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을 개최했다. 협의회 소속 8개 노동조합은 자율, 공정, 상식, 새로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협의회를 운영해 나갈 것을 밝혔다. (사진=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일명 MZ세대로 불리는 20ㆍ30대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등장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조직의 수평성과 자율성을 중요시하고 자율, 공정, 상식, 새로움이라는 핵심가치를 추구한다. 채용과 성과급의 공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머리띠를 두르고 팔뚝질하는 틀에 박힌 집회 대신 다양한 쟁의행위 방식을 모색한다. 기존 노조와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의 등장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등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정' 추구하는 소수ㆍ신생노조들 뭉쳐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지난 21일 발대식을 개최하고 공식 출범을 알렸다.
협의회엔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노조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노조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부산관광공사 열린노동조합 ▲LS일렉트릭 사무노동조합 등 8개 사업장 노조가 참여한다.
이들 노조는 사업장 안에서 제2노조, 제3노조로 불리는 소수노조이자 만들어진 지 2~3년 정도 된 신생노조다. 기존 생산직 위주의 노조에서 소외받은 사무직이나 연구직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조합원 숫자도 적고 세도 약하다 보니 사업장 안에서 목소리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다수노조가 교섭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엔 교섭권을 확보하지 못해 창구단일화절차에 참여하는 정도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곳도 있다.
8개 노조 대표자들은 노조가 처음이라서 겪는 고충, 주류 목소리가 아니라서 겪는 한계, 노조 운영방식 및 지향점 등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연대해나가자며 만든 것이 지금의 협의회다.
협의회 안에서 8개 노조 대표자들은 한 사람의 위원으로 활동한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위원장이 의장을,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론노조 위원장이 부의장을 맡았다. 하지만 의장이나 부의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권한이 더 주어지지 않는다. 각 위원들 모두에게 자율성을 부여해 평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이들이 중시하는 가치 중 하나다.
협의회의 바탕이 되는 핵심 키워드는 ▲자율 ▲공정 ▲상식적ㆍ합리적 ▲새로움 네 가지다. 송시영 부의장은 "핵심 키워드 네 가지는 협의회를 설명할 수 있는 정체성이자 앞으로 협의회가 가져가야 할 방향성"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명확하다. 우선, 2011년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단일화제도 개선에 나선다.
유준환 의장은 "8개 노조 중엔 교섭권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며 "교섭권이 노조 존폐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교섭권을 침해하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송시영 부의장은 "이는 입법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향후 유관기관을 찾아가 입장문을 전달하고 관련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규직의 공사일반직 전환 등 협의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전환 문제에 대한 해결도 요구한다. 소수 사업장 근로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소속 조합원을 위한 복지 연계사업도 이어갈 계획이다.
특히, 노조 인식 개선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협의회는 시위 등 쟁의행위가 노조의 기본권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일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가 대중에게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심고 있어 새로운 방식을 연구해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송시영 부의장은 "노조의 부당함을 알리는 게 시위의 본질인데 노동조합과 관련 없는 정치적 구호와 일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가 대중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협의회는 새로운 시위 방식을 연구하고 적용해 노조의 본질을 지키는 시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노조'와 완전 다른 길? 공통분모도 존재
최근 협의회를 따라다니는 칭호는 'MZ노조'다. 이 같은 칭호에 대해 협의회는 "우린 스스로를 MZ노조라고 칭한 적 없고 노조 대표자와 조합원 모두가 MZ세대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모든 MZ세대를 대변한다고 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유준환 의장은 "흔히 MZ세대를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가치관과 우리의 가치관이 일치하는 건 맞는 것 같다. 다만, 그러한 가치관이 20ㆍ30대라서, 특정 연령대이기 때문에 일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송시영 부의장은 "현재 협의회 소속 조합원들 세대 구성이 2030대가 많은 건 맞지만, 특정 세대만 조합원으로 가입 받으려고 한 적이 없다"며 "MZ노조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프레임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협의회는 MZ노조로 불리면서 기존 노조, 즉 기성세대가 주축인 노조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노조로 소개되고 있다. 최근 기존 노조로 대표되는 양대 노총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정부는 기존 노조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MZ세대의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득권 강성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고 꼬집었고, 같은 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MZ 세대가 공정과 투명을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본연의 일을 하는 것"이라며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에 힘을 실었다. 정부는 MZ세대의 등장으로 노동개혁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판단한 듯 보인다.
그러나 협의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계획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 노조와 완전히 다른 목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협의회가 발표한 발대식 결의문에 따르면 협의회는 양대 노총이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노동 기본권 실현, 노동자의 경영 참여 등을 결의문에 담았다. 결의문 제1조는 'ILO 협약과 헌법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 노동시장 다원화를 진취적으로 주도할 것'을, 제4조는 '헌법 33조에 따른 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 노동3권 확대ㆍ실현'을, 제8조는 '노동자의 직접적ㆍ적극적 경영 참여를 통한 노동조건의 개선과 건전한 조직문화 확립'을 선포했다.
결의문에 ILO 기본협약 등 보편적 노동권을 담은 이유가 따로 있냐는 발대식 현장 취재진의 질문에 유준환 의장은 "우리 협의회를 두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런 성향이 있을수록 보편적인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 같다"며 "모든 노동자들이 공평한 대우를 받으려면, 본인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의 권리도 침해되지 않는지를 봐야 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공정과 정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특히, 협의회가 첫 번째 과제로 선정한 교섭창구단일화제도 개선 역시 그간 노동계에서 꾸준히 제기했던 요구사항 중 하나로, 협의회와의 접점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양대 노총과 산하 가맹조직 등은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폐지돼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현 제도가 교섭대표노조가 교섭권을 독점하고 있어 소수노조의 교섭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협의회가 지적하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핵심은 '노동조합 본질' 지키는 것"
기존 노조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내용도 있다. 최근 노정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노조 회계 투명성이 대표적이다. 양대 노총은 정부의 회계 장부 제출 요구가 부당한 요구에 해당하며 노조를 비리 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협의회는 양대 노총이 정부의 회계 장부 제출에 반발하는 게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송시영 부의장은 "물론 양대 노총이 우려하고 있는 자율권 침해라는 측면은 우리도 인정하지만, 노조 운영비는 조합원의 노동 대가로 받는 임금의 일부이며, 국가와 지자체 보조금이 들어간 경우엔 공공성을 띠고 있으니 회계 투명성은 깨끗이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집회의 방식과 의제도 기존 노조와는 다른 방식을 추구한다. 협의회는 머리띠를 두르고 팔뚝질하는 틀에 박힌 집회 대신 다양한 쟁의행위 방식을 연구하고 모색할 계획이다. 집회 의제도 '노동조합 본질'에 맞는 것만 의제로 삼는다.
송시영 부의장은 "특정인 석방 운동,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의제는 노동조합의 본질에 맞는 의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불필요한 정치 편향적인 구호를 외치는 대신 노동시장에서의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에선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등 입법이 필요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협의회의 활동이 정치활동과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정책활동과 정치활동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게 가능하냐는 발대식 현장 질문에 유준환 의장은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정부의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치와 완전히 선을 긋겠다는 것은 아니"라며 "다만, 노동과 관련 있는 사안과 안건에 국한하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협의회에 소속된 8개 기업 노조 외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와 SK매직 현장중심 노조 등이 협의체 가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체는 이들을 향해 가입의 문을 열어둔 상황이다. 유준환 의장은 "협의회 가입 기준은 따로 없고 협의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약 6000명 규모인 협의체는 계속해서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