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금속노동조합 4층 회의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 50인(억) 미만 적용 유예 연장의 문제점과 민주노총 투쟁 계획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재헌 기자 jh59@)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계획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확대하기에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노총은 이미 예산 1조2000여억 원에 달하는 지원이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현장 설문조사도 왜곡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4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금속노동조합 4층 회의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 50인(억) 미만 적용 유예 연장의 문제점과 민주노총 투쟁 계획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현장에는 법 적용이 2년 유예됐다. 중소기업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등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 27일부터는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전날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조항을 담은 법 개정안을 조속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논의되도록 추진하고 이달 말까지 중소기업 지원 확대 방안도 발표할 계획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발표를 보고 정권이 또 노동자의 안전을 쳐버린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며 "정부와 여당은 이것을 민생법안이라고 포장하는데 사업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민생은 어디로 가고, 사업주의 처벌을 유예하는 것을 민생이라고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1조2000억 원 쏟아부었는데...민주노총 "지원 강화, 유예 이유 안 돼"

민주노총은 지원 확대를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 3년간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 이미 대규모로 집행됐다는 이유다.

최 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정부의 안전투자 혁신사업 예산은 2020년 4198억 원에서 2023년 1조1987억까지 확대 집행됐다"며 "문제는 예산 부족이 아니라 대부분의 예산이 단기성ㆍ일회성 으로 집행됐다는 것인데, 이제 와서 지원 확대를 명분으로 법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안전관리 인력 지원금 정책'은 중대재해처벌법 지원 예산이 잘못 집행된 예시 중 하나다. 안전관리 인력 지원금은 중소기업의 안전인력 채용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지원금이다.

최 실장은 "정부는 중소기업의 안전인력 채용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면서도 예산을 200억 원밖에 배정하지 않아, 50인 미만 전체 사업장의 0.2%에 불과한 1111개 사업장만이 2년간 한시적 지원을 받게 됐다"며 "현장에서 실효성이 높다는 '공동안전ㆍ보건관리자 제도'도 시범사업 한 가지만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중소기업 안전보건 컨설팅 실시 횟수가 적어 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주장도 반박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사업을 진행했지만 올해까지 컨설팅을 받은 사업장은 전체 83만 개소 중 2만1800만 개소에 그쳤다. 
 
최 실장은 "50인 미만 사업장 83만 개소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모두 실시하려면 현재 컨설팅 인력으로는 25년 이상이 소요된다"며 "재정과 인력 측면에서 불가능한 컨설팅 사업 확대를 적용 유예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왜곡된 설문조사에 현장 노력 물거품..."잘못된 여론 형성 말아야"

민주노총은 고용부와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가 편향된 설문조사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확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기중앙회는 지난 4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실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4월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의 59.2%가 중대재해처벌법 준수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위험성 평가를 연 1회 이상 실시한다는 응답도 60.8%를 기록했다. 그러나 8월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의 80%가 법 시행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4월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비율이 제조업과 비제조업 50대 50으로 구성된 반면 8월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3.3%가 제조업이었고 응답자의 직책도 대표이사 41.5%, 임원 23.7%였다.
 
최 실장은 "4월 조사에서는 업종과 지역을 안배해서 설문조사를 했지만 8월 설문조사에서는 그러지 않았다"며 "중기중앙회가 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을 요구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설계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고용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상당수가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이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의 91%가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75%가 종사자에게 안전 활동을 보고받고 있었다. 종사자로부터 안전에 대한 의견 청취를 하는 사업장도 89%에 달했다.

최 실장은 "지난 3월 고용부 설문조사에서는 81%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갖췄거나 준비 중이라고 답했고 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다"며 "그러나 고용부도 재정지원, 컨설팅이 더 필요하다는 응답만 부각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간의 설문조사를 보면 다양한 측면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는데, 경영계와 보수정권은 이를 왜곡해 그 준비 노력을 원점으로 돌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적용 유예 찬성하는 민주당, 노동계와 대화해야"

기자간담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조건부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법 적용 준비 부족에 대한 정부의 사과 ▲향후 법 적용을 위한 분기별 구체적 준비계획ㆍ예산 지원 방안 마련 ▲2년 유예 후 시행을 약속하는 정부ㆍ경제단체의 공개 입장 표명이 그 조건이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과 함께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강화할수 있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돼야 한다.
 
이에 최 실장은 "홍익표 원내대표에게 면담을 요구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소식이 없는 상황"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앞둔 정치거래를 멈추고, 적용 유예 조건을 말하기 전에 노동계의 면담 요구에 응하라"고 말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지난 3년간 중소기업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정치적 야합으로 지난 노력이 다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