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송우용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I. 재직자 조건의 효력에 관한 논의의 흐름
일찍이 대법원은 1980년대에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에 대해 "이 지급기준은 당기 상여금 전액은 당기 말일 현재 재직 중인 자에 대해 지급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이와 달리 당기 지급 기간인 6월을 계속 근무한 자에 한해 지급하며 중도퇴직자에 대해서는 이미 근무한 기간에 해당하는 것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까지 규정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대법원 1981. 11. 24. 선고 81다카174 판결)라거나, "피고 회사 사장이 매기마다 상여금 지급대상자를 각 지급 기간의 말일 즉 6월 말일 또는 12월 말일 현재 재직 중인 자로 정해 그 지급기준을 시달하여 왔다 할지라도 이러한 지급기준이 곧 상여금 지급 기간의 중간에 퇴직한 자에 대한 그 근무기간에 해당하는 상여금의 지급을 배제하는 특별한 규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대법원 1982. 4. 13. 선고 81다카137 판결)라고 판시해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부인하는 일응의 판단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015년 통상임금성의 판단기준과 관련한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지급일 기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은 그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일 것이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된다"고 판단해,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경우 그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들에게만 임금이 지급되는 것이 유효하다는 전제하에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판단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그 이후에도 현재까지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에 대해 그 효력에 대한 별도의 언급 없이 재직자 조건이 유효하다는 전제하에서 해당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후 일부 하급심 법원이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정기 지급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문제된 사안에서 재직자 조건 자체가 효력이 없음을 이유로 해당 임금의 고정성과 통상임금성을 인정하는 판시를 하면서 재직자 조건의 효력 자체에 대한 논쟁이 재개됐다. 나아가 대법원이 지난 2022년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이 무효임을 이유로 해당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심리불속행 상고 기각으로 확정하면서(대법원 2022. 11. 10. 2022다252578, 232592, 252585, 252608 판결) 이에 대한 논쟁은 더욱 거세졌다.
II. 재직자 조건의 효력에 관한 최근 하급심 판결의 태도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에 부여된 재직자 조건의 효력에 대한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아래와 같이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부정하는 사례와 인정하는 사례가 모두 존재한다.
1.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부정한 하급심 판결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부정하는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점을 그 논거로 한다.
(i) 고정적 금액이 계속적ㆍ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고정급 형태의 정기상여금은 임금, 즉 근로의 대가에 해당하고 그 지급 기간이 수개월 단위인 경우에도 이는 근로의 대가를 수개월간 누적해 후불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정기상여금의 지급일 이전에 퇴직하는 근로자도 퇴직 전에 자신이 실제로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에 대해서는 근로의 대가로서 당연히 그 지급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직자조건이 지급일 전에 퇴직하는 근로자에 대해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는 한 이는 이미 발생한 임금에 대한 일방적인 부지급의 선언 또는 이미 제공한 근로의 대가로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서 무효다.
(ii) 고정급 형태의 정기상여금은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 및 근로자의 생활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기본급에 준하는 임금으로서의 실질을 가지므로 재직조건의 유효성을 판단함에 있어 기본급과 달리 볼 이유가 없다. 따라서 기본급에 재직자조건을 부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고정급 형태의 정기상여금에 재직자조건을 부가해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
(iii) 이미 발생한 후불임금인 정기상여금의 부지급이라는 경제적 구속을 통해 근로자의 계속근로를 확보하는 것은, 강제근로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7조 및 임금보호를 위한 각종 관계 법령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하에서 각 하급심 법원은 ①월간 통상임금 및 25시간의 시간 외 수당의 800%를 매년 짝수월에 각 100%씩, 4월에 200%, 7월에 100%를 각 지급기준일 당시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해 지급하는 형태의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문제된 사안(서울고등법원 2018. 12. 18. 선고 2017나2025282 판결), ②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해 간부직에는 연 410%을 4월, 5월, 6월, 11월, 12월에 각 50%, 1월, 7월에 각 55%를, 비간부직에는 연 600%를 2월, 8월을 제외한 매월 각 60%씩 지급하는 기본성과연봉 및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간부직에게는 연 390%를 2월, 8월에 각 100%, 3월, 9월에 각 95%를, 비간부직에게는 연 200%를 2월, 8월에 각 100% 기준으로 차등 지급하는 내부평가성과연봉 중 최소보장 부분의 통상임금성이 각 문제된 사안(서울고등법원 2019. 5. 14. 선고 2016나2087702 판결), ③평가년도(직전년도)의 소속 기관 평가등급을 기준으로 차등해 지급하는 내부평가성과급에 대해 2013년~2015년에는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지 않았으나, 2016년부터는 지급일 현재 재직자만을 대상으로 지급한다는 조건을 부가한 내부평가성과급의 통상임금성이 문제된 사안(부산고등법원 2019. 9. 18. 선고 2018나55282 판결)에서 각 재직자 조건을 무효로 판단하고, 재직자 조건이 무효인 이상 문제된 각 임금 항목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그 지급이 확정된 것으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이 돼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2.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긍정한 하급심 판결
반대로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긍정하는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점을 그 논거로 한다.
(i)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근로조건에 대해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면서도(제4조),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고(제3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해 무효로 하며, 이에 따라 무효로 된 부분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는바(제15조), 임금의 발생 또는 지급조건도 노사가 기업의 재정상태, 근로여건, 계산상의 편의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그러한 조건이 노동관계법령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지 않는 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각종 수당들이 반드시 근무일수에 비례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ii) 노동관계법령에서, 근로기준법은 '직접지급의 원칙', '전액지급의 원칙', '통화지급의 원칙', '정기지급의 원칙' 등 임금 지급의 방법(제43조)과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의 지급(제56조) 등만을 규정하고, 최저임금법은 일정 단위의 근로시간에 대해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할 임금의 수준에 대해만 규정하고 있을 뿐, 임금지급과 관련된 기타의 사항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율하지 않고 있으므로 노사가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서 어떤 임금에 관해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더라도, 그것이 노동관계법령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않는 한 이를 무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논거하에서 법원은 ①연간 기본급의 800%를 매년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한 지급시기에 지급하되 지급일에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하며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문제된 사안(서울고등법원 2020. 12. 2. 선고 2016나2032917 판결), ②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 기본연봉의 10.1%에서 성과별 조정계수에 따라 차등해 지급하는 형태의 성과급의 지급일 전 퇴직자에 대한 지급의무가 문제된 사안(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0. 13. 선고 2021나29459 판결), ③지급일 현재 재직자에 한해 근속년수에 따라 연 200%~연 600%를 차등 지급하는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문제된 사안(수원지방법원 2023. 1. 19. 선고 2021가합32886 판결), ④연 315%를 연 4회 매 분기에 균등 분할지급하되 중도 입사자에게는 입사일에 해당하는 분기의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고 중도 퇴사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형태의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문제된 사안(전주지방법원 2023. 2. 15. 선고 2020가합4729 판결)에서 각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인정해 그 통상임금성을 부정하거나 또는 중도 퇴직자에게 지급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III. 재직자 조건의 효력에 대한 학계의 태도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정기상여금이 근로의 대가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 지급일 이전에 퇴직한 근로자에 대해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재직자 조건은 임금의 사전포기약정 또는 이미 성립한 임금을 사후적으로 상실하게 하는 것으로서 임금의 전액지급 원칙(근로기준법 제36조)에 위반한다거나, 정기상여금의 지급일까지는 근로를 하도록 사실상 강제함으로써 퇴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강제근로 금지의 원칙(근로기준법 제7조)에 위반한다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민법 제103조)로 봐 무효라고 판단하는 견해가 비교적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부 견해는 상여금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노사가 그 내용과 지급조건을 정할 수 있고, 그러한 합의가 특별히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닌 한 그 효력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논거로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이 강행법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견해도 확인된다.
IV. 결어 - 대법원에 의한 정리의 필요성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조건의 효력에 관해서는 다수의 하급심 판결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아직 명시적인 대법원의 판단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법원 2022다252578 판결이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조건의 효력을 무효로 판단한 원심의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기는 했지만 이후 선고된 하급심 판결이 지적한 것과 같이 위 대법원 2022다252578 판결은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불과해 대법원이 재직자 조건 유효 여부에 관한 법리나 상고기각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건이 아니다. 따라서 이 판결들만으로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3. 1. 12. 선고 2020가합8774 판결).
결국 이에 대해서는 현재 계류돼 있는 다수의 사건들에서 대법원이 명시적인 법리를 제시해 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졸견이지만, 사용자와 근로자 또는 근로자단체 간 단체협약, 취업규칙 및 근로계약을 통해 설정한 근로조건은 어디까지나 사적자치의 영역으로서 존중돼야 하고, 그러한 근로조건이 명백히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면 법원이 후견적 입장에서 임의로 임금에 부가된 재직조건의 효력을 부인하는 경향은 다소 지양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