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가게에서 여성 종업원이 근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낮은 여성고용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여성고용률은 2023년 기준 61.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1위다. OECD 평균 여성고용률은 동년 기준 68.4%로, 한국 여성고용률보다 약 7% 높은 수치다.

통계청이 2023년 한국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를 중심으로 활동 상태를 조사한 결과, '육아 및 가사' 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인 여성이 64.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재학ㆍ수강(15.7%) ▲연로(10.6%) ▲기타(7.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일각에서는 "유연근무제가 여성고용률 높인다"

육아와 가사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가로 막는 원인이라면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이 같은 접근에서 '유연근무제'가 낮은 여성고용률의 해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유연근무제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합의하에 근무시간, 근무일, 근무장소 등을 선택 및 조정해 근무환경을 유연화하는 제도다. 대표적은 유연근무제의 유형으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제 등이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한국에서 특히 1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고용률이 해외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점을 지적하면서 근로환경이 경직돼 있어 고용환경이 열악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30-50 클럽'에 이름을 올린 국가 중 '1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고용률' 최하위를 기록했다. 30-50 클럽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국가로, 한국과 비슷한 경제 규모와 인구를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 2021년 기준 30-50클럽 7개국 중 1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고용률은 ▲일본(74.8%) ▲영국(74.2%) ▲프랑스(73.9%) ▲독일(73.8%) ▲미국(67.1%) ▲이탈리아(57.2%) ▲한국(56.2%) 순으로 높았다.

한경협은 "우리나라는 육아 및 가사 부담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한국이 여성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유연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등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과 함께 가족돌봄 지원을 강화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또한 유연근무제를 여성고용률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이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4월 개최된 '유연한 근무를 뉴노멀로-성 격차 해소와 저출생 해결의 열쇠' 세미나에서 "OECD 주요국 통계에 따르면 유연근무제 사용률이 높은 국가는 여성고용률이 높다"고 발표했다.

정 연구위원은 "유연근무제 시행 기업은 시행하지 않은 기업보다 여성 취업자가 4.7% 증가했으며,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유연근무제 시행에 따라 여성고용 효과가 6.8%p 차이가 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유연근무제를 사용할 수 있다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지금보다 더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 "여성 일자리 질부터 높여야"

하지만 노동계는 유연근무제가 여성고용률을 올리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노동계는 여성고용률을 제고하기 위해선 여성 일자리의 질부터 높여야 하는데, 유연근무제는 오히려 여성 일자리의 질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유연근무제가 제도적으로 도입돼 확대될 경우 오히려 여성 근로자들의 근무가 불규칙해지고, 고용불안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허윤정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여성청년본부 실장은 "유럽 등의 국가에서 유연근무제가 여성고용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서도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보장하긴 어렵다"며 "유연근무제는 한국에서 여성고용률을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일자리의 질 또한 저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문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여성고용률이 제고되지 않는 것은 처우나 근무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지, 근무시간 등이 경직돼 있어서가 아니"라며 "고용불안 문제와 일자리 질 개선을 핵심적으로 정비하면 여성고용률은 함께 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경윤 민주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고용률은 경력 단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경력단절은 임신, 출산과 돌봄에 대한 성역할의 문제가 해결돼야 할 문제이지, 근무시간 등이 유연화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며 "지금도 2명 중 1명의 여성이 비정규직이고 초단시간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이 많은데, 유연근무제는 이러한 여성 일자리의 질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노동계가 바라보는 해법은 무엇일까. 노동계는 돌봄노동에 긴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여성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근로시간 단축, 남성 육아휴직 확대 등이 대표적인 예다.

허 실장은 "여성고용률을 높이려면 근로시간 단축, 남성 육아휴직 확대, 돌봄의 사회화 등을 통해 가정 내 여성의 돌봄 부담이 줄어야 한다"며 "또한 일ㆍ가정 양립 제도가 도입ㆍ시행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활용하기 힘든 현실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경력단절, 있는 제도부터 잘 활용해야"

전문가는 여성고용률이 낮은 원인으로 사회구조적 문제를 꼽으면서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일ㆍ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기존 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동계와 마찬가지로 일자리의 질적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OECD 38개국 중 31위로 최하위권인 동시에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2022년 기준 31.2%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큰 성별임금격차를 기록했다.

여성의 경력단절 지표를 나타내는 M자형 곡선 또한 주목했다. M자형 곡선이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연령대별로 봤을 때 알파벳 M자와 같은 곡선을 그려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한국 여성들이 20대 때는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이지만 30대에 경력단절으로 급격하게 경제활동 참가율이 감소하다가 이후 나이가 들면 다시 경제활동에 참가하게 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고용의 양적인 부분은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질적인 부분은 여전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 한국의 성차별과 연령차별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가 여성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성차별적인 인식을 고치고 정부 차원에서 법ㆍ제도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성차별적 성역할 인식 때문에 여성이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구조"라며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함께 작용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상향평준화된 사교육 때문에 M자형 곡선이 심해지는 경향도 있다. 자녀가 아주 어릴 때는 육아휴직 등으로 버티던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자녀가 사교육을 시작할 나이가 되면 직장에서 버티기 어려워진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잘 활용하고 안착시키는 것이 여성고용률 제고의 첫 걸음이라고 제언했다.

고용부는 일ㆍ가정 양립 사업 등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은 적극 참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 연구위원은 "아직 한국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M자형 곡선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고용률을 높이려면 경력단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경력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일ㆍ생활 균형 사업을 중소기업과 여성 비율이 높은 비정규직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법 제도가 일ㆍ가정 양립 부분에 있어 선진국보다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사업장에서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여전히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이 많은 만큼, 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지금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