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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는 나라 :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직장 내 괴롭힘(Bullying) 금지법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 총 22개국이다. 그 중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는 다른 나라의 입법화 과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직장 내 괴롭힘 대응에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남은 21개국 중 어떤 나라를 참고하는 것이 적절할지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들이기도 하다.

스웨덴

관련 법을 살펴볼 나라를 선정할 때 직관적으로 먼저 떠오르는 기준은 흔히 제일 먼저 실행한 나라, 가장 피해율이 낮은 나라일 것이다. 스웨덴은 이 조건에 잘 부합되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했고 피해율이 국제적으로 가장 낮진 않지만, 낮은 편에 속하는 곳이기 때문이다(지속·반복성을 적용한 자기보고방식 3.5%, 직장갑질119와 유사한 방식은 17%). 스웨덴이 법령 시행 이전에 실태조사를 했을 때 확인된 괴롭힘 피해율은 사실 별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의 직장 내 괴롭힘 연구를 주도하던 Leymann은 매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웨덴의 자살 피해가 100~300건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구수가 적은 스웨덴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 발언이었다. Leymann의 주장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1993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법령을 통과시키고, 1994년에 시행을 시작했다.

초기 법령의 특성상 스웨덴의 법령은 법적 정의를 제시하고, 사용자에게 예방과 대응 의무를 부여하지만 밀접하게 관리·감독하진 않는 다소 기초적인 법이었다. 하지만 시행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피해율이 처음부터 낮았고 이후에도 계속 낮은 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관리직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그들이 직장 내 괴롭힘 대응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심지어 관련 지침이 사업장 취업규칙에 있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확인되기도 했다. 피해율이 워낙 낮다 보니 신고가 접수되는 일도 드물어 그들이 사건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사례는 분명 우수사례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딱히 참고할 가능성을 주진 않는다. 무작정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 피해율 낮은 나라의 사례를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스웨덴이다.

노르웨이

노르웨이에서 입법화가 진행되게 된 것은 스웨덴의 영향이었다. 북유럽에서는 스웨덴이 가장 먼저 하면, 이어서 노르웨이가 하고, 이후 다른 국가들로 확산되는 것이 흔한 패턴이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스웨덴이 먼저 했다는 이유로 바로 입법화에 들어가지 않고 기초연구부터 시작했다. 90년대 노르웨이 수상이 신년 연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언급했고, 직후 Bergen Bullying Research Group에 한화로 십여 억 원에 달하는 규모의 연구 예산이 투입됐다. Einarsen을 비롯한 많은 직장 내 괴롭힘의 유명 연구자들이 바로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수많은 인적 자원과 연구 예산 덕에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Bergen Bullying Research Group은 직장 내 괴롭힘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다. 관련 분야의 국제학회 세션 중 4분의 1가량이 Bergen Group의 연구로 채워지기도 했다.

그토록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던 중, 노르웨이에 대형 직장 내 괴롭힘 스캔들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노동조합(Trade union)의 여성 간부였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협상가로서 노동조합의 주축이 되던 사람이기도 했다. 조사와 법적 비용으로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소요됐고, 그 결과는 가해자의 사직이었다. 이 사건은 노동자 보호에 나서야 할 노동조합의 간부가 여러 명을 고통스럽게 만든 가해자였다는 점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사건의 영향 때문인지 노르웨이는 북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형사처벌 조항을 넣었다. 괴롭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하고, 경영진의 괴롭힘 신고 대응을 모니터링할 Prevention Advisor 제도(방지조언사)를 도입했다. 또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라도 그 직원으로 인해 다른 직원들이 고통받는다면 계속 조직에 둘 의미가 없다는 성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윤리·도덕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그렇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명이 아무리 뛰어나고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해도, 그 한 명이 괴롭힌 여러 피해자와 괴롭힘 상황을 본 목격자들의 생산성 하락을 메워 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찰은 성과를 잘 낸다는 이유로 악질적인 가해자가 보호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우리나라에도 좋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의 팀이 뛰어난 성과를 냈을 때, 그 성과가 마치 그 팀 리더만의 성과인 것처럼 여기며 팀 리더만 대표로 칭찬하고 보상하곤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구성원의 역할분담이 서구권처럼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이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착취하고 성과를 가로채는 방식으로 본인만 돋보이게 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때론 사용자가 그런 내막을 보지 않고, 성과를 잘 낸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칭찬하고 측근으로 두기도 한다. 그런 가해자가 신고됐을 때 일 잘하는 사람이 실수한 것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뛰어난 사람도 조직에 해악을 끼친다면 조직에 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노르웨이와는 대조된다.  

노르웨이에서는 자기보고방식으로 2%의 피해율, 직장갑질119와 유사한 방식으로 14%의 피해율이 확인됐다. 대형 스캔들에도 불과하고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상황이 안정적이었다. 그로 인해 괴롭힘 연구도 침체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문제가 없으니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영감을 얻지 못해 기존에 했던 연구를 재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학술대회에서 Bergen Group의 영향력이 많이 축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화 수억 원 단위의 예산이 지속적으로 Bergen Group에 투입되고 있으며, 기초연구의 축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다양하고 복잡한,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슈들이 발생하고 있으나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는 부족한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벨기에

벨기에의 입법 과정에는 Bergen Group 멤버 중 하나인 벨기에인 연구자 Notelaers가 관여했다. 벨기에도 노르웨이처럼 방지조언사 제도를 도입한 것에서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벨기에는 방지조언사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유형과 등급을 세분화했다. 그중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독립적으로 대응할 자격이 있는 것은 가장 높은 등급인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뿐이다.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는 관련 분야의 석사, 1.5년의 전문 교육, 5년의 관련 경력을 쌓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매우 전문적인 자격이다. 그만큼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그들에게 부여된다.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는 사업장에 고용돼 있거나 위촉 비용을 받지만, 법적으로 사측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사측이 비용을 빌미로 그들에게 불공정한 조치를 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사업장이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를 참여시키지 않은 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조치하는 것은 위법이다. 직원 또는 신고인에게 회사의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를 알리지 않는 것도 위법이다. 신고 접수단계에서부터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가 신고 내용을 검토하고, 괴롭힘으로 성립할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하지 않는다면 신고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신고를 기각한다. 우리나라의 노동청과 유사한 벨기에의 행정기관에서도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를 배정해 사건에 대응하도록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대응 전반에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가 밀접하게 활용되는 것이다.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는 직접 사건 조사와 조치를 진행하기도 하고, 사측이 적절한 조치를 하는지 감시하기도 하기도 한다. 사측이 부적절한 행위를 하면 신고인을 도와 행정기관에 신고하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다.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에게 요구되는 더욱 큰 역할은 예방이다. 사업장의 조직문화를 진단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주거나 아니면 세우도록 컨설팅하는 것이다. 개별 사건에 대응하는 것보다 더 심도 깊은 이해도와 전문성을 요구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그만큼 심리사회적 방지조언사의 훈련 기간이 길 수밖에 없다. 

벨기에는 법령 시행 이후 3.2%의 자기보고 피해율을, 직장갑질119와 유사한 방식으로는 가장 최근 조사에서 19%의 피해율을 보였다. 법령 시행 이전에 8~9%의 자기보고 피해율이 확인되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반적으로는 피해율이 낮아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와 방식의 피해율은 직전년도까지 꾸준히 하락추세였던 것에 비해 최근 조사에서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높은 피해율이 확인됐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지 아니면 계속될 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차용에서 흔히 활용되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 법령을 시행을 국제적으로 주도하지도 않았고 피해율이 낮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본다면 벨기에는 참고 사례로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상황을 고려한다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전담 인력의 낮은 전문성, 사업장의 부당조치, 허위 신고 및 남용되는 신고, 연계성 없는 사업장-행정기관-(준)사법기관 운영체계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벨기에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연구 주제의 특성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같은 국가들을 비교법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사례로 들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라를 정해놓고 보는 비교법의 관습이 더 나은 대안과 해결 방안을 제공해 줄 수도 있었을 다른 나라의 사례를 조사하고 탐색하는 일에 오히려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나라가 그 주제에 적합한 나라인지, 그 주제와 관련된 법령이나 정책을 잘하고 있는 나라인지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 

해외 사례를 상세하게 살펴보고 분석하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막연하게 비교법의 기본으로 당연시 여겨지던 국가의 사례들만 살펴보기보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합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국가들을 발굴하는 노력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