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38부, 6개월 간격으로 같은 판단 두번 내놔
-"정기 고정급에는 재직자 요건 붙이면 무효", 81년 대법원 판례와 결부 
-2013년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단 내린 대법원의 고정성 판단에 영향 줄까


고정적, 계속적으로 지급되는 정기고정급에 붙인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는 고등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38민사부(재판장 박영재)는 지난 5월 14일, 기술보증기금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단한 1심을 뒤집고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자들은 그간 받아온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 중 최소보장 부분은 통상임금이므로 이를 포함해서 재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부족한 수당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회사는 근로자들이 통상임금이라고 주장하는 임금은 보수규정에서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게만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중도퇴사자에게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통상임금의 요건인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이 사건에서는 정기고정급에 재직자조건을 붙인 것이 유효한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재직자조건은 지급일 전에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이미 제공한 근로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한 무효"라고 판단해 근로자들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정기고정급은 그날그날 근로제공의 대가로 받는 것임에도, 재직자 조건을 이유로 지급일 전에 퇴직하면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미 발생한 임금을 일방적으로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어 "재직자 조건이 있어도 이미 제공한 근로의 대가 부분을 지급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는 근로제공의 대가인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서 무효"라며 "재직자조건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 기본급과 정기고정급을 다르게 취급하여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반적으로 정기고정급에 재직자 조건을 붙이는 근거는 주로 근로자가 계속 근로하도록 장려하겠다는 이유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계속근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단도 내렸다.
 
재판부는 "(재직자 조건과) 장기근속자에게 추가적인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계속근로를 장려하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며 "고정급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근로자의 계속근로를 확보하는 것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수단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7조 및 임금보호를 위한 각종 관계 법령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6개월 간격으로 같은 판단 내놓은 민사38부...재직자 요건과 고정성 둘러싼 논쟁 확장될까

 
이번 판결은 지난해 12월 18일에 나온 세아베스틸 임금청구 소송과 결론, 논리구조에서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두 같은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민사 제38부의 작품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주식회사 세아베스틸 소속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거의 흡사한 논리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2017나2025282). 세아베스틸 근로자들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데도 회사 측이 이를 포함하지 않고 퇴직금이나 수당을 산정해 지급했다며 다시 계산해 부족분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회사도 "지급일 이전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재직요건이 붙어있으므로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당시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은 지급기간이 수개월 단위라도 이는 근로의 대가"라며 "그렇다면 재직자조건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 기본급과 정기상여금을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고, 고정급 형태인 정기상여금에 재직자조건을 붙여 지급하지 않는 것은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사실 이번 고등법원 판결과 세아베스틸 사건 모두 지난 81년에 나온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상여금 지급일 전에 퇴직한 근로자가 퇴직일 이전에 근무한 기간에 상응해서 상여금을 달라고 청구한 사건에서 "상여금이 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그 지급액이 확정돼 있다면 이는 '임시 임금'으로 볼 수 없고 '정기지급 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번 고등법원 판결은 이 논리를 근거로 '성과급이든 상여금이던 계속적이고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은 근로의 대가며, 엄연한 근로의 대가에 재직자요건을 붙여 지급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재판부는 "(형식적으로 성과 연봉이라고 해도) 계속,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형태의 정기고정급은 '성과연봉' 성질이 아니며, 오히려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수령을 기대하는 임금"이라고 판시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도 올해 2월 노동연구원에 발표한 기고에서 "정기상여금에 '상여'라는 명칭이 사용됐어도, 고정적 금액이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형태라면 더 이상 본래 의미의 '상여'의 성질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런 해석은 지난 2013년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사건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고정성 판단과 얼핏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만큼, 논란이 확장되는 모양새다. 하급심에서 이 같은 판결이 연달아 나오면서 추후 대법원 판단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를 견해가 엇갈리는 것.
 
한 대형로펌 노동팀 변호사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재직자 조건의 효력이 인정되는 것을 전제로 고정성 여부를 판단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재직자 조건 설정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한 점에서 81년 판결과 결을 같이 하며, 2013년 전원합의체 판단과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여 대법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변호사는 "2013년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이 재직자 조건이 붙은 임금 항목의 고정성을 부정한 것은 맞지만, 재직자 조건이 모든 임금 항목에 있어서 항상 유효하게 인정될지에 대해서는 판단 자체가 없었다"며 "이번 고등법원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전합판결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곽용희 기자 kyh@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