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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3-09-08 10:48:39

    수정 : 2023-09-12 12:26:02

직장 내 괴롭힘 : ‘Harassment’와 ‘Bullying’이 같은 개념이라는 착각과 그로 인한 혼란

2023-09-08 10:48:39



직장 내 괴롭힘 : ‘Harassment’와 ‘Bullying’이 같은 개념이라는 착각과 그로 인한 혼란
[2023년 9월호 vol.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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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과거 해외 연구자 사이에서 'Harassment'와 'Bullying'이 혼용될 수 있는 개념인지를 둔 논란이 잠시 있었다. 1990년대 노르웨이의 연구자 Einarsen이 Bullying 대신 Harassment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으나, 그 역시 Bullying 대신 Harassment를 사용할 때는 앞에 Generic(일반적인)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사용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 Harassment와 Bullying의 개념 차이가 정리됐다. Harassment는 구체적이고 제한된 범위의 일회성 성립 괴롭힘으로, Bullying은 포괄적인 범위의 행위를 아우르지만 지속성·반복성의 특성을 가진 괴롭힘으로 구분됐다. 다만 Harassment 앞에 Moral, Generic과 같이 정서적인 영역을 포괄하고 범위를 넓히는 단어가 붙을 때는 Bullying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외의 관련 법령과 정책 자료에서 더 많이 언급되는 것은 Harassment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Harassment 금지법을 보유한 국가는 많아도, Bullying 금지법을 보유한 나라는 20여 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국과 독일에도 Harassment 금지법은 있으나 Bullying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영국이 Harassment 금지법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 일부 Bullying 행위를 아우르고 있긴 하다.

    Harassment는 단어 자체로 구체적인 괴롭힘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굳이 객관적 판단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성별, 연령대, 문화차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는 행위가 Harassment에 해당된다. 반면 Bullying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광범위한 행위를 아우른다. 자칫 개인의 민감성에 따라 상식적인 행위, 일상 행위조차 Bullying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Bullying 금지법을 시행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객관적인 기준(지속성·반복성)을 적용해 개인차를 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Harassment와 Bullying 모두 괴롭힘으로 번역됐고,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과 현상을 이해하는 기초 연구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채 바로 정책연구와 법령 연구가 시작됐다. 포괄적인 행위에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Bullying 금지법에 해당한다. 하지만 해외의 Harassment 금지법과 정책이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도 발생했다. Harassment와 Bullying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법령과 정책 시행이 진행됐고, 그 점이 현재 발생하는 현장의 혼란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1. 괴롭힘 성립 판단의 혼란 

    객관적 기준(지속성·반복성)은 포괄적인 괴롭힘(Bully-ing)을 정의하는 핵심요소다. Einarsen은 지속성 또는 반복성이 없다면 괴롭힘(Bullying)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아일랜드의 판례에서는 괴롭힘 행위가 있었어도 충분한 지속성과 반복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정도이다. 지속성과 반복성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법령에 명시한 국가는 없지만 관련 연구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괴롭힘 지속성의 기준은 6개월 이상, 반복성의 기준은 주 1회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의 판례에서만 지속성이 일관적으로 적용될 뿐 사업장과 행정기관에서는 꼭 그렇지가 않다. 때문에 사업장에서는 임의로 위원회를 조직해 마땅히 괴롭힘으로 인정해야 할 행위를 미성립으로 판단하고 괴롭힘으로 볼 수 없는 행위를 성립으로 판단하는 등의 편법이 가능해졌다. Bullying에 해당하는 행위가 일회성으로 발생했음에도 괴롭힘으로 인정되고, Harasssment에 해당하는 행위가 지속성·반복성이 없다고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2. 신고 준비 방법의 혼란

    Harassment와 Bullying 행위를 구분하고 Bullying에 대한 객관적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근로자에게 신고를 준비할 방법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지침이 될 수 있다. 예컨대 Bullying에 대해 6개월 이상, 주 1회 이상이 적용된다면 총 26회 이상의 행위 기록이 있을 때 괴롭힘 성립을 인정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만들어진다. 즉, 근로자가 꾸준히 Bullying 피해를 기록해 26회 이상이 된다면 그 자체가 신고할 때 제출할 증거자료가 된다. Harassment 행위는 1~2회의 기록만으로 충분하므로 근로자가 오랫동안 고통받지 않고 바로 신고할 수 있게 된다. 조사 단계에서는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를 다시 조사하는 대신 기록된 내용 사실인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조사 난이도가 낮춰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객관적 기준이 부재한 탓에 근로자가 어떻게 피해 신고를 준비해야 할지,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에서도 신고할 것을 권고는 하지만, 신고 준비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으로 녹취 정도를 알려주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려우며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녹취하던 것을 가해자에게 들켜 더 큰 보복을 당한 피해자도 있고 녹음 기능이 있는 기기를 가져오지 못하게 막는 가해자도 있다. 가해자의 눈에 띄지 않게 피해자가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 더욱 안전한 증거수집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 기록이 어느 정도 축적돼야 하는지의 객관적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꾸준히 기록한 결과를 제출해도,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인정되기도 하고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3. 괴롭힘 실태조사 방식의 혼란 

    Harassment를 조사할 때는 일정 기간 동안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다. 조사 문항에 들어가는 행위의 개수도 적고, 그중 하나를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피해자로 분류된다. 행위 자체가 구체적이고, 일회성으로도 괴롭힘 성립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조사 방법도 단순하다. 

    반면, Bullying을 조사할 때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랫동안 경험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조사 문항에 들어가는 행위도 20개 이상으로 많다. 흔히 사용되는 피해자 분류 기준은 일정 기간 중 나열된 행위 중 1개 이상을 주 1회 이상 경험했는지(조작적 기준)와 응답자 스스로 일정 기간 이상,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느끼는지(주관적 기준)다. 포괄적인 괴롭힘을 아우르는 만큼 피해자를 분류하는 방식도 더욱 까다롭고 엄격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Bullying 행위에 대해 Harassment의 피해자 분류 방식을 적용하거나 Bullying 측정도구의 점수를 단순 합산하는 등의 혼란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Bullying을 조사할 때, 지속성과 반복성을 적용한 복잡한 피해자 분류 기준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지 않은 채 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Harassment와 Bullying의 개념이 구분돼 정리됐고 Bullying의 판단에는 객관적 기준이 적용되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혼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개념과 현상을 오랫동안 다각도로 연구한 다음에 법령 시행이 이루어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법령 시행부터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는 Bullying 금지법 시행국 중 가장 강력한 형사처벌 조항을 보유한 곳 중 하나지만, 여전히 갑질이 심각하며 악질 가해자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허위신고를 포함한 을질까지 대두되는 상황을 겪고 있다. 
    개념 구분과 객관적 판단 기준을 통해 한결 명확해질 수 있었을 직장 내 괴롭힘의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난해하고 복잡해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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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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