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에서 '항공우주제조업 상생협력 공동선언식'을 열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고용노동부가 올해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원ㆍ하청 상생 협약으로 풀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를 배제한 채 원ㆍ하청 자율에 이중구조 개선을 맡긴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실효성 논란이 여전하다.
 
고용노동부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에서 '항공우주제조업 상생협력 공동선언식'을 열었다. 이날 공동선언식에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최만림 경상남도 부도지사,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 김태형 미래항공(협력사) 대표, 방남석 삼우금속공업(협력사) 대표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항공우주제조업의 대기업, 하청업체 간 상생협력 방안 마련을 위한 상생협의체 운영계획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공동선언문에는 원청사의 ▲협력사 근로자 근로조건 개선 ▲협력사의 숙련 인력 확보 ▲협력사 기술경쟁력 제고 ▲공정거래 관계 등 안정적인 경영환경 조성과 협력업체의 ▲자사 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 및 역량 강화 ▲연구개발ㆍ생산성 향상 노력이 포함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원청과 협력사의 자발적인 노력에 상응해 제반 사항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상생 협약은 항공우주산업이 경상남도에 집중됨에 따라 정부, 지자체, 기업이 힘을 합치는 최초의 지역 단위 상생 협약이다.
 
이 장관은 "원청과 협력사 간 상생은 법률적 규제나 타율적 강제로 해결될 수 없으며, 자발적인 협력이 실현되고 관행화될 때 지속 가능하다"며 "중앙단위에서도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중층적인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자율'에 기댄 상생 협약…실효성 의문 여전
 
이번 항공우주산업 상생 협약은 고용부가 추진한 네 번째 원ㆍ하청 상생 협약이다. 고용부는 지난 2022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불황기 삭감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선박을 점거한 이른바 '대우조선 사태' 이후 상생 협약으로 이중구조 문제 해결에 나섰다.
 
고용부는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발족하고 지난해 2월 조선업 원ㆍ하청 대표들과 조선업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조선업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 석유화학산업, 11월 자동차산업으로 상생 협약을 확대해 왔다.
 
고용부는 지난 1윌 31일 고용정책심의위원회 서면 회의에서 올해 연구과제 8개 중 하나로 '원ㆍ하청 상생 협약 지원 정책'을 선정했다. 고용부는 올해 상생 협약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과 함께 다양한 업종에 상생 협약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노동계로부터 상생 협약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정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조선업, 석유화학산업, 자동차산업에 대해 상생 협력 방안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이 전혀 없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근본 원인으로 상생 협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상생 협약 체결 후에도 원ㆍ하청 간 임금체불 문제는 여전했다.
 
지난해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조선업의 4대 보험 체납액은 1194억 원에 달한다. 지난 11월에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를 운영하던 50대 대표가 도급비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에 금속노조는 논평을 내고 "하청 노동자에 이어 업체 대표까지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것이 상생인가"라며 "정부는 허울뿐인 상생 행사에 예산을 그만 투입하라"고 비판했다.
 
상생 협약이 산업 전체가 아닌 개별 대기업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나마 조선업 상생 협약은 조선업 5사(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ㆍ한화오션ㆍ대한조선ㆍ케이조선)가 참여했고, 자동차 산업도 시장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상생 협약에 참여했지만 석유화학산업은 롯데케미칼만 참여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노동법률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를 위해 정말 고민해야 할 지점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적어도 특정 산업이나 업종이라는 넓은 범위에서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상생 협약 이후에도 협약을 맺지 않은 석유화학 산업 내 다른 기업에서는 원ㆍ하청 문제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울산지부 동서석유화학사내하청지회는 "사내 하청업체 소속 현장 관리자가 10년 동안 임금 착취와 공금 횡령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ㆍ하청 모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원ㆍ하청 모두에 책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회사'만 이름 올린 상생 협약…노동계는?
 
노동계의 참여가 부재하다는 것도 상생협약의 한계로 꼽힌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네 번의 상생 협약은 모두 정부, 원청업체 대표, 하청업체 대표 간의 협약이었다.
 
조선업 상생 협약은 정부와 조선업 5사와 하청업체 대표, 자동차산업 상생 협약도 현대차ㆍ기아차와 하청업체 대표만이 참여했으며, 석유화학산업 상생 협약은 롯데케미칼과 하청업체 대표만이 참여했다.
 
이번 항공우주산업 상생 협약도 지자체의 참여만 추가됐을 뿐 한화에어로스페이스ㆍ한국항공우주산업과 하청업체 대표만 참석했다. 지금까지 상생 협약식 어디에도 노동계의 참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정책실장은 "노동계의 참여 없는 실효성 없는 상생 협약이 아니라 원청 사용자에 대한 교섭 의무 부과가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청업체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 사용자에 교섭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통해 원청 사용자가 교섭에 나서고 산별, 초기업 교섭이 활성화돼야 이중구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도 노동법률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는 노동조합법 30조에 의해 산별, 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지원할 책무가 있다"며 "초기업 교섭 촉진을 위한 제반 정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기업별 교섭 촉진을 통해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이나 업종 차원의 '사회적 직무급'을 도입해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