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노동법률)

사용자도 업무상 질병의 산재 처분을 다투는 소송에 참가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 보험료율을 산정하는 데 제외돼 사용자는 공단을 상대로 산재급여 지급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산재 소송에서 회사의 목소리가 확대될 여지가 생겼다.
 
4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정희)는 사망한 근로자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용자도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 결과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어 보조참가를 허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 씨는 B 사의 네트워크 통신서비스 설치 현장 책임자로 뇌출혈 증상을 호소하다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A 씨 유족은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면서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A 씨는 공단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A 씨는 간질환, 고혈압, 고지혈증 등 뇌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요인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다.
 
이 소송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B 사의 소송 보조참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보조참가는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 외에도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자가 소송에 참가하는 것이다. 산재 소송에서 원고는 근로자 측,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회사가 공단에 보조참가하면 경우 '피고보조참가인'이 된다.
 
사용자는 업무상 질병 산재 처분에 대해 다툴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기존 입장이다. 2019년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업무상 질병이 보험료 요율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됐다. 사용자가 공단을 상대로 산재 인정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소송 이익이 없다고 보고 각하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유족 측은 같은 이유를 들어 회사의 보조참가 신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회사에도 소송에 보조참가할 이익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시행령에서는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를 보험료 요율 실적 산정에서 제외하지만 산재보상법에서는 업무상 사고를 여전히 요율 산정에 반영하고 있다"며 "이 사건은 업무상 재해의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사용자가 업무상 질병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과 동일한 사안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유족 급여 지급은 개별 요율에는 반영되지 않더라도 업종별 요율에는 반영될 수 있어 B 사의 보험료가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B 사가 유족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유족은 B 사에 손해배상 청구 내용증명을 보냈고 공단이 패소할 경우 B 사는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사건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나 판단에 따라 B 사의 법률상 지위가 결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 씨의 사망이 산재가 되면 B 사 사업주의 산재 보고 의무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판단 이유가 됐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에 보고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0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규정한다. 고용부 장관은 사업주에 안전보건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산재 급여 처분을 다투는 소송에서 근로자 측의 동의로 사용자가 공단에 보조참가 하는 사례는 있었다. 다만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원이 사용자의 보조 참가가 가능하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판결로 산재 사건에서 사용자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가 보조참가하면 유족들도 문서제출명령신청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기 용이해진다. 유족의 신청과는 별개로 회사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할 수도 있다. 회사가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게 되면 공단에서 부지급처분을 한 이들 중 승소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의 소송 제기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사용자를 대리한 권영환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법원은 사용자의 산재보험료 증가 가능성,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 미치는 영향,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부담 가능성을 이유로 사용자가 공단을 보조참가할 수 있다고 봤다"며 "사용자가 산재 승인 처분 취소를 청구할 법률상 이익을 인정할 여지가 생긴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