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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양지윤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1. 들어가며

근로기준법은 "①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③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은 일반적으로 직장 내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급자가 정당한 업무지시를 내렸음에도 하급자가 반복적으로 이를 따르지 않고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상급자를 압박하는 경우, 상급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경우 등 하급자가 상급자를 상대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래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선고된 하급심 판결 및 노동위원회 판정을 중심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인정 요건 중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의 의미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 요건으로서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일 것을 요구한다.

즉,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려면 ①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에 대해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가 인정돼야 하고(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성), ②가해자가 그와 같은 상태를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행위를 했더라도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행위한 것이 아니라면 근로기준법이 금지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가. 지위의 우위 

일반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지휘명령 관계에서 상위에 있는 경우 또는 회사 내 직위·직급 체계상 상위에 있음을 이용한 경우에는 지위의 우위성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급자로서 피해자에 대한 인사평가 권한 또는 인사상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경우는 물론(수원지방법원 2023. 2. 9. 선고 2022가합10067 판결 등), 그러한 권한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사실상 관리·감독적 관계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라면 지위의 우위성이 인정될 수 있다(서울행정법원 2021. 11. 4. 선고 2020구합90032 판결, 전주지방법원 2014. 8. 13. 선고 2013구합1871 판결 등). 

나. 관계의 우위   

관계의 우위란 상대방이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로 인정되는 경우로서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

즉, 관계의 우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직장 내 직위의 높고 낮음에 한정되지 않고, 개인 대 집단 등 수적 측면, 연령·학벌·성별·출신지·인종 등 인적 속성, 근속연수·전문지식 등 업무역량, 노동조합·직장협의회 등 근로자 조직 구성원인지 여부, 감사·인사부서 소속인지 여부 등 업무의 직장 내 영향력 유무, 정규직인지 여부 등 특정 요소에 대한 사업장 내의 통상적인 사회적 평가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또한 관계의 우위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이를 달리 평가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 역시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이에 경우에 따라서는 동일한 직급의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물론, 하급자의 상급자에 대한 관계의 우위 역시 인정될 수 있다.

예컨대 서울행정법원 2021. 9. 9. 선고 2020구합74627 판결에서는 팀에서 계장으로 근무하던 A가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C 과장과 함께 B 과장에게 소외감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고 사내 메신저를 통해 B 과장에 대한 욕설을 주고받았던 사안에서 상급자인 B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비록 A가 피해자인 B보다 회사 내 직위가 낮았으나, A가 피해자 및 C 과장 단 3명으로 구성된 '콥' 내에서 가장 선임자인 C 과장과 합세하는 수법을 사용해 피해자를 상대로 지위 및 관계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이러한 우위를 바탕으로 피해자를 괴롭힌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2022. 1. 18. 선고 2020구합84143 판결에서는 학교의 청원경찰로 근무하던 A가 동료 청원경찰인 B, C 및 청원경찰 조장 D에게 부당한 업무지시 등을 했던 사안에서 근무경력이나 연령 등을 내세운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가 청원경찰 조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료 청원경찰인 B, C에 대해 자신이 선배이고 연장자임을 강조하면서 지속적으로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고, 조장을 통해 업무지시를 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는 한편 새벽 휴게시간에 휴게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으로 행동한 것에 대해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한 재판부는 A가 자신의 감독자인 청원경찰 조장 D에 대해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거나 비꼬는 말투로 시정할 것을 요구한 행위, 이에 대하여 D가 직접 대면해 이야기할 것을 요구하자 자신의 근무경력이나 연령 등을 내세워 거부하면서 D의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미칠 지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행위 등에 대해 A가 조장의 지도 및 감독권한을 무시하고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D를 괴롭힌 것으로 인정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2022. 6. 24. 선고 2021가합103276 판결에서는 기술연구원의 일반직 연구원인 A가 상급자인 수석연구원 B에 대해 일방적으로 연구과제 책임의 위임을 집요하게 요구하거나 B의 결재서류 수정 요구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면서 폭언을 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급 연구원 C에게 반말을 하면서 '꿇어앉던가', '여기 앉으라고 인마', '돌았나 XX'라고 말한 것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관계의 우위는 지위상 우위와 달리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관계가 포함될 수 있고 행위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사정도 고려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①피해자 B가 A의 상급자이기는 하지만 A가 권한 위임을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요구한 끝에 B로 하여금 권한 위임에 동의하도록 했고 여러 차례 B를 찾아가 큰 소리로 다투기도 했던 사정에 비추어 보면 B가 관계상으로도 A에 대해 우위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②피해자 C는 A와 동급자이고 나이는 A보다 많지만 A가 C를 연장자로서 존중했다고 보이지 않고 평소 A가 C에 대하여 폭언을 자주 했다는 사정을 더해 볼 때 C가 A에 대해 관계상 우위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고 A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그룹원 19명이 그룹장에게 사임을 요구하면서 현수막을 걸거나 홍보물을 뿌리고 연판장을 작성하는 등으로 괴롭힌 사안에서 가해자가 19명인데다가 19명 중 16명이 피해자보다 연장자이고 대부분의 근속 연수도 피해자보다 오래됐던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가해자는 다수 또는 단체로서 피해자와의 관계상 우위에 있다고 보고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다.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성을 이용해 행위한 경우에 인정된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힌 경우라 하더라도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다고 볼 수 없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행정법원 2021. 9. 2. 선고 2020구합68745 판결에서는 영업담당 차장이었던 A가 같은 부서 소속 B 차장과 C 차장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B와 C가 서로 부적절한 사적 관계에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내용)를 입수해 이를 부서 직원들에게 공개 또는 유포하겠다고 협박성 언급을 했던 사안에서 취업규칙에 따른 언어적 괴롭힘(동료 직원을 언어적으로 괴롭힌 경우)에는 해당하지만 근로기준법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가 문자메시지를 입수해 악용한 것일 뿐 그 과정에서 어떠한 지위나 관계의 우위까지 동원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근로기준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3. 마치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에는 단순히 상급자가 그 직위를 이용해 하급자를 괴롭히는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의 신고를 접수한 인사담당자 등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회사 내 직급뿐 아니라 가해자의 수,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 근속연수, 가해자와 피해자의 평소 관계 등을 폭넓게 살펴 관계의 우위가 어느 쪽에 있는지, 나아가 가해자가 그러한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괴롭힌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특히 판단의 기초가 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평소 관계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 직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