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박지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들어가며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변경이 유효하다'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했다(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 판결).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인정한 기존의 입장을 변경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거치지 아니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원칙적으로 무효이고, 다만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도 유효하다고 봤다.

집단적 동의권 남용의 법리

대법원은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를 제시하면서 (ⅰ)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ⅱ)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ⅲ)근로자 측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이 취업규칙의 변경에 반대하였다는 등 사정이 있는 경우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봤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만으로는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란 대체 무엇인지, 기존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 많은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가 집단적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앞으로 판례가 더욱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상 해고의 사전 합의 조항에 기한 사전동의권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해,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와 유사한 설시를 하고 있어 참조할 만한 부분이 있다.

대법원은 (ⅰ)피징계자가 사용자인 회사에 대하여 중대한 위법행위를 하여 직접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비위사실이 징계사유에 해당함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며, (ⅱ)회사가 노동조합 측과 사전 합의를 위하여 성실하고 진지한 노력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ⅲ)노동조합 측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도 없이 무작정 반대함으로써 사전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등 사정이 있는 경우에 사전동의권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두8788 판결 등).

아래에서는 단체협약에 따라 인정되는 노동조합의 동의(합의)권 남용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기반으로 대법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 적용의 단서를 얻고자 한다.

사례1. 노동조합 임원의 해고에 대한 노동조합의 사전동의권

단체협약상 노동조합 임원을 해고하기 전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파업으로 인해 회사에 매출손실을 입혔고, 기물을 파손했다는 이유로 쟁의대책위원장을 징계해고하려 하자 노동조합이 해고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였던 사안이다. 이 때, 노동조합이 사전동의권을 남용한 것인지 문제됐다.

원심에서는 대상 근로자가 파업을 주도하였고 회사는 징계해고를 하면서 5차례에 걸친 노사협의를 하였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사전동의권을 남용한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ⅰ)대상 근로자를 해고하여야 함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상 근로자가 업무방해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매출손실은 단체교섭 결렬에 따른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 자체로 인한 손해이고, 기물파손은 쟁위행위에서 벗어난 조합원 개인의 일탈 행위로 인한 것이며 대상 근로자가 직접 공모, 지시, 방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두8788 판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ⅰ)비위사실이 징계사유에 해당함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다는 점에 대해, 단순히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해고를 함이 명백한 징계사유에 해당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입장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집단적 동의권에 적용된다면, 단순히 관계 법령이나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해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는 사정만으로는 (ⅰ)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로 인정되기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단순히 관계 법령의 개정 등으로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변경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내용으로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로 좁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사례2. 노동조합 임원의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조합의 사전합의권

단체협약은 노동조합 임원에 대한 면직에 대해 사전에 노동조합과 합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회사는 노동조합의 정책부장인 근로자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면서 노동조합과 사전 합의를 하지 않았는데, 노동조합이 사전합의권을 남용한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ⅰ)정리해고의 필요성과 합리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ⅱ)회사가 노동조합 측과 정리해고에 관한 합의 도출을 위하여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을 다하였는데도, (ⅲ)노동조합 측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이 정리해고 자체를 반대하고 불법적인 쟁위행위에 나아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노동조합이 사전합의권을 포기하였거나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0다38007 판결).

구체적으로, (ⅱ)합의과정에 있어서 약 4개월간 노동조합 측과 인력조정 문제에 관하여 26회에 걸쳐 협의를 하고, 9회에 걸쳐 노동조합에 대해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 및 해고의 기준 등에 관하여 협의를 요청하였다는 점과, 대상 근로자가 스스로 회사가 제시한 전환배치 방안에 따라 전환배치를 신청하였다가 회사가 이를 승인하자 그 신청을 철회한 후 다른 근로자들과 정리해고 철회를 위하여 8회에 걸쳐 본사 로비 등을 점거하고 집단 농성을 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특히,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회사 소유의 건물과 그 관리업무를 수행하던 자회사를 매각하면서 그에 따라 담당 업무가 폐지될 기계·전기직 근로자들 전원을 대상으로 한 정리해고이므로, (ⅲ)노동조합으로서는 정리해고 대상 근로자가 노동조합의 정책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체협약상 사전합의조항을 내세워 정리해고를 거절할 만한 합리적 근거나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해고의 필요성과 합리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상황이라면, 사전합의권 행사를 거부하는 노동조합에게도 적어도 합리적인 이유는 존재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판결 역시 집단적 동의권 남용의 법리를 제시하면서 남용의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으므로, 사전합의권에 비해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이 엄격하게 인정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만약 위와 같은 대법원의 입장이 집단적 동의권에서도 유지된다면, 취업규칙 변경의 필요성이 인정된 경우, (사용자가 동의를 얻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다면) 노동조합이 동의를 거부하는 데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동의권의 남용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ⅰ)변경의 필요성 요건을 좁게 해석하는 대신, (ⅲ)노동조합의 이유 없는 반대 요건은 상대적으로 쉽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며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지하면서 새로운 '집단적 동의권 남용'의 법리를 제시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법관 6명의 별개의견을 비롯해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대법원에서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만큼, 결국 실무적으로는 다양한 사례가 축적되며 '집단적 동의권 남용'의 법리가 구체화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집단적 동의권 남용'에 관해서도 일반적인 정의관념이나 구체적 타당성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대법원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집단적 동의를 구하는 단계는 물론, 취업규칙 변경안 마련부터 사용자 측은 더욱 세심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