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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이상도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
1. 들어가며
근로자가 재해를 입은 경우 근로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 신청을 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 근로자가 입은 재해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서 정하고 있는 업무상 재해(산업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근로자가 입은 재해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 혹은 그 유족(근로자 사망 시)에게 산재보험법에서 정하고 있는 보험급여(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장례비)를 지급한다.
그런데 위 보험급여를 통해서도 근로자가 입은 손해가 전보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이 경우 근로자는 사용자를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근로자가 입은 재해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경우 사용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가 곧바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산업재해 인정 사실만으로 사용자에게 손해배생책임이 발생하는가
가. 서설
통상 근로자가 입은 재해가 산업재해(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당연히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는 산업재해(업무상 재해)의 성립 요건과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이 상이한 것에서 기인한다.
나. 산업재해(업무상 재해)의 성립 요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재해를 입게 된 것에 관해 근로자에게 과실이 있든 없든, 사용자에게 과실이 있든 없든, 재해와 업무상의 사유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하면 그러한 재해는 산재보험법에서 의미하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게 된다.
즉, 산재보험법은 산업재해(업무상 재해)에 관해 무과실책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인바, 근로자나 사용자의 과실은 산업재해(업무상 재해)의 요건이 아니며 재해와 업무상의 사유 간 상당인과관계의 존재가 그 성립 요건이 된다.
다.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요건
대법원은 "사용자는 고용 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해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피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대법원 1999. 2. 23. 선고 97다12082 판결 등), 또한 "이러한 사용자의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 행위가 불법행위의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과 경합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부담하게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1997. 4. 25. 선고 96다53086 판결 등).
즉, 산업재해(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i)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즉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와 (ii)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가 있는 것인데, 위 두 가지 청구 모두 사용자에게 산업재해(업무상 재해)에 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한다.
따라서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i)그 업무상 재해에 대해 사용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을 것, (ii)그러한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을 것(상당인과관계)이 입증돼야 한다.
라. 과실 및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
1) 과실에 관해
대법원은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인 의무로서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게 근로자가 입은 신체상의 재해에 대하여 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당해 근로로 인하여 근로자의 신체상의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피를 위한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음이 인정돼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고(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60115 판결), 서울고등법원 역시 근로자가 과로로 사망한 사안에서 "망인이 만성적 과로로 시달렸고, 이로 인해 사망했을 개연성이 높은 점은 인정되나, 회사가 위 망인에게 위와 같은 주야 2교대의 출고담당업무를 부과할 경우 정신적, 육체적 과로로 인한 동맥경화가 발병된다거나 그로 인한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같은 업무에 종사하게 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청구는 다른 점에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서울고등법원 1998. 2. 18. 선고 96나37017 판결).
이와 같은 대법원 및 하급심의 입장에 비춰 보면 업무상 재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에서의 사용자의 과실이란 결국 업무상 재해 발생에 관한 사용자의 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상당인과관계에 관해
산재보험법의 업무상 재해와 손해배상책임 모두 상당인과관계를 요하나,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서 의미하는 상당인과관계는 '재해(질병 등)'와 '업무' 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 사용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에서의 상당인과관계는 '재해(질병 등)'와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 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하는바, 이 둘은 구분된다.
대법원 역시 산재보험법상의 상당인과관계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에서의 상당인과관계를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근로자에게 발병한 파킨슨증이 행정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후 해당 근로자의 유족들이 회사(사용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사건에서 원심(부산지방법원)은 "업무상 재해 인정에 있어서의 상당인과관계와 불법행위책임 인정에 있어서의 상당인과관계는 구분되는데, 근로자의 유족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불법행위책임에서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함으로써 근로자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고, 대법원은 이와 같은 원심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다(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7다267774 판결,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8다207601 판결).
이와 같은 대법원의 입장에 비춰 보면 산재보험법상 상당인과관계는 과실을 요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불법행위에서의 상당인과관계보다 인정범위가 넓으므로, 행정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고 해서 사용자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반드시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3. 결론
이와 같이 근로자가 입은 재해가 산업재해(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는 사실만으로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곧바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i)사용자에게 근로자의 재해에 관한 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이 인정되는 등 과실이 있고, (ii)이러한 과실과 근로자의 손해(업무상 재해)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인바, 사용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거나 이에 대응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