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운동본부는 21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개정 노조법 2ㆍ3조의 의미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문제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재헌 기자 jh59@)

노동계가 대통령이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에 재의결을 요구하는 권리에 불과해 개정안에 대한 찬반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행사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운동본부는 21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개정 노조법 2ㆍ3조의 의미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문제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개정안의 법적 의의와 효과, 대통령 거부권의 한계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개정안은 사용자 및 노동쟁의 개념 확장과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범위 제한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원청회사가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된다. 또한 근로조건 결정이 아닌 근로조건 자체에 대한 의견 불일치 시에도 노동쟁의가 가능하며 조합원 개인의 책임 범위를 넘는 손해배상청구가 제한된다.

개정안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여당과 경영계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갖는다. 정확한 명칭은 거부권이 아닌 '재의요구권'이다.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이 정부에 이송됐을 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재의 절차를 개시한다. 이때 재의결을 통해 법률안이 확정되려면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으며,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ㆍ방송문화진흥회법ㆍ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의 경우 이달 내 국무회의에서 논의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노동조합법을 개정하면 파업이 상시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공포마케팅"이라며 "개정법은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연합(UN) 인권조약기구의 권고를 반영한 최소한의 제도로 거부권 행사가 아닌 공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용우 법무법인 창조 변호사도 "역대 정부 중 집권 2년 차에 거부권을 6번이나 행사한 경우는 없었다"며 "하청근로자에 대한 원청 재벌대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거부권 남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 "노란봉투법, 이중구조 개선 가져올 것…일자리 감소 확률 낮아"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정안은 정규직ㆍ대기업 근로자를 위한 것이 아닌 하청ㆍ비정규직ㆍ플랫폼 근로자를 위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원ㆍ하청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심한 우리나라에서 개정안은 꼭 필요한 법"이라며 "법이 시행되면 하청근로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단체협약 적용률이 올라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개정안으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경영계의 주장도 일축했다. 앞서 경제 6단체(대한상공회의소ㆍ중소기업중앙회ㆍ한국경영자총협회ㆍ한국경제인협회ㆍ한국무역협회ㆍ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13일 "개정안이 시행되면 하청근로자들이 원청기업을 상대로 끊임없이 쟁의행위를 해 원청기업이 하청기업과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 이전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정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최저임금 문제와 다르고, 원청 대기업들은 이미 핵심 생산 업무를 하청에 맡긴 상태여서 일자리 감소 확률은 거의 없다"며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은 저임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하청업체와 교섭해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을 발전시키는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02년 한나라당이 다양한 근로형태 종사자에 대해 근로조건 실질 결정권자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가장 진일보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김상조 한나라당 의원 대표 발의)을 발의한 바 있다"며 "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개정안보다 노동시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으면서 지금은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불법파업 상시화' 주장도 일축

경영계가 개정안 반대의 논거로 삼았던 불법파업 상시화 우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영훈 부경대 법학과 교수는 "개정안의 손해배상 제한 조항은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다"라며 "각자의 행위만큼 배상하자는 민사소송법과 판례에 부합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인데, 이를 노조 특혜법이라는 하는 것은 왜곡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구조조정ㆍ정리해고 저지를 위한 파업이 모두 정당화되는 법안이라는 경영계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현행 노동조합법과 판례에 따르면 구조조정ㆍ정리해고 등 경영권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는 불법이다.

강 교수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구조조정 저지를 목적으로 한 파업이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판례가 경영권 본질에 대한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법에서도 구조조정을 쟁의행위 목적으로 명문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개정법 시행만으로 이것의 인정 범위가 무제한적으로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거부권, '절차적 중지권'에 불과…여론 팽팽하면 절제돼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거부권은 그 본질이 재의요구권으로 절차적 중지권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며 "무제한적으로 거부권이 인정되면 입법권이 무력화되고 대통령의 행정 독재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거부권은 법률안의 위헌성, 집행불가능성, 국익불합치성, 오용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정돼 사용되어야 한다"며 "국민의 찬반 여론이 팽팽한 사안에 대해서는 절제된 권리 행사가 요구된다"고 했다.

이 변호사도 "개정법은 산업구조 고도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다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며 "원ㆍ하청 노사관계 갈등과 분쟁이 증폭되고 있기에 이를 고려해서 거부권 행사가 판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