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사진=뉴시스)

LG전자가 노사협의회 설치를 두고 다시 한번 노조와 갈등을 겪고 있다. LG전자는 앞서 노사협의회를 적법한 절차대로 설치하지 않아 고용노동부의 행정지도를 받기도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노사협의회 설치 단위다. 노조는 전사 단위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LG전자는 제품군별로 나눠진 본부 단위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사협의회 설치를 규정한 근로자참여법을 보면 노사협의회는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별로 설치해야 한다. 쟁점은 LG전자의 본부를 근로조건 결정권이 있는 사업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고용부는 본부가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을 일부 갖고 있더라도 노무관리와 회계 등이 명백하게 분리되지 않았다면 별개의 사업으로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LG전자 측은 각 본부도 근로조건뿐 아니라 사업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업단위라고 설명했다. 

'전사 vs 본부별' 노사협의회...좁혀지지 않는 노사
 
27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LG전자 노사는 최근 노사협의회 설치 단위를 어떻게 구분할지를 놓고 충돌하고 있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사무직노조)은 지난 11일 노조 설립 후 최초로 집회를 열었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거를 겨냥한 것이다.
 
LG전자는 이달 노사협의회 재설치를 추진했다. 사무직 근로자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선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근로자참여법은 근로자가 직접ㆍ비밀ㆍ무기명 투표를 통해 근로자위원을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업장에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노조 대표자와 노조가 위촉하는 사람이 근로자위원이 된다. 노사협의회는 근로조건에 대한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설치해야 한다.
 
LG전자는 이전에도 노사협의회를 운영해왔지만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접ㆍ비밀ㆍ무기명 투표를 통해 근로자위원을 선출하지는 않았다. 사무직 노사협의회 위원들은 위원선거인을 통한 간접 투표로 선출됐다. 또 사무직과 기능직 노사협의회를 분리해 운영했다.
 
LG전자는 올 1월 고용부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고용부는 근로자위원을 직접ㆍ비밀ㆍ무기명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원선거인을 선출한다 해도 동일하게 투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무직과 기능직 노사협의회를 분리해 운영하는 것도 위법 사항으로 지목됐다.
 
고용부의 행정지도로 LG전자는 사무직과 기능직을 아우르는 노사협의회 선거를 진행하게 됐지만 노사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쟁점은 노사협의회 설치 단위다. 사무직노조는 전사 단위의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회사는 본부 단위 노사협의회를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LG전자 내에는 제품군별 본부가 있다. H&A(Home Appliance &Air Solution) 본부, BS(Business Solutions) 본부, HE(Home Entertainment) 본부,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 본부까지 4개다. 이를 비롯해 최고기술경영자(CTO) 소속 R&D 전담부문, 생산기술원, 한국영업본부, 기타 본사로 나뉜다.
 
사무직노조가 전사 단위 노사협의회를 요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유준환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성과급도 당연히 전사 단위로 결정하고 직급 체계나 연봉 체계도 마찬가지"라며 "직급 폐지나 저성과자 프로그램(PIP)도 전사 단위로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데 전사 노사협의회가 없다면 이러한 논의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LG전자 자체가 본부별로 근로조건이 나눠지는 게 아니어서 전사 단위와 본부 단위는 차이가 크다"며 "전사 노사협의회가 아니면 실질적으로 회사와 협의하고 보고를 하도록 의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LG전자는 본부 단위 노사협의회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각 본부 별 특성이 상이하고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본부 단위에 위임돼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사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선거는 본부별로 진행 중이다. H&A 본부와 BS 본부만 선거가 마무리됐고 나머지 본부 선거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본부=근로조건 결정권 가진 사업?..."노무관리ㆍ회계 독립돼야"
 
전사 단위가 아닌 본부별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해도 적법할까. 관건은 LG전자의 각 본부를 근로자참여법상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볼 수 있는지다.
 
본부에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일부 위임돼 있더라도 노무관리와 회계가 명확하게 독립적이지 않다면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고용부의 판단이다.

고용부는 지난 6월 사무직노조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한 민원을 받고 답변을 내놨다. 사무직노조는 LG전자의 본부를 독립된 '사업'으로 볼 수 있는지, 노사협의회를 본부 단위로만 설치해도 적법한지 질의했다.
 
이에 고용부는 "노무관리, 회계 등이 명확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하나의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고용부는 원칙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을 장소에 따라 판단한다. 본사, 지점, 출장소, 공장 등이 동일한 장소에 있는 경우에는 하나의 사업으로, 장소가 분산돼 있는 경우에는 별개의 사업으로 본다.
 
다만 동일한 장소에 있더라도 현저하게 근로 형태가 다르고 노무관리와 회계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 별개의 사업으로 본다. 반대로 장소가 분산돼 있더라도 별개의 사업이라고 볼 정도의 독립성이 없다면 하나의 사업이 될 수 있다.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장소에 따라 먼저 판단한 다음 노무관리와 회계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때 별개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인정되면 노사협의회를 별도로 설치할 수 있다. 본사와 지점이 있는 경우 지점에도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일부 권한이 위임돼 있다면 지점 단위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나의 사업에 사업장이 여러 군데 있을 때는 중앙 노사협의회와 지역별 노사협의회를 함께 설치할 수 있다.
 
LG전자는 어떨까. LG전자의 본부는 앞서 언급한 지점이나 지역사업장과는 조금 다르다. LG전자의 본부는 장소에 따라 나뉘지 않는다. 마곡, 평택, 창원 등 하나의 사업장에 2~3개 본부가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노무관리와 회계 등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야 한다.
 
여기서 노사 간 이견이 발생한다. 사무직노조 측에 따르면 LG전자 본부는 일부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만을 갖고 있다. LG전자는 전반적인 근로조건을 전사적 수준에서 결정한다. 직급 체계와 초임, 연봉인상률, 유연근무제 시행, 성과급 수준, 정리해고, 희망퇴직, 복리후생, 징계와 보상, 사내복지기금, 우리사주, 전사 단위 교육 등이다. 본부에서 결정하는 사항은 본부 단위 교육과 직원 채용, 고충처리, 작업시간, 공정 개선 정도다.

사무직노조를 자문하는 정명아 법률사무소 새날 노무사는 "법률적인 의미에서 사업은 하나의 법인을 의미하고 법인 내 사업 본부는 회사의 조직 구조에 불과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노무관리나 회계가 명확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우 회사의 조직까지도 사업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LG전자의 경우 각 본부에 재량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임금이나 인사 처분 등 가장 결정적인 근로조건은 법인이 결정하고 본부는 그 지침을 받아 이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차라리 지역 사업장별로 노사협의회를 운영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회사가 임의로 구성한 내부 조직별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는 건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본부도 사업단위, 전사 근로조건은 단체교섭으로"...반박하는 LG전자

반면 LG전자 측 설명은 이렇다. 사업본부 조직은 근로조건뿐만 아니라 사업 전반에 대해 상당한 결정권을 가지고 운영되는 사업단위다. 본부마다 경영관리, 인사, 회계, 진단, 생산, 품질, R&D, 영업조직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의 회사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이와 같은 LG전자의 구성과 근로자참여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실효적인 노사협의회가 되기 위해서는 본부 단위 노사협의회가 그 본질에 부합한다"며 "근로자참여법상 세부적인 노사협의회 보고사항, 협의사항, 의결사항 안건들을 살펴보더라도 본부 단위로 노사협의회가 운영될 때 실효적인 운영을 담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무직노조의 전사 단위 노사협의회 설치 주장도 반박했다. 임금 인상과 복리후생 제도 등 전사적인 근로조건은 노사협의회가 아닌 노조와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선을 그었다.

LG전자는 "설치 단위와 관련해 일부 노동조합에서 임금인상, 복리후생 제도 등 전사적인 근로조건을 결정하기 위해 전사 노사협의회를 주장하는 등 이견이 존재하지만 이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한 사안이고 노사협의회 근본 취지와는 차이가 있다"며 "LG전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결정된 교섭대표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통해 위와 같은 사항에 결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노사협의회 협의 사항에 관해서도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이 문제로 근로자위원 선거운동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자가 공약에 성과급과 포괄임금제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자 선거관리위원회는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면서 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사무직노조는 "성과급과 포괄임금제는 명백히 노사협의회에서 협의 가능한 사항"이라며 "성과급의 경우 과거 LG전자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해온 이력이 있음에도 공약으로 넣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선거관리위원회의 월권행위가 심각하다"고 날을 세웠다.

실제 LG전자가 지난해 사무직 임금협상 결과를 발표할 때는 당시 사무직 노사협의회에 참여하던 JB(Junior Board)와 협의했다는 문구가 붙어 사무직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노사협의회로 목소리 내는 사무직노조, 법적 대응도 고려

회사의 설명대로면 사무직노조는 임금과 성과급 등 전사적인 근로조건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사무직노조는 LG전자에서 교섭대표노조가 아니다. 사무직노조보다 먼저 설립된 기능직노조 LG전자노동조합이 다수노조이자 교섭대표노조다.

사무직노조는 사무직과 기능직의 근로조건이 다르다면서 설립 직후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올해 교섭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했고 조합원 수에 따라 LG전자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가 됐다. 사무직노조는 교섭대표노조에 요구안을 전달했지만 별다른 전달사항이나 협의 없이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임금인상 요구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복리후생 요구안 중 일부만 반영됐다는 것이 사무직노조 설명이다.
 
사무직노조로서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특히 LG전자는 다수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될 수 없는 구조다. 다수노조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위촉할 권한 역시 다수노조에 있다. 그러나 LG전자 근로자 3만5000여명 중 기능직은 약 1만 명이다.

사무직노조는 조합원들을 근로자위원 후보로 입후보시켜 노사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유 위원장도 소속된 HE본부 선거에 출마했다.
 
한편, 사무직노조는 법적 대응도 준비 중이다. 노사협의회 설치 단위의 경우 근로자참여법 위반 소지가 있는 만큼 고용부 진정이나 고소ㆍ고발을 고려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