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라이더 위험성평가 연구발표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jyjy@)

배달기사 산재가 매년 고공행진 중이지만 정작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위험성평가는 부진하다. 고용관계가 복잡한 플랫폼산업에서는 누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를 수행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노동계가 나서 배달산업 위험성평가를 진행한 결과 배달 준비, 운전 과정뿐만 아니라 배달앱과 알고리즘 등에서도 11가지에 달하는 중대한 위험이 발견됐다.

배달기사가 겪는 중대한 위험은 11가지...개선 시급해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라이더 위험성평가 연구발표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는 배달기사들이 일하는 과정에서 겪는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배달기사 위험성평가를 직접 진행했다. 배달기사와 플랫폼 기업과 간담회를 통해 위험성평가 설문을 만들었고 온라인을 통해 배달기사 860여 명에게 각 위험 요인의 위험 가능성과 중대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위험 가능성과 중대성 점수가 10점이 넘는 '중대한 위험도'는 11가지로 집계됐다. 중대한 위험도는 위험도를 줄이기 전에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 정도의 위험을 의미한다.

배달기사의 위험 요소는 총 38가지고 이는 7가지 분야로 나뉜다. ▲준비 ▲운전 ▲인간공학 ▲운전 외 이동 ▲직무스트레스 ▲앱과 알고리즘 ▲휴게다.

이 중 중대한 위험도인 것으로 나타난 열한 가지 위험 요소는 ▲비ㆍ눈ㆍ낙엽 등으로 미끄러운 도로(운전) ▲다른 운전자의 과속ㆍ신호위반 등 위험운전(운전) ▲본인의 과속ㆍ신호위반 등 위험운전(운전) ▲운전 중 앱을 터치ㆍ조작하느라 위험함(앱과 알고리즘) ▲운전 중 배달앱 화면을 확인하느라 전방주시 못함(앱과 알고리즘) ▲헬멧 미착용(준비) ▲야간에 배달할 때 라이더가 눈에 띄지 않는 문제(운전) ▲위험한 상황(폭우ㆍ폭설 등)에 운전하게끔 유인하는 프로모션(앱과 알고리즘) ▲폭염ㆍ혹한 등 날씨로 인한 위험(운전) ▲이륜차 운전에 불리한 도로사정과 교통체계(운전) ▲장시간 노동과 과로(직무스트레스)다.

'알고리즘'도 위험성평가 대상?...기업ㆍ정부 모두 책임 있어
 
주목할 점은 앱과 알고리즘 분야 위험이 3가지 포함됐다는 것이다. 앱과 알고리즘은 전통적인 위험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배달기사에게는 앱과 알고리즘도 사고를 발생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이들은 배달 중에도 끊임없이 울리는 배달 알림에 계속해서 앱을 확인하게 된다.
 
배달이 예상보다 오래 걸릴 경우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확인 메시지를 보내거나 픽업 지연 이유를 선택하게 한다. 이 메시지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해당 라이더에게 배정됐던 배달 호출을 취소하고 다른 라이더에게 배정하거나 향후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연구를 수행한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앱과 알고리즘도 위험성평가 대상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플랫폼 기업에게 라이더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고, 노동자들도 플랫폼 알고리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이 배달기사의 눈을 신호등과 주변 교통상황이 아니라 휴대폰 화면에 붙잡아놓도록 유도하고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도록 유도한다면 사업주와 기업은 전부이든 일부이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플랫폼 기업과 정부에게 책임을 요구했다. 플랫폼 기업은 운전자의 경험을 앱 개발에 반영하고 위험한 환경에서도 일할 것을 독려하는 알고리즘은 제재할 필요가 있다. 눈이나 비가 와서 도로가 미끄러울 때는 배달 가능 범위를 줄이고 과속을 하지 않도록 배달 시간을 조절하고 사고 다발 구역 알람을 표시하는 등 안전을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참여도 필요하다. 기상 환경과 도로환경, 교통체계 등은 실존하는 위험이지만 노사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여서다.

최민 활동가는 "미끄러운 도로나 다른 운전자의 위험 운전 등은 어쩔 수 없는 위험 요소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열한 가지 위험성을 누가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기업, 산재사고 1위 달리지만...위험성평가는 아직

최근 플랫폼 기업의 산재 사고는 산재 다발 업종인 건설업, 광산업, 제조업을 넘어섰다. 2018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산재 승인 건수 상위 10위 기업을 보면 배달 플랫폼 기업인 우아한청년들은 2020년 6위에서 2021년 2위로 올라섰고 2022년부터는 1위를 지키고 있다. 또 다른 플랫폼 기업인 쿠팡은 2018년 10위에서 2019년 5위로 올라온 후 2020년과 2021년에는 1위를 기록했다.

배달기사에 대해서도 위험성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정부는 산업재해 감축 계획인 중대재해감축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자기규율적 예방관리체계'를 강조했다. 위험성평가를 통해 사업장이 스스로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골자다. 위험성평가는 산재를 예방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배달 플랫폼 업종의 위험성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누가 위험성평가를 수행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용자가 위험성평가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배달 플랫폼 업체, 배달대행 업체, 배달을 맡기는 음식점 모두 전통적 의미의 사용자라고 보기 어렵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 주체는 '사업주'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를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다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의무를 규정한 일부 조항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로 사업주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일부 조항뿐 산업안전보건법 전반에서 사업주 개념을 확장한다면 플랫폼 기업에게 위험성평가를 수행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도 가능해진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은 전통적 의미의 근로자뿐 아니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노무제공자도 보호할 수 있도록 2019년 전부개정됐다. 법 취지를 고려하면 사업주 개념을 확장하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다만 사업주 개념을 확장한다 해도 플랫폼 기업에 모든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을 부과할 수는 없다. 플랫폼 기업이 배달 기사의 모든 근로 과정을 지배하고 관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플랫폼 기업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책임과 위험성평가 체계는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토론자로 참여한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된 취지를 고려하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개념은 넓게 해석해야 하지만 현행법상 실효적이지 않다"며 "결국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과 연계된 사업주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다수 사업주 관계를 고려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책임과 위험성평가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