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주민과의 동행 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이주노동자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차별적인 정책과 인식이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개선과 숙련공 정착 유도를 위해 비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주노동자는 늘어나지만 차별 개선은 부족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00년 1.42명에서 지난해 0.72명까지 하락했다. 현행 합계출산율을 유지하면 생산가능인구(15세~65세)는 2020년 3762만 명에서 2070년 1533만 명까지 감소한다. 합계출산율이 1.0명까지 회복하더라도 생산가능인구가 2070년 1791만 명에 불과해 2020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도 내년부터 20%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측돼 경제 성장과 사회 유지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이주노동자 확대를 꼽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일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역동 경제 로드맵'을 통해 이주노동자 확대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현재 7만2000명인 외국 전문 인력을 15만까지 확대하고, 가사 노동자도 5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이주노동자 확대 정책으로 이주노동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비전문 인력(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의 수는 2021년 5만5000명에서 2024년 16만5000명으로 3배 늘었다.
 
그러나 이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다.
 
2021년 미국 퓨 리서치센터가 실시한 '국가별 이주자에 대한 사회 인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주자에 대한 부정 응답 비율이 다른 국가들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이주자에 대한 부정 인식 비율은 39%로 싱가포르(8%)의 5배, 미국ㆍ영국(13%)의 2배 이상이었다.
 
일반 국민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이주노동자 혐오도 만연하다. 지난해 12월 전국건설동조합(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는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불법 고용 이주노동자 퇴출시키자'는 문구를 걸고 대구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촉구했다. 건설노조는 지난달 6일에도 서울 일부 지역에 '국민 세금으로 짓는 건물은 외국인이 아닌 국민이 일할 수 있게 합시다'라는 현수막을 걸어 논란이 됐다.
 
현재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이주노동자 차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상황이다.
 
지난 7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선진국 이민정책으로 본 한국 이민정책 시사점 연구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주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인구 감소,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노동력 유입 정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이민자와 내국인 간 차별과 갈등을 넘어 사회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도 "이제는 단순히 노동력 유입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한국어, 한국 문화ㆍ법률에 대한 교육과정도 제대로 운영해 이주노동자와 내국인의 사회 통합을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 차별 금지를 위한 노조 차원의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은 올해 중앙교섭 요구안에 이주노동자 차별 금지를 포함했다.
 
금속노조는 사용자 측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 차별 금지, 복리후생 공동 사용, 동일 작업복 지급을 요구했다. 또한 금속노조는 이주노동자에게 숙소 제공 시 임금에서 숙박비 공제 금지도 주장했다.
 
다만, 이주노동자 차별 금지를 단체협약에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노사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김상민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이주노동자 차별 금지 조항이 현재 사측과 쟁점이 가장 안 좁혀지는 것 중 하나"라며 "사측에서는 임금 차별 금지가 과도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숙소비의 임금 공제에 대해서도 사측은 고용노동부 공제율 이내이면 위법이 아니어서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 거주ㆍ영주권 획득 어려운 비자 제도 개선돼야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비자 제도 개선도 필요한 과제로 꼽힌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E-9 비자로 입국한다.
 
E-9 비자는 고용허가제로 운영된다. 정부가 지정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17개 송출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에게 근로할 사업장을 지정해 비자를 내준다. 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최대 4년 10개월까지만 체류가 가능하다. 영주권 부여, 가족 초청은 되지 않는다.
 
비전문 인력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영주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특정 활동(E-7) 비자로 전환해야 한다. E-7 비자로 전환 시 5년이 지나면 영주권 획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E-7 비자는 소득, 한국어 능력, 나이 등 조건이 까다로워 사실상 비자 전환이 어려운 상황이다.
 
김 교수는 숙련된 이주노동자들의 장기 근로를 위해 E-9 비자에서 E-7 비자로의 전환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숙련공이 된 이주노동자들의 장기 근로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현행 E-7 비자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현재 지나치게 까다로운 E-9 비자에서 E-7 비자로의 전환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도 "E-9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숙련도가 쌓여 현장에서는 이들을 계속 고용하고 싶어 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그럼에도 4년 10개월이라는 체류 기간 제한으로 고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들의 체류 기간을 늘리고 영주권을 부여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정책, 독일식 포용모델로 가야 저출산 해결 가능"
 
김 교수는 이주노동정책이 일본식 차별ㆍ배제정책이 아닌 독일식 포용 정책으로 가야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일본은 차별ㆍ배제 모델의 이주노동정책으로 저출산ㆍ고령화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독일은 포용형 이주노동정책으로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며 "우리나라도 포용형 이주노동정책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일본은 이주노동자들의 체류 기간과 이직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가족 초청을 금지하는 차별적 이주노동정책을 실시했다. 반면 독일은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가족 재결합 이주도 허용하는 포용적 이주노동정책을 펼쳤다.
 
두 국가는 합계 출산율과 고령화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2000년 1.37명에서 2020년 1.29명으로 줄어들었지만 독일은 2000년 1.38명에서 2020년 1.52명으로 늘어났다. 인구는 일본이 2000년 1억2752만 명에서 2020년 1억1247만 명으로 감소했지만 독일은 2000년 8221만 명에서 2020년 8378만 명으로 증가했다.
 
고령자 비율도 일본은 2010년 23%에서 2022년 29.1%까지 증가했지만 독일은 2010년 20.7%에서 2022년 22%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와 일본같이 고용허가제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적 이주노동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정착하거나 노동력의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다가오는 이주노동자 유치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계속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도 "독일은 적극적인 이주노동정책으로 세대를 거치며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스포츠, 연예계 등 다양한 분야에 자리 잡은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도 보다 포용적인 정책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