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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신성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1. 들어가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그에 따른 인구 구조의 변화가 현실화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에서, 고령 근로자에 대한 적정한 생산 활동 기회의 제공과 이로 인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의 증대가 적정하게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근속연수 증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임금이 인상되는 임금 결정 방식을 일정한 시기 이후에 생산성이나 업무성과에 비례해서 기존의 임금을 줄여나가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거나 연장하는 '임금피크제'도 위와 같은 필요성에 기초해 도입되게 됐다. 오늘날 다수의 기업은 개별 기업 특성에 기초한 임금피크제를 도입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하고 이를 통해 신규 인력 충원 여력을 마련함과 동시에 고령근로자를 포함한 근로자들에게 장기간의 고용관계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임금피크제의 긍정적 효과의 이면에는 임금 삭감 조치에 따라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근로자들이 있었으며, 이에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등을 다투는 소가 지속돼 왔다. 대법원은 2022. 5. 26.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해 무효라는 판시를 하면서 그 유효 여부에 대한 네 가지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이하 '대법원 판결'). 다만 위 기준 및 판단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대한 것이고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동일·유사한 기준 및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논의가 있었다.
최근 KB신용정보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관해 이 대법원 판결의 판단기준을 전제로 무효를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5. 11. 선고 2020가합575036 판결, 이하 '본건 판결')이 선고됐다. 아래에서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관련 하급심 판결들의 태도와 함께 본건 판결을 살펴보는 것을 전제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처가 필요한지까지 간략하게 논하고자 한다.
2. 대법원 판결 이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한 하급심의 태도 및 본건 판결의 취지
대법원 판결의 ①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②대상근로자들의 불이익, ③임금 삭감에 따른 대상조치 여부 및 그 적정성, ④임금피크제로 확보한 재원의 도입 목적에 부합한 사용이라는 네 가지 기준은 원칙적으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국한되는 것으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명시적 판시는 없었으나 대법원 판결 이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대상으로 한 다수의 하급심 판결들에서는 이 네 가지 판단 기준을 최소한 판단의 요소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하급심 판결들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달리 '정년이 연장된 점' 자체를 주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하면서 그 정당성을 상대적으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KT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건(서울고등법원 2023. 2. 19. 선고 2022나2025019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6. 16. 선고 2020가합505662 판결·2019가합592028 판결), 삼성화재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 19. 선고 2020가합604507 판결)은 모두 대법원 판결의 기준을 참고로 하면서 '정년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주요한 보상이며 그에 따라 임금이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에 주목해 그 유효성을 인정했다. 한편, 한국농어촌공사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건 판결 시 대전고등법원은 대법원 판결 법리를 그대로 원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고, 설령 그 판단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전술한 하급심 판결들과 같은 논리에서 그 유효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대전고등법원(청주) 2022. 12. 7. 선고 2022나50254 판결{대법원 2023. 3. 30. 선고 2022다310634 판결(심리불속행)로 확정}].
즉,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한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임금 삭감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서의 정년연장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반영돼 하급심들에서는 대부분 그 유효성이 인정돼 왔고 이는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 본건 판결에서는 기존 하급심 판결들과 유사하게 대법원 판결의 네 가지 기준을 참고기준으로서 활용하면서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무효라는 판결을 했는데 그 주요 판단 근거는 아래와 같다.
가. 대상근로자들의 불이익 과다
본건 판결은 (i)임금피크제 시행 전 근로자들이 수령할 수 있었던 임금 총액과 (ii)임금피크제 시행 후 근로자들이 수령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금 총액을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①임금피크제가 적용된 직원은 직전 연도 연봉의 45~70%를 성과등급에 따라 지급받게 돼 임금이 대폭 삭감되는 점, ②임금피크제 시행 전에는 기존 정년(만 58세)까지 3년간 기존 연간 보수 총액의 약 300%를 받을 수 있던 반면 임금피크제 시행 후에는 5년 동안 최고 수준 등급(직군에 따라 상이)을 달성해야 기존과 같은 300% 이상의 임금 총액을 수령할 수 있는데 성과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이 매우 소수인 점, ③최저 성과를 받았을 때 기존 연봉의 225% 수준에 불과한 점을 기초로 임금 총액이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므로 대상근로자들의 불이익이 과다하다고 판시함.
나. 불이익에 대한 대상 조치
본건 판결은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이 기존의 업무보다 난이도가 낮고 제한적인 업무만을 맡았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불이익에 대한 대상 조치 또한 미비하다는 취지로 판시함.
본건 판결의 핵심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 하더라도 단순히 정년이 연장된 조치로서 그 불이익에 대한 보상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대상근로자들이 임금피크제 적용 이후 연장된 정년 동안 받을 임금의 총액이 정년연장 없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총액을 상당히 하회하게 될 경우 해당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본건 판결의 결론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무효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전술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유효함을 판시한 하급심 판결들과 상반된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은 있으나 본건 판결로 인해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유효성에 대한 판단의 기초나 시각이 전면적으로 변경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본건 판결 역시 종전 하급심 판결들과 유사하게 대법원 판결의 네 가지 기준을 판단의 참고기준으로 삼았고,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라 대상근로자들의 감액되는 임금액과 임금피크제 적용 전의 임금을 비교하는 것 또한 기존 하급심 판결들에서도 유사하게 검토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건 판결 사안에서는 KT, 삼성화재 등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건과는 달리 임금피크제 시행 이후 대상근로자의 임금 총액이 임금피크제 도입 전 임금 총액보다도 상당 부분 감액되게 된다는 특수성이 고려돼 상반된 결론이 도출됐다고 할 것인데, 이러한 판시의 태도는 단순히 정년을 연장한 조치(여타 업무 저감 조치 미비를 전제로)만으로 임금 총액의 감소까지 보전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판단되며, 앞으로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관련 사건에서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기업들은 이 임금 총액 요소에 대한 정확한 계산을 기초로 임금 구조를 형성해야 할 것이고 필요에 따라 개선도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나가며 -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유효하게 적용하기 위해서
전술한 바와 같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인건비 절감 및 추가 투자 등의 재원 마련이라는 기업의 이점 및 장기 고용관계 예측가능성이라는 근로자의 이점이 적정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제도로서 일방에 대한 희생만을 강요할 경우 그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은 정년연장의 대가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며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함으로써 해당 제도 도입 전 대상근로자들이 보유하던 임금 등 권리와 해당 제도 도입 이후 대상근로자들이 보유하게 될 임금 등 권리를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비교함으로써 제도를 설정하고 그 이후로도 관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간명한 기준으로는 본건 판결이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임금피크제 도입 전후 대상근로자들이 수령하게 될 임금 총액을 비교함으로써,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수령하게 될 임금 총액 수준이 기존의 예상됐던 임금 총액보다 감액되지 않도록 설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의 임금 총액'이 '제도 도입 전 임금 총액'보다 감액됐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업무 저감 조치 등이 합리적으로 수반될 경우에는 그 제도의 유효성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대상근로자들의 직무의 성격과 그 난이도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할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난이도 및 성격에 따라 분류된 직무 또는 업무 시간을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후속 조치가 이행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의 도입 및 그에 따른 노사 갈등은 회피할 수 없으므로 임금피크제 정당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조속히 확립돼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위에서 검토한 기준을 기초로 개별 기업들이 도입한 임금피크제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개별 기업에서 관련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적정하지 않을 경우 신속히 개선에 나아가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기업의 존속'과 '근로자의 안정적인 근로 제공'이라는 궁극적 목표 달성이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