사도 사무직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등을 고려하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게 오히려 노조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해 교섭 비용을 증가시키고 안정적인 노사관계의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사무직노조 "판결 환영…신생ㆍ소수노조 교섭권 보장돼야"

사무직노조는 이번 법원 판결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은 "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온전히 사무직 노동자의 임금 및 근로여건 개선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확정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서 "노동3권 중 하나인 교섭권은 노조 존속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현재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고 있는 교섭단위 분리 결정에 대해 엄격한 판단기준을 적용하기보다는 유연한 접근을 통해 새롭게 신설된 노조,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무직노조 측을 대리한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는 "그간 사무직의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받은 사례가 많지 않고, 같은 정규직인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에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받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이번 금호타이어 사건에서는 임금체계, 정년 기산, 임금피크제 여부 등 생산직과 사무직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 과거와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금호타이어와 사무직노조는 중노위 결정 이후 올해 1월부터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김 위원장은 "금호타이어는 더 이상 형식적 교섭 참여가 아니라 올해 남은 기간 동안 단체협약 타결을 노사 공동 목표로 과도한 임금피크제 개선, 불합리한 임금 삭감 시정, 동종업계 수준의 임금 현실화, 사무직은 지급받지 못했던 격려금 지급, 출장비 현실화 등 사무직노조의 합리적 요구에 전향적 자세로 교섭에 응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엇갈리는 결과 속 '분리 인정' 사례 또 쌓여

최근 2~3년 사이에 사무직노조 설립 열풍이 불면서 사무직에 대한 교섭단위 분리 분쟁이 화두에 올랐다. 이번 금호타이어 판결은 비슷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업장, 다른 사무직노조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로 사무직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 사례가 하나 더 늘어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노조 소속 일반직(사무ㆍ연구직)을 현업직(역무, 주차, 배송, 운전 등)과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일반직과 현업직은 담당 업무와 근무 장소가 명확히 구분됐고, 적용되는 임금체계도 달랐다. 일반직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았지만, 현업직은 적용받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은 "일반직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하더라도 노무관리상의 어려움이나 서로 다른 근로조건 적용에 따른 불합리성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고, 교섭 효율성의 저하나 교섭 비용의 증가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해당 판결은 지난 2022년 6월 8일 확정됐다.

지난 8월엔 중노위가 현대엘리베이터 사무직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하는 판정을 내놨다. 중노위는 현대엘리베이터 기술직과 사무직 사이에 근로조건 차이, 고용형태 차이, 회사와 사무직노조 간의 교섭관행 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받지 못한 곳도 있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1년 7월 중위는 LG전자 사무직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지노위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중노위는 "사무직노조가 향후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고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하더라도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구제받을 수 있으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안에서 사무직 종사자의 의견 전달이 가능하다"며 "근로조건과 고용형태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형해화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LS일렉트릭 사무직 노조도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LS일렉트릭 사무직 노조는 생산직들로 이루어진 기존 노조가 사무직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며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했지만 지노위와 중노위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재하 LS일렉트릭 사무직 노조 위원장은 "생산직은 호봉제 적용을 받지만, 사무직은 연봉제와 더불어 성과 평가를 받기 때문에 임금을 똑같이 5% 인상해도 생산직과 사무직 사이에 임금 차이가 발생하고, 사무직 안에서 또 저성과자와 고성과자의 임금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며 교섭단위 분리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