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이지예 기자 jyjy@) 

노조 상급단체가 주최한 노동절 행사 중 당한 교통사고도 업무상 재해라는 근로복지공단 판단이 나왔다. 공단은 당초 상급단체의 행사는 회사 업무와 관련 없다면서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공단 산재심사위원회는 이를 뒤집었다. 상급단체가 주최한 행사라도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 산재 대상 업무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노동절 집회도 통상적인 노조 업무"...업무상 재해 인정

15일 노동계에 따르면 최근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위원회는 현대카드 근로자 A 씨의 최초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산재심사위원회는 지난달 21일 "A 씨의 지위와 행사에 참가하게 된 경위, 행사의 주된 목적이나 내용에 비춰볼 때 (노동절 행사 참가는) 사용자의 노무관리와 무관한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며 " A 씨의 사고는 노동조합 업무에 수반하는 통상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금융노조) 현대카드지부 조합원으로 근로시간면제자다. 그는 지난 5월 1일 사무금융노조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절 행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업무뿐 아니라 운동경기나 야유회, 등산대회 등 행사 중 발생한 사고도 업무상 재해가 될 수 있다. 근로자가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노무관리나 사업운영상 필요하다고 인정된다면 산재가 된다.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도 산업재해 대상이다. 불법적 노조활동이나 사용자의 사업과 무관한 활동, 쟁의행위 이후 활동이 아니라면 근로시간면제자에 대해 산재를 인정하는 것이 공단 지침이다.
 
그러나 A 씨의 요양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 씨가 요양을 신청한 공단 서울남부지사는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절 집회가 현대카드의 노무관리와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산재심사위원회에 다시 심사를 요청했다. 상급단체가 주최한 노동절 집회도 노동조합의 활동의 일환으로서 산재 대상 업무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산재심사위원회는 서울남부지사의 판단을 뒤집고 A 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산재심사위원회는 노동절 집회가 사무금융노조의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무금융노조는 노동절 행사 비용을 직접 부담했다. 집회의 목적과 내용은 "노동절 기념, 해고 금지, 총고용 보장, 불평등 타파" 등으로 불법적이거나 노무관리와 무관하지 않았다.
 
근로시간면제자가 회사에 활동 내용을 사전에 보고해야 했는지도 고려됐다. 현대카드의 경우 노동조합의 내부적인 운영위원회나 감사 등에 대해서는 일정과 참석자를 회사에 사전 공유했다. 다만 상급단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의무적으로 미리 보고해야 할 사항이 아니었다.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에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은 것이다.

산재심사위원회는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에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았다면 상급단체 활동이라고 해서 업무와의 관련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근로시간면제자 업무상 재해, 분쟁 나온 이유는

근로시간면제자의 업무상 사고가 산재에 해당하는지는 2018년 이후로 일단락된 문제다.

근로시간면제자는 노동조합 업무만 전담하는 자다. 과거에는 근로시간면제자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이들의 활동을 산재 대상 업무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법원은 근로시간면제자가 근로자이고 이들의 활동도 업무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고용노동부와 공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용부와 공단의 입장은 2018년에서야 변경됐다. 근로시간면제자의 급여도 근로의 대가인 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의 영향이다. 고용부는 그해 7월 근로시간면제자를 산재보험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고 노조 전임 활동을 업무로 인정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뒤이어 공단에도 노조 전임자 산재 인정 기준 지침이 내려왔다. 불법적 노조활동, 사용자의 사업과 무관한 활동, 쟁의행위 이후 활동 중 사고가 아니라면 산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침 개정으로 관련 분쟁도 어느 정도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노동절 집회의 주최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사무금융노조가 주최한 활동이라면 공단 지침에 따라 산재로 인정될 수 있었겠지만 상급단체 활동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이견이 나온 것이다.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을 사전 보고하거나 활동 범위를 정하는 관행이 없었던 점도 판단에 걸림돌이 됐다. 상급단체 활동이더라도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면제자의 활동을 사전 보고했다면 해당 활동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활동 범위를 사전에 전한 경우 그 범위 내 활동이라면 업무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로시간면제제도 도입 시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을 회사에 사전 승인받게 하는 것은 고용부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사무금융노조는 상급단체 주최 활동이라는 이유로 업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면 근로시간면제자의 업무를 과도하게 축소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면제자는 사용자로부터 노무관리 업무를 포괄적으로 위임받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제고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업무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근로시간면제자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기로 사용자와 합의했다면 사용자에게 사전 보고나 사후 승인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업무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무금융노조는 "이번 결정은 공단이 근로시간면제자의 '업무'에 대한 해석에서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지금이라도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시간면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축소해석을 중단하고 노동조합법에 부합하는 결정을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A 씨 측을 대리한 신은정 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노동조합이 실질적인 정체성을 정립하려면 당연히 상급 단체와 함께 활동할 수밖에 없고 상급단체에 근로시간면제자를 파견할 수도 있어 상급단체 활동이 불가피하다"면서 "근로시간면제자는 회사로부터 노무관리 업무를 포괄적으로 위임받아 노동조합 활동에 전임하면서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전체를 업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