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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1. 들어가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인간의 사고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기계'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수행하는 일체의 정신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것을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 목표를 위한 입력값을 통해 현실 또는 가상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예측, 내용, 권고, 결정과 같은 출력값 생성을 추론하는 기계 기반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인공지능 시스템은 기계 또는 인간에 기반한 데이터 및 입력값(Inputs)을 사용해 ①실제 또는 가상 환경을 인식하고 ②기계학습 등 자동화된 방식이나 수동(手動)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인식을 모델(Model)로 추상화하고 ③이러한 모델을 사용해 결과(Outcomes)에 대한 선택을 공식화(Formulate)한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의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법과 관련해 채용 등 고용상 의사결정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초래할 수 있는 새로운 차별[특히 프록시(Proxy) 차별]의 문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한 노동 통제 강화, 인공지능에 의한 의사결정 투명성과 책임성 문제, 인공지능 기술 도입에 관한 노사 공동 결정 등 다뤄야 할 주제가 산적해 있다. 다만 이 글에서는 다양한 쟁점 중 인공지능의 활용과 관련된 고용정책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인공지능 발달에 대응한 고용정책의 과제
가.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방향성 : 자동화보다 증강
인공지능 발전으로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 점점 더 가시화되면서 일반적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따라서 인공지능 발달에 대응하기 위한 고용정책의 우선 과제는 기술 발전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즉 인공지능 기술로 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자동화) 대신 노동을 보조하는 방향(증강)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다수의 근로자가 인공지능의 도입에 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자동화다.
Acemoglu(2021)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타 기술에 대한 투자는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 투자를 통한 기업의 비용 절감, 주주 가치 증대, 이익 증대를 통한 사적 인센티브(Private Incentive-Driven)는 자동화와 근로자 업무 증강 간 사회적인 최적 분할에서 멀어질 수 있다. 영리기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익 극대화이므로 특별한 규제가 없는 한 기업은 자신의 수익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기업에 의한 인공지능의 개발과 도입은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의 임금과 고용의 최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간극(間隙)을 바로잡기 위해 공공 자금을 활용해 업무 자동화 대신 업무 증강을 위한 인공지능 연구를 장려하고 촉진해야 한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민간 연구와 달리 공공 자금이 지원되는 학술 연구는 인공지능이 근로자의 임금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 알고리즘이 시장의 반경쟁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 등 보다 광범위한 영역을 다룰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공공 부문에 의한 인공지능 연구는 그 초점을 인공지능이 현재의 업무에서 근로자를 증강하는가와 인공지능이 근로자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노동 보조적 기술 혁신). 또한 정부는 인공지능 시스템 조달을 통해 근로자를 증강하는 인공지능 개발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노동 보조적 기술 혁신이 사회서비스 공급과 결합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서비스의 고도화(품질 제고)를 실현할 수 있다. 또한 사회서비스를 강화할 경우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함은 물론 복지 지출을 활용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일자리 저수지를 구축할 수 있다.
나. 숙련(熟練)에 관한 새로운 관점
1) 숙련의 전달체계
산업구조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은 노동자가 수행할 작업 자체를 변화시키고 이는 기존 숙련의 중요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숙련 요소에 대한 수요를 발생시킨다. 급속한 기술변화의 시대에서 기술력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사용자가 요구로 하는 일 간 불일치로 인해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의 활용도 감소와 이로 인한 경제성장의 속도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삶은 연속적인데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일자리는 툭툭 끊기는 불안정성이 심화된다. 따라서 이제는 정태적(情態的)인 일자리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동태적(動態的)인 경력에 대한 권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직무교육에 대한 공평한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 나아가 사람들이 생애 전체에 걸쳐 진정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하나의 노동 형태에서 다른 노동 형태로 전환할 수 있으며, 사생활과 직업 생활을 조화시킬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급속한 기술발달과 이로 인해 기업이 근로자에게 요구하는 기능의 변화는 기업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업 내에서 근로자를 교육해야 할 유인을 줄이고 있다. 이처럼 종래 내부노동시장이 제공하던 직업능력개발의 기회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외부노동시장이 이를 보충하지 못할 경우 사회경제적 비경제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외부노동시장의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경력이 원활하게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차원에서 경력 형성 및 발전의 기회를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직무교육을 기존의 OJT(On the Job Training, 직장 내 훈련) 중심에서 공적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사회서비스의 성격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직업교육 접근권이 국민의 보편적 권리라는 관점에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공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제공해야 한다. 직업교육 접근권의 규범적 근거는 헌법상 근로의 권리에서 도출할 수 있다. 헌법 제32조 제1항 제1문이 규정하는 근로의 권리는 단순한 생활 보장 수단이 아니라 취업 자체 의미에 대한 권리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직업교육 장소는 직업교육 후 직업 선택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직업교육장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직업교육장 선택의 자유)도 직업 선택의 자유에 포함된다. 또한 직업 선택의 자유에서 직업교육을 받을 권리를 도출하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편 직업교육의 보편적 접근을 위한 기본적인 제도 방향으로는 ①모든 국민이 기술의 발전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응력 제고 ②이렇게 성취된 적응력을 활용해 직장을 찾는 취업 능력의 제고 ③적응력 및 취업 능력 제고를 위한 국가의 지원정책으로 노동시장 서비스 정비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직업훈련을 포함한 교육체계의 전반적인 구성은 일반적으로 산업구조의 형성을 전제로 한다. 이는 완성되기까지 절대적인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완성 이전에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할 때 미래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예상해 그 역량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교육 시스템 전체를 개선하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한편 향후 근로자 자신이 주도하는 개인적인 교육훈련의 수요가 늘어나면 이에 대응한 지원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현재 근로자가 개인적인 교육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곤란한 주된 원인은 시간 부족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근로자가 개인적 교육훈련을 위해 일시 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훈련 휴가에 관한 권리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저소득·저숙련 노동자들의 경우 소위 N잡러가 많으므로, 이들의 교육훈련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일자리 중 하나를 중단하거나 근로시간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실업급여 이중 취득 허용과 부분 실업급여 도입이 필요하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직업훈련의 품질 향상 및 고용서비스 인프라 개선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
학교 교육이 제공할 수 있는 직업능력개발은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므로 특정 산업·기업·직무에 필요한 직업능력은 일정 기간 실제로 일을 하면서 익혀 나갈 수밖에 없다. 이는 불가피하게 직업훈련에 관한 실질적 불평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근로자의 사회경제적으로 유익한 직업능력을 습득을 돕기 위해서는 능력과 의욕에 상응한 기회균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내부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구직자, 기타 취업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미래 숙련 기술에 대한 교육훈련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외부 노동시장 직업훈련은 기업 내부 직업훈련과는 달리 특정 직무 및 이에 필요한 기능 육성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외부 노동시장 직업훈련은 산업구조의 급속한 전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장래의 직무나 기능에 착안한 훈련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장래의 직무나 기능에 착안한 훈련이 실질적인 취업 능력의 제고라는 효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므로 최대한 신속하게 관련 정책을 설계 및 집행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교육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창의적 교육을 강화해 미래 세대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강화해 산업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고용 분야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맞춤형 공공고용 서비스를 강화해 일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교육 내용에 관해서는 생산기술 변화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보다 섬세한 고려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정책 설계에 있어서도 정부는 대기업 참여 유도와 지원을 목표로 일반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나아가 모든 국민이 사회적 시민권을 가진다는 관점에서 직업 교육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교육을 사회보장이나 사회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해야 할 것이다.
향후 근로자 자신이 주도하는 개인적인 교육훈련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이 늘어나며 이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인바 개인적인 교육훈련 참여가 어려운 주된 원인은 시간 부족에 있다. 이러한 수요에 대한 직접적인 정책 대응은 직업훈련을 희망하는 구직자와 근로자의 시간 지원에 관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먼저 임금근로자가 직업능력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훈련 휴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개인적 교육훈련을 위한 일시 휴직 제도의 정비, 교육훈련 비용의 자기 부담에 대한 금전적 지원, 개인적 교육훈련으로 직업능력을 향상한 자에 대한 기업 내 처우 보장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기업 내부 직업훈련은 훈련 인원과 비용 측면에서 현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바 향후 노동이동 증가를 고려할 때 기업 내부 직업훈련도 노동이동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범용성 있는 일반 역량 강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산업구조 전환에 취약한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한 지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시민권 기반의 직업능력개발 체계에서는 개인 주도 훈련 비중이 확대될 것인바 개인 주도의 직업훈련이 장기적인 직업능력개발 및 경력 축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상담을 통한 포괄적 고용서비스가 요구된다. 포괄적인 고용서비스를 위해서는 단순히 상담 인력을 확충하는 것뿐 아니라 상담 인력을 육성하고 역량을 개발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업훈련 종사자의 고용조건이나 처우개선 강화는 물론 자격관리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훈련 품질의 향상을 위해 훈련기관의 대형화와 전문화가 필요할 것이며 직업훈련 내용에서도 훈련 과정 표준화 및 훈련 성과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 및 환류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2) 교육의 내용
독일의 경우 최근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을 위한 초기 직업훈련(듀얼 시스템)에서의 공인 훈련 직종의 갱신과 훈련 내용의 재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2021. 8. 1.부터는 모든 초기 직업훈련에서 공통적으로 수학해야 하는 표준 직업 프로파일 항목이 변경돼 훈련 내용에 디지털화된 노동환경이라는 분야가 추가됐다. 독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Bundesinstitut für Berufsbildung, BIBB)에 따르면 듀얼 시스템에는 훈련생의 인격 성장에 기여한다는 중요한 교육 임무가 있어 자립성, 책임감, 사회적 능력이 높은 숙련 노동자 육성이 중시되고 있다. 이에 종래부터 모든 직종에서 공통적으로 익혀야 할 기능·지식·능력을 얻기 위한 훈련으로서 표준항목을 설정하고, 모든 훈련생이 이를 학습하는 것 외에 별도로 각 직종에 필요한 고유의 훈련을 받는다. 한편 공통적으로 익혀야 할 기능·지식·능력은 시대에 따라 크게 변화하고 있어 최근 표준 항목 쇄신에 대한 요구가 강해졌다. 이에 BIBB는 2020년 훈련 관계자의 논의를 통해 새로운 표준 항목을 수립했다.
개정된 표준항목은 ①초기직업훈련 실시사업소의 조직, 직업 교육, 노동법, 단체협약법 ②노동 안전 및 건강 ③환경보호 및 지속가능성 ④디지털화된 노동환경의 4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표에서 음영으로 표시한 디지털화된 노동환경은 신규로 추가된 분야로 디지털 매체나 디지털 데이터의 취급이나 가짜뉴스의 증가를 배경으로 중요도가 증가한 정보 수집·평가 능력 등의 학습이 내용이 된다. 나아가 디지털 노동환경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및 사회적 능력도 사회의 다양성과 상호 존중의 관점에서 고려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