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2021년 3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과로사 진상규명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연이은 쿠팡 배송 기사 과로사 의혹에 쿠팡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아직 근로자 과로사 혐의로 사업주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처벌을 받은 사례가 없어 향후 기소와 처벌 여부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한 안전 의무 규정과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으로 실제 기소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택배노조 "로켓배송이 과로사 유발"
 
택배노조는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쿠팡 대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고소ㆍ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쿠팡 대구 칠곡캠프(물류센터) 배송 기사로 일하던 A 씨는 야간 배송을 마치고 귀가한 뒤 사망했다. A 씨의 유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고 공단은 산재를 인정했다. 노조는 A 씨가 과로사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에도 쿠팡 배송 기사의 과로사 의혹은 계속됐다. 지난해 10월 쿠팡 군포캠프에서 새벽배송 도중 숨진 B 씨도 장시간ㆍ야간 노동으로 과로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지난 5월 쿠팡 남양주2캠프에서 배송 기사로 일하던 정슬기 씨가 배송지와 캠프를 하루 3회 왕복(총 120㎞)하고 심야 노동을 주당 63시간씩 하다가 과로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쿠팡의 등장 이후 또다시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있다"며 "과로사의 원인이 분명 쿠팡에 있는 만큼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과로사 원인이 배송 기사 개인이 아닌 로켓배송 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쿠팡은 분류작업을 배송 기사에게 전가했고 프레시백 회수 업무도 강요하고 있다"며 "로켓배송 시스템으로 인해 정 씨가 주63시간을 일하다 과로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쿠팡은 배송 기사가 쿠팡 소속이 아닌 전문배송업체 소속이라며 과로사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정 씨는 쿠팡에 직접 고용된 배송 기사가 아닌 쿠팡이 위탁계약을 맺은 전문배송업체 소속이었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은 택배기사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당 작업 일수와 작업 시간에 따라 관리해 줄 것을 전문배송업체에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쿠팡이 정 씨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해와 과로사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배송 기사가 쿠팡에 직고용된 것이 아닌 하청배송업체 소속이라도 쿠팡은 카카오톡을 통해 입차시간 보고, 매일 배송 업무 지시 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업무 지시를 해왔다"며 "쿠팡은 과로사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택배노조, 쿠팡 대표 고발…"중처법 위반 책임져야"
 
택배노조는 쿠팡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서울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택배노조는 고발장에서 사망한 정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종사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조혜진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고 있다면 종사자로 인정하고 있다"며 "정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종사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의 적용을 받는 종사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뿐 아니라 '위탁 계약 등 형식에 관계없이 사업의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택배노조는 쿠팡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쿠팡에서 로켓배송 물량을 위탁했다는 사실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며 "원청인 쿠팡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에 해당해 법상 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고발장에는 정 씨의 과로사가 중대재해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담겼다. 조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사망한 경우를 산재로 규정하고 있다"며 "대검찰청이 과로사도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입증되면 중대재해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해 이번 과로사는 중대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쿠팡이 경영 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쿠팡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하고 있는 안전, 보건 경영방침과 유해, 위험 요인 확인과 개선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과로사 발생과의 인과관계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과로사로 중처법 처벌 전례 無…실제 기소 확률은?
 
다만 근로자의 과로사로 인해 사업주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례는 없다. 또한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검찰 송치와 기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어 택배노조의 이번 고발이 실제 기소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법조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2년간 중대재해는 510건 발생했지만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00여 건, 기소까지 이어진 사건은 40여 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과로사의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 원인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규정의 모호성이 꼽힌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은 안전 의무 이행 여부, 인과관계, 예측 가능성"이라며 "과로사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규정이 모호해 어떤 의무를 위반했는지 특정하기 어려워 기소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도 기소와 처벌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과로사는 근로자의 지병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인과관계 입증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홍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과로사에 의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인정되려면 업무 수행과 사망 간의 인과관계 입증이 필요하다"며 "같은 업무를 해도 근로자들마다 컨디션, 지병 여부에 따라 피로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어 인과관계 입증이 다른 중대재해 사건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로사에 의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인정되려면 회사의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업무 수행과 사망 간의 명확한 인과관계 입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도 "설사 회사의 과로사와 관련된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워 기소 확률은 낮다"며 "인과관계 입증도 어렵고 경영 책임자의 예측 가능성도 인정될 확률이 낮아 실제 기소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