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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노동법률)
모든 노사 갈등이 노동위원회 판정이나 법원 판결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에 앞서 노사가 화해의 손을 맞잡기도 한다. 승자만 웃고, 패자는 우는 노사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한 발씩 양보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노사관계를 위해 노동위원회가 나선다. 그 중심에 임기 2년 차를 맞은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있다.
김 위원장은 취임하면서 ▲대안적 분쟁 해결(ADR) 활성화 ▲디지털 노동위원회 ▲글로벌 노동위원회를 목표로 제시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노동위원회의 새로운 청사진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세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고 올해는 ADR이 활성화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노동법률이 3월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노위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그가 그리는 노동위원회에 관해 물었다.
Q. ADR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왜 ADR인가.
A. ADR 활성화는 중노위원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제시했던 목표다. 중노위원장 임명장을 받고 노동위원회 사건을 검토해 보니 기존의 분쟁 해결 방식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노사분쟁은 일방이 아닌 쌍방의 잘못으로 발생한다. 또 노사분쟁에 있어서 노동위원회나 법원이 아무리 조사에 나선다 해도 당사자들보다 사정을 잘 알 수 없다. 노동위원회가 판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 양보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사관계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지금껏 그래왔다. 사법기관인 법원도 조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노동위원회가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
Q. 지난해 병원, 철도, 버스 등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나서 갈등을 풀기도 했다.
A. 병원, 철도, 버스는 항상 파업에 돌입하던 사업장들이었다. 그렇지만 지난해만큼은 ADR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노사에 제안했고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었다.
ADR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수용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노조가 파업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생각하면서 ADR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파업을 하기 전에 조정을 거치는 것이 파업을 제한한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지난해는 이러한 기류에서 ADR에 강점이 있는 노동위원회가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정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노조의 인식도 함께 바뀐다면 더 많은 사례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Q. 노동위원회는 집단적 노사관계뿐 아니라 개별적 근로관계에서도 ADR을 활용하는 '직장인 고충 솔루션'을 도입했다. 지난해 업무협약(MOU)을 통해 일부 기업에 시행하기도 했다.
A. 직장인 고충 솔루션은 노동위원회가 ADR 전문가를 사업장에 보내 직장 내 괴롭힘 등 각종 문제 해결을 돕는 것이다. ADR 전문가는 사업장 내에서 옴부즈맨(Ombudsman) 역할을 하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 직장인 고충 솔루션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규모 있는 제조업체와도 MOU 체결을 앞두고 있다.
직장인 고충 솔루션을 이용하면 직장 내 괴롭힘을 기업 내부에서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차별 사건 중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분쟁 해결 제도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 중심으로 짜여 있고 개별적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그렇다고 회사 외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해결하면 피해자가 일터로 복귀하기 어려워진다. 직장 내 괴롭힘 해결의 핵심은 가해자 징계가 아닌 '피해자의 원만한 직장생활 복귀'다. 법원, 행정기관까지 갔던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직장에 복귀하는 것은 어렵다. 기업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해결돼야 하는 이유다. ADR 전문가가 기업 내에서 옴부즈맨 역할을 하면 직장 내 괴롭힘 처리가 수월해지고 괴롭힘 신고 악용이나 남용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 고충 솔루션을 도입한 기업에서는 노사 모두 만족도가 높다. 앞으로 MOU 체결 기업을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Q 노사 분쟁이 발생하면 반드시 ADR을 거치도록 하는 해외 국가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조정전치주의가 적용되고 있다.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 등에도 조정전치주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보는가.
A. 우리나라도 조정전치주의 확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조정전치주의가 파업권을 제한한다는 우려 때문에 쟁의행위 전 10일간 조정을 거치게 하는 등 소극적으로만 활용했다. 그러나 미국은 쟁의행위 30일 전에 반드시 이를 통보하도록 하는 등 조정 기간을 길게 잡고 있다.
쟁의행위뿐 아니라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도 당연히 조정전치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해고나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는 개인이 받는 심리적 충격이 크고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감정이 크게 상하게 돼 무조건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런 경우일수록 갈등의 원인에 대해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차분히 해결하고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 조정전치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조정은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것이 아닌 당사자 간 오해와 분노를 풀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오해를 받아 안타깝다. 조정전치주의가 아니더라도 '화해우선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Q. ADR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 ADR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법률 지식뿐 아닌 사람에 대한 이해도 갖춰야 할 텐데.
A. 4월부터 노동위원회 주관으로 'ADR 스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최고 전문가들이 노동법, 민법은 물론 협상과 의사소통 기술을 강의한다.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을 나누고 각 과정을 이수하면 노동위원회가 이수증을 발급할 계획이다. 신뢰 있는 기관에서 인증해야만 현장에서도 ADR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않나.
ADR 전문가 양성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ADR 스쿨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노동위원회는 ADR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들을 일자리로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기존에 노사갈등을 해결해 온 노무사들도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새로운 관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노사의 권리, 의무만을 고려해 법리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소통과 화해에 대한 능력을 강화할 기회가 될 것이다.
Q. ADR 활성화를 위해 법 제·개정도 고려하고 있나.
A. 법 개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노동위원회법에 ADR 근거를 명확히 하고 민간 ADR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할 생각이다.
우리 노동위원회법은 ADR을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실상 노동위원회는 지나치게 판정 중심으로 가버렸다. 따라서 법 개정을 통해 ADR과 그 지원 근거를 명확하게 마련해야 한다. 또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같은 개별적 근로관계에 대해서도 ADR을 거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민간 ADR 촉진법이다. 우리 법은 노동쟁의에 대해 사적 조정을 허용하고 있지만 활용도가 매우 떨어진다. 민간 ADR 기구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한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조사관들이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노동법률)
Q. 지난해 미국의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나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 등 노동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들을 방문했다. 앞으로 국제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 있나.
A. 지난해 노동위원회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미국 NLRB와 EEOC를 방문했고 올해는 MOU 체결까지 생각하고 있다. 올해는 영국과 교류 물꼬를 트려 한다. 영국은 선진적인 ADR 제도를 갖고 있어 조사관들을 보내 교육을 받게 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해외 노동위원회와 교류할 수 있는 국제 콘퍼런스를 준비 중이다. 이들과 손을 잡고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에 우리의 노사분쟁 해결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분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다. 특히 산업 전환으로 플랫폼 종사자나 프리랜서가 늘어나면서 분쟁이 심화되고 불평등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유사한 고민을 하고 각자의 해결책을 연구하고 있어 상호 교류가 필요하다.
Q. 현재 고용노동청에서 담당하고 있는 임금체불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합의제 행정청인 노동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 현재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은 고용노동청이 담당하고 있는데 사건에 대한 판단을 근로감독관 혼자 하다 보니 노동위원회가 맡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다. 노동위원회는 위원 여러 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서다.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노동위원회가 담당하는 사건 수가 이미 너무 많아 한계치를 넘어섰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은 사실 관계 조사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문제 해결에 노동위원회가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인력 충원 등 투자가 선행되지 않으면 사실상 어렵다.
Q. 노동위원회가 다루는 사건은 근로자성을 전제로 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등 법적 보호 장치가 없는 근로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A.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종사자,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근로자들에게도 노동위원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부는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의 틀 안에 갇혀있다. 노동위원회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노동관계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는 부수적인 문제인데 말이다.
다만 이 경우 노동위원회 업무가 대폭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결국 노동 분쟁 해결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민간 ADR에 쏟아지는 사건만 100만 건이다. 우리나라도 공적 ADR인 노동위원회뿐 아니라 민간 ADR을 강화해야 한다. 예산과 인력 투자가 필요한 문제다.
진정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노동계는 이들을 보호하는 방안으로 노동조합법 개정(노란봉투법)을 주장한다. 그러나 근로자가 아닌 이들한테까지 단체교섭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노동관계법상 근로자이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든 당사자 간 화해하고 조정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Q. 노동 사건은 노동위원회 초심과 재심, 법원 3심을 모두 거치면 사실상 5심제가 된다. 이 때문에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해 중노위 판정을 다투는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A. 노동 사건이 사실상 5심제여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근로자들이다. 따라서 중노위 판정에 대한 소송은 고등법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고등법원에서 사실심과 법률심을 한번 거치고, 대법원에서 판단하면 충분하다. 근로자 권리 보호를 위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근로자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소득 공백과 소송비용으로 인해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신속한 판단은 근로자 권리 구제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Q. 노동위원회 판정과 법원의 판결이 다른 경우가 있다. 노동위원회 판정과 법원 판결, 양측 관계가 어떻게 설정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A. 노동위원회는 준사법적인 기능을 가진 행정기관이다. 따라서 노동위원회가 새로운 법리를 내세워 실험적인 판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새로운 법리를 만들기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사실관계 간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이 노동위원회의 역할이다. 행정기관은 사실관계와 인과관계 명확화에 중점을 두고 법 적용과 해석은 사법부가 하는 것이 삼권분립 정신에도 맞다.
Q. 디지털 노동위원회를 준비 중이다.
A.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방법을 테스트했고 올해는 디지털 노동위원회 구축을 진행 중이다. 디지털 노동위원회를 위해서는 업무 자료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등 업무 프로세스를 전부 바꿔야 한다. 분류 체계는 이미 구축했고 현재 자료를 입력하고 재가공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노동법률)
Q. 현 정부 들어 노사분규일수가 줄었다는 고용부 발표가 있었다. 최근 노사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노사관계 현장이 많이 바뀌고 있다. 특히 노동운동을 오래 한 분들도 이제는 투쟁 일변도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노동위원회 70주년을 맞아 노동 ADR 포럼을 발족했는데 구성원 대부분이 기라성 같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출신이다. 오랫동안 투쟁을 주장했던 사람들도 더 이상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현장의 노조 집행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조합원들이 파업에 순순히 따랐다면 이제는 조합원마다 생각이 제각각이다. 정치파업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조합원도 늘어나고 있다.
Q. 노사관계는 노사 자율로 풀어갈 수 있는 영역이지만 현 정부는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A.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법이 없다면 규칙 없이 반칙이 난무하는 싸움판이 될 것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노사 법치주의에 소극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회계 공시 등 정부가 강조하는 것들은 원래 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현 정부의 노사 법치주의는 법이 명시한 것들을 지키자는 것에 불과하다.
Q.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복귀를 결정해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다. 노사정 대화로 노동 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까.
A. 당장 급물살을 타기는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노사정 모두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공감하고 있는 만큼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문제점에는 공감하지만 진단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협상은 초반에는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그러나 협상 마지막 20%에 의제 80%가 합의되는 것이 협상이다.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도 초반에는 협상이 더딜 수 있다. 처음에 진도가 안 나가더라도 계속 대화하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경사노위는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아젠다를 내고, 노동계가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노동계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근로자 권리 구제를 위해서는 노동계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회적 대화에 임해야 한다.
Q. 남은 임기 동안 어떤 목표를 계획하고 있나.
A. 위원장으로 취임하며 세 가지 목표를 약속했다. 첫째는 ADR 활성화, 둘째는 디지털 노동위원회, 셋째는 글로벌 노동위원회다. 세 가지 모두 시작은 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이것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다만 정부 내에서 노동위원회 위상이 높지 않다 보니 예산과 인력 확보에 항상 어려움이 있다. ADR, 디지털·글로벌 노동위원회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이재헌·이지예 기자 jh59@elabo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