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근로시간제도 개선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뉴시스)

최근 논쟁이 뜨거운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에 대해 경영계가 입을 열었다. 경영계는 "이번 정부 개정안의 핵심은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노동계가 극단적으로 한 주에 최대로 가능한 근로시간 길이만을 강조해 개선 취지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근로시간제도 개선 방향 토론회'를 열고 근로시간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경총과 중기중앙회는 최근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둘러싼 우려를 일축하고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토론회 발제는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고, 이어서 ▲김대환 일자리연대 상임대표 ▲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황인환 한국전기차인프라서비스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부회장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이날 토론회 발제에 나선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근로시간제도 문제점을 진단ㆍ분석하고, 근로시간 유연화와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불가피"…유연근무제 등 개선돼야
 
이정 교수는 현행 근로시간제도의 경직성을 지적하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산업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생산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현행 유연근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유연근무제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활용기간 및 도입요건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 교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최대 6개월)와 선택적 근로시간제(최대 1개월ㆍ신상품 등 연구개발의 경우 3개월)의 경우 사용기간이 너무 짧아 성수기 등 근로가 3~4개월에 걸쳐 집중되는 경우엔 활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연근무제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반드시 거쳐야 해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정 교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해당 직무, 부서원의 의사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노조 등 전체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요건으로 하고 있어 노동조합이 반대할 경우 도입이 어렵다"며 "재량근로시간제는 회사가 업무수행 방법, 근로시간 배분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없어 도입에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 교수는 이처럼 유연근무제가 원활히 도입ㆍ시행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근로시간 총량이 줄어 생산 활동에 어려움이 커진 만큼 근로시간의 유연한 활용을 통해 기존의 생산량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착륙을 위한 제도 보완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개선방안으로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주'에서 '월ㆍ분기ㆍ반기ㆍ연'으로 개편 ▲근로시간계좌제 도입 ▲탄력적 근로시간제ㆍ선택적 근로시간제ㆍ재량근로제ㆍ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개선 ▲연구개발 및 고소득ㆍ전문직 이그젬션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다.
 
① 연장근로 관리단위 '주'에서 '월ㆍ분기ㆍ반기ㆍ연'으로 개편
 
근로시간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현행 '주'에서 '월ㆍ분기ㆍ반기ㆍ연'으로 확대하는 것은 이번 정부 개편안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정 교수는 주요 선진국에선 연장근로 제한이 우리나라만큼 경직적이지 않고, 유연한 근로시간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보다 근로시간이 적다며 미국, 일본 등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의 경우 연장근로에 대한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일본은 연장근로를 1개월 45시간ㆍ1년 360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특별협정을 체결한 경우엔 1개월 100시간ㆍ1년 720시간도 가능하다. 독일은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계좌에 적립해 사후에 정산하는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연간 220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지만 단체협약으로 초과 규정을 둘 수 있다.
 
② 근로시간계좌제 도입
 
근로시간계좌제는 이번 정부 개편안에 '근로시간저축계좌제'라는 이름으로 담겼다.
 
정부 개편안에 담긴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를 적립해 휴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적립 대상은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의 전부 또는 일부다. 근로자 선택에 따라 임금 대신 휴가를 지급한다. 적립한 휴가는 '저축휴가'라는 이름으로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사용할 수 있지만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 사용자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근로시간은 정산하거나 이월한다.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의 근로시간계좌제는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분을 계좌에 적립해 뒀다가 휴가로 소진하는 제도를 말한다. 법령상 도입한 제도가 아니라 단체협약으로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이정 교수는 "독일과 같이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해 기업은 경기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확보하고 근로자는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할 경우 근로자 입장에선 OT수당이 줄어들 수 있어 노동조합 등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엔 실제 도입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독일에서 근로시간계좌제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법제의 특성과 노사관계 및 근로문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 법제 및 노사문화 풍토는 독일과 사뭇 달라 우리나라에 도입해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규제적인 근로시간 및 임금 관련 법제의 유연화,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③ 탄력적 근로시간제ㆍ선택적 근로시간제ㆍ재량근로제ㆍ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단위기간을 현 6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1년에 성수기가 2~3개월에 2번이거나 생산물량을 맞추기 위해 집중 근로가 필요한 시기가 3~4개월이 넘는 경우는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 6개월 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정산기간을 현 1개월(신상품ㆍ신기술 연구개발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고, 기술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기술개발을 위한 R&D 분야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또한, 두 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전체 근로자대표와의 합의가 아닌 팀, 부서, 직무 등 업무단위 근로자대표 합의 또는 대상근로자 과반수 동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재량근로시간제는 대상이 일부 업무에만 한정돼 있다며 대상 업무를 노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 교수는 "산업의 분업화ㆍ전문화로 소프트웨어 개발자, 카피라이터, 건축설계사 등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업무가 증가함에도 현행법상 재량근로제 대상은 일부 업무에만 한정돼 활용에 제한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재량근로시간제선 회사가 업무수행 방법, 근로시간 배분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없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최소한도의 지시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 동의를 받아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제도다. 재난, 인명보호ㆍ안전확보 조치, 시설ㆍ설비 고장 등 돌발상황 수습 등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해당한다.
 
이정 교수는 인가 사유를 '경영상 사정 또는 직무 특정 등으로 한시적으로 주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로 확대할 것과 '선(先) 도입 후(後) 허가'로 도입절차를 간소화할 것을 제안했다. 활용기간도 돌발상황과 업무량 급증일 때 1년간 90일 한도를 180일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때 의사의 면접지도, 취업 장소 및 직무내용의 변경 등 건강권 확보조치가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④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개선
 
이정 교수는 지난해 말 일몰된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대상과 기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는 30인 미만 기업 대상으로 노사 간 합의 시 추가로 8시간까지 근로시간 연장을 허용했던 제도로, 30인 미만 사업장은 지난해까지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추가연장근로 8시간을 더해 주 최대 60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했다.
 
이정 교수는 이러한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가 50인 미만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 교수는 "50인 미만 기업의 경우 초과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이 58.3시간으로 조사됐다"며 "8시간 추가근로가 허용된다면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⑤ 연구개발 및 고소득ㆍ전문직 이그젬션제도 도입
 
마지막으로 전문적인 인력의 경우 근무형태가 다양화됨에 따라 일하는 장소와 시간에서 자유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연구개발 및 고소득ㆍ전문직 이그젬션제도 도입을 제시했다.
 
이정 교수는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수개월의 집중근로가 필요한데 현행 제도로는 집중근로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 대응하기 부족하다"며 "전문직 등 핵심인력들은 근로시간만으로 일의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우므로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보장해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연구개발 및 고소득ㆍ전문직 이그젬션제도를 도입해 해당 분야에 속하는 근로자나 일정 소득 이상인 근로자의 경우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예외로 하자는 게 이정 교수의 설명이다.
 
이정 교수는 발제를 마무리하며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편안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정책적 혼선과 홍보 부족으로 진의가 왜곡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다"며 "국민적 공감대 형성, 개혁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연장근로를 주 단위로 제한해야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의 양적 규제보다는 노동관행과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경제계도 연차휴가 사용 활성화, 생산성 제고 등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윤모 중기중앙회 부회장은 "개편안은 중소기업의 불규칙적인 연장근로 대응과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최근 근로시간과 관련해 일부 왜곡된 주장은 정부가 논의와 소통을 다양화해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