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2023년 노동 국감의 화두는 단연 '노동개혁'이었다. 노동개혁의 책임자로서 국감대에 오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야당 의원들에게 노동개혁에 관한 질문세례를 받았다. 환노위 국감이 정부의 노동개혁 채점대가 된 셈이다.
 
"근로시간 설문지 어딨나" 시작부터 날 선 공방
 
여야 의원들의 본격적인 질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논란이 된 건 '근로시간제도 개편 설문조사'다.

앞서 지난 3월 고용부는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주ㆍ월ㆍ분기ㆍ반기ㆍ연 단위로 확대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안(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표했다가 '주 69시간' 역풍을 맞고 개편안 전격 재검토에 들어갔다. 고용부는 재검토 과정에서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 의견 수렴을 위해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집단심층 면접(FGI) 등을 진행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8월 마무리된 상태로 현재 전문가들이 설문 결과를 분석하고 있는 중이다. 설문조사 결과는 11월 초 발표를 앞두고 있다.
문제는 고용부가 해당 설문조사 자료를 환노위 국감에 제출하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야당 의원들은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 내용은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하고 공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고용부가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사가 이미 끝났는데 결과는 차치하고 설문조사 질문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게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정 환노위 위원장도 "국회법에 따라 국회에서 안건 심의, 국정조사와 관련해 서류 제출을 요구하면 국가기관은 국가기밀사항,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때는 제외하고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며 이 장관이 자료 제출 의무에 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자료 제출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장관은 "고용부 발표 전 공론화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여당 의원들도 이 장관에 힘을 보탰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번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여론 수집하는 과정에서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혼란이 있었다"며 "결정된 사항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현장에 혼란을 주면 올바른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이 나올 수 없어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이 정식 장관의 답변이 자료 제출 거부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해가 발생하도록 작성된 게 아니라면 왜 공개하지를 못하나"라며 "의원이 개별적으로 비밀을 보장할 테니 비공개라도 개별적으로 보고하라"고 추궁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전문가 논의가 더 필요한가"라며 "조사 결과를 만들고 발표하는 데에 무슨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대통령께서 모든 부분을 투명하게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까지 보고하라고 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재차 말했다.

관련해서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10월 10일 기자들과 차담회에서 "전문가들이 결과를 최대한 정밀하게 검증하고 분석을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노동부는 조사 결과 발표 시 설문조사가 공정했는지 검증할 수 있도록 설문 문항도 함께 공개하기로 했다. 설문조사 결과 발표 후엔 근로시간제도 개편안도 보완해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원ㆍ하청 교섭엔 "교섭은 정당한 대상과…원한다면 자율적으로"
 
올 한 해 노란봉투법이 뜨거운 감자였던 만큼 원ㆍ하청 문제와 관련한 질타도 이어졌다. 이 장관은 "(하청노조가) 정당하지 않은 상대와 교섭을 하자고 하는 것은 문제"라며 원ㆍ하청 교섭에 선을 그었다. 이에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하청노조가 정규직노조와 함께 단체협약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자 이 장관은 "그건 지금도 가능하다"며 "(노란봉투법의) 다양한 대안 중 하나가 자율적인 상생 협약"이라고 답했다.
 
'안전관리기관 법인세탁ㆍ산업안전보건본부 전문성' 논란도
 
산업안전 및 중대재해 관련 정책 질의도 이날 국감장을 뜨겁게 달궜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은 '안전관리전문기관의 법인세탁' 의혹에 관해 입을 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관리자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50인 이상 사업장은 안전관리자 선임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관리업무를 민간 안전관리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관련해서 기관은 매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평가를 받고, 고용부는 그 결과에 따라 기관에 위반 및 위법사항이 있을 경우 지정취소 또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다.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기관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2년간 지정을 받을 수 없다.

지성호 의원은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기관이 곧바로 새 법인을 설립하고 고용부 지정을 받아 안전관리위탁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장관에게 "해당 사실을 파악했느냐"고 질의했다.

지성호 의원에 따르면 A 기관은 설립 1년도 되지 않아 고용부로부터 지정취소 처분을 받아 폐업했다. 그러나 A 기관의 대표자였던 B 씨가 A 기관과 같은 소재지에서 지정취소 처분 22일 만에 새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법인세탁 의혹에 관해 지성호 의원은 "법적으로는 다른 회사지만 회사 이름만 다를 뿐 조직, 구성원, 사업 내용이 이전과 같았다"며 "실상이 이렇다면 정부로부터 하위등급 평가를 받고 위법행위가 지정취소가 된 기관이 계속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아마 고용부에서 전수조사를 하면 더 많은 기관이 나올 수 있다. 법인세탁 꼼수를 막기 위해 고용부도 지정 심사 시 구성원, 소재지, 기업 형태를 따져 관리시스템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전문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지난 2021년 7월 고용부 산하 본부로 출범했다. 기존 국 단위의 조직이 본부 단위로 확대 개편됐다. 고용부는 본부 확대 개편을 통해 기존 5개에서 산재예방지원과, 중대산업재해감독과 등 5개과를 신설하고, 기존 47명에 불과하던 인력을 현 기준 92명까지 늘렸다. 중대재해 예방과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고용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날 국감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전문성 문제가 제기됐다. 지성호 의원은 "산업안전 및 중대재해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전문성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인력 증원에만 급급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성호 의원이 산업안전보건본부 소속 현 구성원의 경력을 전수조사한 결과, 본부 부임 직전 10년간 관련 분야 경력이 없는 구성원이 전체 인원의 약 30%에 달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공무원 총재직연수를 확인했더니 평균은 12.9년에 불과했다. 지성호 의원은 전수조사 결과에 대해 "적어도 이 분야에선 전문성이 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성호 의원은 "주요 선진국인 독일의 경우 산업안전보건 주무부서는 채용 과정부터 시작해 계속 동일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산업안전에 관한 전문성을 확대하고 책임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만든 본부인데, 인사가 인력 운영 자체가 기존과 다르지 않으면 사실상 껍데기만 달라졌을 뿐 알맹이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성호 의원은 "본부의 특수성을 감안해 본부의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채용 단계부터 전문인력을 확대하는 등 실질적인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이 장관은 "다른 분야보다도 약자를 보호하고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본부 소속 직원들의 산업안전 전문성이 중요한데, 본부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평균치가 나온 것 같다"며 "취지를 공감해 현장 일선의 감독관들이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고민해 보고하겠다"고 답변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적용 코앞…또 유예?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으면서 관련 '밀고 당기기'도 눈에 띄었다. 이미 2년의 유예기간을 가졌지만, 법 적용을 두 달여 남겨두고 또 유예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유예 필요성을 제기한 주인공은 정책 당사자인 고용부다. 앞서 고용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손질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현재 중대재해처벌법형 개선 TF를 운영 중이다. TF 핵심 논의사항엔 '중소규모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시기 적정성'도 포함돼 있다. 애초 TF는 6월까지 개선방안을 논의한다고 했으나 개선방안 발표는 기약 없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진성준 의원은 이 장관에게 예정대로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ㆍ시행되냐고 물었다. 이 장관은 "TF 논의에서 현장의 노사 의견을 들어 보니 이 부분에 대해선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어 고용부도 고민 중에 있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을 위해 고용부도 예산이나 인력을 지원했지만 시간이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가 추가 유예 방침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관련해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 시기를 2026년 1월 27일로 2년 더 미루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이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가 일어나는 사업장이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진성준 의원은 "소규모 사업장에 법 적용을 하지 않으면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규율할 방법이 없다. 노력했지만 충분치 않다고 해서 마냥 미룰 수 없는 일은 아닌가"라며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개정해 소규모 사업장에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두도록 하는 조치부터 시작해야 하고, 공동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어서 "소규모 사업장 법 적용 지원을 늘리고 지원을 내실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전문인력 공급을 위한 교육양성체계 마련 등을 갖춰 가면서 검토해야 하는데 그냥 이 상태로 늦추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